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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리고 책

화제작 좋은 시*손옥자/ 유수화 조용미 이상호 김정임 김영식 황경순

<화제작 좋은 시/문학과창작 2008 가을호 >

출전 : 문학아카데미문학과창작 http://cafe.daum.net/munhakac

삶의 리치 마케팅, 틈새

손옥자

(시인)



*유수화 「봄에는 죄를 진다」(『문학과 창작』 2008년 여름호)

*조용미 「가을밤」(『시안』 2008년 여름호)

*이상호 「휘발성」(『시인세계』 2008년 여름호)

*김정임 「푸른 틈새」(『현대시학』 2008년 6월호)

*김영식 「그 골목의 별들은 따뜻했네」(『학산문학』 2008년 여름호)

*황경순 「얼음 2」(『문학과 창작』 2008년 여름호)



‘간극게이지’라는 말이 있다. 좁은 틈새를 측정하는 표준계기를 이름이다. 혹은 ‘틈새게이지’라고 부른다. 이강식의 「하늘새」 미술전시회 작품을 실은 도록 맨 앞에는 흑지(어둔 밤) 위에 가느다란 빛으로 나무줄기처럼 선 몇 개를 그어놓고 ‘어둠머금새’라고 이름을 붙였다. ‘어둠을 쪼아 먹고 날을 밝혀 주는 새’라는 뜻이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한참을 들여다보니 가늘고 하얀 빛이 좁아진 동공 안에서 느리게 이동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어둠을 갉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세하긴 하지만 빛이 강렬했다.


논병아리들이 떼지어 짝짓기한다


암컷의 주위를 빙빙 도는 놈

날개를 차르르 펼쳐 수면을 가르고 물 속으로

곤두박질,

한 힘을 보이는 놈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갓 물어 온 물풀을 연신 나르는 놈

눈치 없이 사랑에 빠진 암컷에게

재주 부리다 부리를 쪼이는 놈

수컷들의 봄이 익는 낙동강 하구 둑방


바라보는 내게 누군가 주머니 속에

봄의 시간을 슬쩍 넣어준다

내 마음도 온통 청푸른 물풀이어서

잠시, 그 봄을 빌렸다


그리고 이것도 죄냐

논병아리들에게 소리쳐 물었다

그렇게 그 봄을 떠나보냈다

―유수화 「봄에는 죄를 진다」」


“내게 누군가 주머니 속에/ 봄의 시간을 슬쩍 넣어준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화자의 주머니는 비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화자의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걸 누군가가 눈치챘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틈새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슬쩍’ 넣어준 것이다. 여기서 ‘주머니’는 화자의 ‘마음’과 통한다. 화자의 주머니가 비어 있었다고 하는 것은 화자의 마음이 허전하거나 뚫려 있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증명할 수가 있다.

아까 말한 ‘슬쩍’이라고 하는 부사다. 유수화 시인은 ‘슬쩍’이라고 하는 부사를 씀으로써 자신이 마음의 틈새가 벌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짝짓기하는 논병아리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그 틈을 타 누군가가 비어 있는 주머니에 봄을 ‘슬쩍’ 넣어준 것이다. 그리고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그것에 자기도 모르게 끌리면서 또 끌려가면서 “이것도 죄냐”고 소리친 것이다.

“이것도 죄냐”, 아무도 그것이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자는 “이것도 죄냐”고 소리치면서 끌려가는 자신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죄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병아리들에게 소리쳐 물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논병아리들에게 물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물은 것이다. “이것도 죄냐”, 화자는 두려운 것이다. 언젠가부터 벌어져 있던 마음의 틈새로 파고드는 이 힘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 넣어준 봄을 ‘슬쩍’ 받아 넣기는 했지만, 그것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두려웠던 것이고, 한편으로는 틈새를 파고 들어온 그 역동적인 어떤 힘에 자신이 한없이 끌려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것도 죄냐”?

