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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성탄절에 대한 기억

내가 성탄절을 알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초등학교 2-3학년 때쯤 일 것이다.

어쩌면 그 전에 책 속에서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도계인가 어느 깊은 산골에서 좀 살았던 기억도 있지만,

주로 고향 마을에서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와 4대가 거의 함께 살았다. 물론 잠은

따로 잤지만, 그 전에는 큰집에서 아마 함께 살았을 것이다.

우리 집이 언제부터인가 분가를 했고, 그 때는 동네 건너편, 방앗간 옆에서 살았다. 방앗간

은 물론 우리 거였다. 우리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모두 함께 하는.....우리 아

버지는 늘 외지를 떠도셨고, 대구로 오기 전에도 아버지는 혼자 대구에서 정착을 하셨다.

거의 스님처럼 머리를 깎고 대처승처럼 지내셨던 할아버지 때문에 교회란 건 구경도 할 수

없었고, 동네에서 아마 몇 분이 다른 동네 교회를 다니셨을 지도 모른다.

자리가 좀 잡혔다고 아버지는 가족을 대구로 이사를 시키셨다.

그 때가 초등학교 1학년 여름이었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변두리, 논밭과 목장, 그리고 금호강이 흐르는 시골보다 좀 번화한 곳

이었다. 척박하지 않아서 좋은 기억이 많이 나는....

동생들을 자주 봐주어야 해서 시간이 부족했지만, 성탄절이 되면 친구들의 인도로 교회를

가 보게 되었다. 그 때는 대부분, 교회에서 선물을 주는 것에 매료 되었던.....

특히 5-6학년 때는 지금도 친한 친구의 인도로 교회엘 자주 가보게 되었다.

신앙을 가지기 보다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자유스런 분위기, 기도하는 분위

기 등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노래하는 분위기도 좋았고, 성탄절엔 특히 집에서는 보기 힘든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 그런 반짝거리는 화려한 장식들이 눈을 매료시켰다. 나와 친했던

친구는 온 식구가 교회에 다녀서 부럽기도 했지만, 우리 아버지는 내가 교회 가는 걸 무척

싫어하셨다. 불교적인 정서가 뿌리 깊은 아버지는 특히 기독교의 나쁜 점을 많이 보신 듯

안 좋게 생각을 하셨다. 어머니는 꼭 신앙이 아니어도 그런 곳에도 자꾸 다녀봐야 한다면서

교회에 가면 친구집에 갔다고 둘러대 주시곤 했다.

중학교는 미션스쿨....카톨릭 학교였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수녀님이셨고, 교장선생님은 신부님이셨다. 그 신부님은 참 조용하

면서도 인자하셨던 기억이 난다. 담임선생님은 얼굴이 무척 아름다운 분이셨는데, 수녀님이

라고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입이 거칠고 말씀을 함부로 하셔서 좀 실망을 하긴 했지만....

학교의 강당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 아름답고 단아한 교정, 구약성서를 배우는 시간도 무

척 경건하고 재미있었다. 행사 때마다 올리는 미사 시간도 나로선 싫지 않고 그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그 스토리같은 구약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아주 좋았다.

중학교 때는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고, 사립이어서 선생님들의 분위기 또한 안정되고 무척 좋

았던 기억이 뚜렷하다. 참 인간적이고 따뜻하셨던.....언젠가 종교를 가진다면 카톨릭신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좋았던 것을 학교 주변의 환경, 그 중에서도 수녀원

이 담장 너머에 있엇다. 수녀님들의 아름다운 합창소리, 넓은 정원에서 일하는 모습, 밭에서 일

하는 모습들이 교실 복도나, 건물 계단에서 보면 잘 보여서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다. 유럽이 그런 모습이라고 해서 은근히 동경하기도 했다. 또 교문을 나서면 또 성

모당이 있었다. 커다란 성모마리아상이 있고, 주변의 정원이 사계절 아름다워서 마음이 심란하

면 거닐곤 했다. 신자는 아니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손을 모아 기도하기도 했던.....

졸업을 할 때, 성적이 좋아서 상을 많이 받았다.

그 상품은 주로 종교적인 것이었다. 차석으로 졸업을 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상을 많이 받았는데

교육장상 다음인 재단이사장상의 상품은 '피에타상' 조각품이었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 집 한

쪽에 잘 보관되어 있다. 또 어떤 상은 '성모자상', 또 어떤 상은 선과 악의 모습을 대비하여 만든

두꺼운 화보집이었는데, '구원의 빛'었던가? 컬러로 되어 지금 생각해도 값으로 따지자면 엄청

나게 비쌌을.....엄마는 좀더 생활에 필요한 상을 주었으면 좋을 텐데, 다 성당에서 쓰는 것이라

고 못마땅해 하시긴 하셨지만.....암튼 덕분에 오래오래 그 향기가 우리 집에 남아 있다.

그리고, 성탄절엔 친구들과 저녁 늦게까지 과자파티를 하며 지냈다.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시는 집을 고르거나, 우리 집 이층처럼 독립된 공간에 부모님들의 허락을 맡

고 놀기도 했다. 성탄절의 의미보다는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며, 서로의 우정을 나누었다.

정식으로 성탄절을 맞게 된 건, 여고 1학년때였다.

초등학교 때 부터 친한 친구 때문에 결국 동네의 그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아버지의 반대는 여전

했지만,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나로서는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을 다지고 싶

었다. 어머니 덕분에 주일엔 잘 다닐 수 있었다. 암기력이 좋았기 때문에 성경암송대회에서도 상

을 도맡아 놓고 탔고, 성가대도 하고, 아무튼 열심히 참여했다. 성탄절엔 밤을 세워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께거짓말을 하는 것이 무척 속이 상했다. 성탄 전야에 성대한 축제를 했다. 고등부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에 추축이 되어 참가를 했다. 특히 나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

의 작품에 배역을 맡아 연기를 했다. 구두쟁이의 아내로 주인공에게 바가지를 긁는 역이었는데,

연습도 많이 했다. 속으로참 좋아했던 친구와 부부역할을 해서 은근히 더 좋았던....자정이 되면

선물 교환을 하고, 찬양등을 하다가 새벽이 되면 새벽송이라는 것을 돌았다. 신자들의 집을 돌아

다니면서 축복을 전하는....우리 집엔 물론 갈 수 없었기에 속이 상했지만,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것이 대단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다.

2년 동안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신자가 못된 것은 마음으로 믿지 못했던 탓도 있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또는, 종교라는 자체가 어쩌면 사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우리 집 형편이 너무 피폐

해져 있었기에....현실을 직시하고 나의 앞날을 개척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대학 이후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있었다. 때론 파트너를 만들어 