또한 화자의 ‘주머니 속에’ 넣어준 것은 ‘봄의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화자가 열어놓은 마음의 큼새로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봄’이다. 봄은 무엇인가? 희망이고, 사랑이고, 시작이고, 꿈이다. 만약 틈새가 없었다면 과연 이런 귀한 보석들을 화자는 가질 수가 있었을까? 아울러 여기서의 틈새는 ‘행운’이다.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빡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연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 싸여 마늘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 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조용미 「가을밤」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틈이 없이 밀봉해 두었다. 그랬더니 “마늘도 꿀도 아니”고, “마늘이고 꿀이다”라고 했다. 먹기 좋게, 몸에 좋게 변해 있었다는 애기이다. 틈새가 벌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단단히 닫혀 있었기 때문에 먹기 좋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틈새가 있어 빗물이 들어가고 먼지가 들어갔었다면 아마 변질되었을 것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꿀과 마늘이 오랜 세월 잘 섞여, 몸에 좋게, 먹기 좋게 변한 것처럼, 당신도 나한테, 나도 당신한테 잘 맞게 변한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의 틈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속의 당신은 참당신이 아닐 것이다”에서의 ‘참’은 ‘진실된’의 뜻이 아니라, 조금은 모난, 혹은 까칠한, 혹은 무뚝뚝한, 을 말할 것이다. ‘내 속에’ 갇히기 전의 당신, 덜 다듬어진 당신, 바로 그것일 것이다. ‘당신’이 ‘내 속’에 갇힘으로해서 당신은 “나의 손과 발을 때뜻하게 해 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이 된 것이다. 그래서 깊은 가을밤, “방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 것이다. 은근한 ‘사랑’을 이름일 것이다.

조용미 시인은 여섯 개의 연에 ‘마늘꿀절임’과 ‘당신’을 한 연씩 배합시킴으로써 시각적 효과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이 시의 행간 사이에서도, 한 행씩, 혹은 한 연씩 잘 섞어 쓴 것을 볼 수 있다. 내용에서나 시의 형식에서나 빈 ‘틈’이 없는 것이다. 절묘한 배합이 아닐 수 없다.



1

중국 여행길에 중국명주라는 술 한 병을 사왔다. 혼자 마시기 아까워 아끼고 아끼다가 어느 날 드디어 개봉하려는데 술병이 너무 가볍다. 귀에 가까이 대고 살살 흔들어보자 거의 빈병이라는 느낌. 이리저리 병을 돌려가며 자세히 살펴보니 보일 듯 말 듯 실금이 갔다. 남은 술을 따르니 겨우 작은 잔 하나도 다 못 채운다. 그동안 실금 사이로 살금살금 알코올이 달아났던 것이다.


2

자궁을 빠져나오느라 내 몸에도 실금이 생겼는지

실금 사이로 조금씩 증발하는 알코올처럼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목숨

휘발성이 너무 강해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미리 따라볼 수도 없고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어 더 궁금한

―이상호 「휘발성」


“알 수가 없어 더 궁금한”. 요즘, 우리나라 4,50대들은 현대에 들어 우울증이 급증한다고 한다. 이유인 즉, 어느 날 갑자기 보니, ‘나’라는 존재가 없더라는 것이다. 20대에 결혼을 해서 아이 낳고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거울은 보니, 나는 없고 웬 늙은 사람이 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라는 얘기다. 물론 자주 듣는 얘기지만, 거울 속의 노인이 자기라고 생각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월이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몸에 균열이 와, 여기저기가 아프고 저려온다면, 삶이 짜증이 나고 평화롭던 생활이 리듬이 깨지기 마련이다. 이상호 시인도 「휘발성」에서 “아끼고 아끼다가 어느 날 드디어 개봉”을 했더니, 꽉 닫혀 그대로 있을 줄 알았던 술이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실금’ 사이로 살금살금 빠져나가 ‘작은 잔’하나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고 했다. ‘1’은 ‘2’를 쓰기 위한 예시에 불과하다. ‘2’에서 시인은 자신의 몸에도 언제 “실금이 생겼는지” “실금 사이로” 자신의 “목숨”이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2’에서의 ‘휘발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세월이 지나가버렸음을 말하며 ‘인생무상’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실금이 있다. 그 틈 사이로 세월이, 혹은 사랑이, 혹은 돈이 빠져나가기도 하고, 식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파고 들어와 고독해지기도 하고, 몸살나게 누군가 그리워지기도 해서 세상을 방황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안한 ‘실금’은 우리에게 어떤 면에선 조미료이다. 어쩌면 희노애락이 이 ‘실금’을 통하여 이루어져 가는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무료할 때, 고단할 때, 누군가 보고 싶을 때, 실금은 우리에게 조금씩 ‘시간’을 빌려준다. 빌려주는 그것이 바로 숨구멍, 틈새인 것이다.


전복, 패각에 달라붙은 살을 떼어내려 하자

등 돌리며 완강하게 저항을 해뫘다

파래빛 잔등이 꿈틀댈 때마다

등에 얼룩진 바닷물 자국이 파랗게 부풀어 올랐다


틈이 없는 완강한 뒷모습은 언제나 당혹스럽다

호흡을 고르며

다시 얇은 숟가락으로 패각의 밑바닥을

달래둣 부드럽게 파 내려갔다

이렇게 캄캄하고 긴 터널을 더듬어,

나는 얼마나 더 아득히 내려가야 하는 걸까

틈새가 보이지 않는 너의 눈빛은 언제쯤 녹게 될까


패각 속과 밖에서 쌓여만 가는

우리의 씁쓸한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안

말랑한 초록빛 내장에 숟가락이 닿아있었다

작은 틈새라도 있으면 이렇게 너에게 닿을 수 있는데,

전복은 가슴 한 복판의 삼장까지 꺼내 보이며

서서히 몸을 열었다

마음과 몸이 맞닿아 출렁이듯

그렇게.


패각 속과 밖이 틈새로 벌어지자

푸른빛이 너와 나를 빠르게 이어가고

순간, 푸른 틈새가 날개를 퍼덕이다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김정임 「푸른 틈새」


김정임 시인은 “틈이 없는 완강한 뒷모습은 언제나 당혹스럽다고 했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완강하고 단호하다. 그래서 무섭다. 접근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다. 너그럽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다. 그래서 김정임 시인은 ‘틈이 없는’것을 ‘완강한’이라고 표현했다.

“완강한”것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당혹스러울 뿐만 아니라, 용기조차도 낼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화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달래듯 부드럽게” 접근한다. 그랬더니 전복은 “가슴 한 복판의 심장까지” 내 보이며 “서서히 몸을” 연 것이다. “틈새가 벌어지”는 것이다. “틈새가 벌어지자” “푸른 빛이 너와 나를 빠르게 이어가고” “푸른 틈새가 날개를 퍼덕이”게 만든 것이다. 네 ‘눈빛’을 녹이고, 너와 나를 이어준 것이다. ‘틈새’의 힘이다.


집으로 오는 골목엔 玉들이 많았다


수성玉, 금성玉, 토성玉, 은하 같은 골목을 기웃거리면 저마다 분홍 커텐 나른하게 바람에 날리던 유곽들

달밝이가 되면 아버지들은, 비린내나는 우주선을 부두에 묶고 그리운 행성에 불시착했다 나는 조난당한 아버지를 수색하러 수성에서 금성으로 금성에서 다시 토성으로 우주미아처럼 어슬렁거렸다 유리가 가린 아버지들은


외계에서 온 누이들 교태에 쓸쓸한 漁勞를 기대곤 젓가락전파를 송신했다 홍도야우지마라, 섬마을선생님, 동백아가씨, 트로트로 바꾸어진 S.O.S들은 창밖으로 과메기 널린 은하의 변방으로 별똥별처럼 푸르게 푸르게 날아갔는데 가끔씩


눈가에 그믐달 붙인 어머니들이 난파된 아버지들을 구조하러 왔다 대판 우주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미닫이창을 열고 와!와! 분홍 함성 흔들어대던 골목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별들이 사는 곳이 유곽이란 걸 나이 좀 더 들어 알게 되었지만,


누이들이 건네준 유과를 깨물며 탱자나무 담벼락을 돌아 물고기좌를 건너가면, 어린 등을 토닥거려주던 저녁의 손이 일찍 도착한 별 몇 개 처마 끝에 매달기 시작했다

―김영식 「그 골목의 별들은 따뜻했네」


인생은 어쩌면 긴 여행인지도 모른다. 끝도 없는 지루한 여행… 나이 많은 아버지들은 그 지루한 여행에서 잠깐씩 쉬고 싶다. 그래서 가끔은 인생의 틈새로 빼곡히 문을 열고 빠져나온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분홍 커텐 나른하게 바람에 날리”는 “유곽”으로 향한다. “달밝이”는 무료한 아버지들에게 일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보름 이후 이틀 정도 달이 밝아 조업을 하지 않는 기간 동안 아버지들은, “누이들 교태”를 찾아간다. 여기서 ‘누이들의 교태’나 ‘유곽’은 인생의 따뜻한 틈새이다.

화자는 여기서 누이들을 “외계에서 온”이라고 했다. 우리의 어촌의 일상적인 삶의 행보와는 ‘다른’, 혹은 ‘신비한’의 의미일 것이다. “외계에서 온 누이들”은 “달밝이” 틈새로 빠져나온 아버지들을 “은하의 변방으로 별똥별처럼 푸르게 푸르게 날”려보낸다. “눈가에 그믐달 붙인 어머니들이” 틈새에 낀 “아버지들을 구조하러”온다. “대판 우주전쟁”도 발발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김영식 시인은 제목에서 「그 골목의 별들은 따뜻했네」라고 했다. 화자가 “나이 좀 들어” 알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별들이 사는 곳이 유곽”인 걸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유곽의 별과 아버지들과, 철이 든 화자가 공통적으로 찾아낸 것은 인생의 틈새에서 ‘유리하는’ 것이다. 외로운 이들의 등을 토닥여 주는 곳, 어둔 골복(인생)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어두운 별(유곽)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마을의 틈새에 끼어있는, 아버지들의 외로움을 받아 주는 곳, ‘유곽’, 고독한 세상 위에 떠 있는 빛나는 별이 아닐 수 없다.


샛강 얼음밭에

별자리 하나 새로 생겼다


꽃밭자리


밤낮으로 누구나 볼 수 있게 별들이 뜬다

사계절 한꺼번에 볼 수 있게 꽃들이 핀다


방사선모양으로 뻗은 꽃잎들,

매화, 무궁화, 코스모스, 눈꽃 하얗게 피어

시공을 넘나들며 서로 신호를 보내면

얼어붙은 내 마음에도

방사선무늬 별하나 뜬다

샛강 얼음밭 꽃밭자리에

빛나는 별이 되어

뚜뚜 뚜뚜

봄을 부른다

―황경순 「얼음 2」


얼음에 금이 갔다. 쩌억쩍 금이 간 얼음이 “방사선모양으로 뻗은 꽃잎들”을 만들어 내고, “방사선 무늬의 별”을 만들어 낸다. 화자는 하얗게 금 간 자리를 “매화, 무궁화, 코스모스”로 피워 올린다. “시공을 넘나들며” “꽃”으로 “별”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시인의 발상은 만들어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뚜뚜 뚜뚜”라고 하는 의성어를 동원했다. 기상나팔 소리 같은 이 의성어는 얼음이 녹는 모양을, 기발하게도 소리로 나타낸 것이다. 그 다음 행간 “봄을 부른다”의 결구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몸을 사르는, 자기 몸이 단단한 채로 굳어 있어서는 봄이 건너오지 못하므로, 또 스스로 녹지 않고서는 마지막 결구를 살려내지 못하므로, 경쾌한 자기 희생적 의성어를 대동한 것이다. 화자는 얼음이 깨어진 틈새로 “봄을 부른” 것에 성공한다.


‘틈새빛살’이라는 것이 있다. sun rays라고도 불리우는데 구름 틈새로 쏟아져 나오는 레이저 광선 같은 빛줄기를 말한다. 이 빛은 구름 밑 세상이 어두울수록 그 밝기가 더해진다. 구름의 틈새로 쏟아져나오는 햇살이 부채살처럼 퍼져 세상을 환하게 비춰준다. 그런데 그 밝기가 맑은 날 햇살이 지상에 쏟아지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왜냐하면 구름 위에서는 같은 밝기의 태양빛이 비추지만 구름의 두꺼운 수증기 속을 다 통과하지 못하고 산란되어 흩어지는데 그 구름과 구름사이에 틈이 벌어져 빛이 산란되지 않고 통과하게 되면 그 통과된 빛은 산란된 빛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틈새로 쏟아지는 빛이 훨씬 강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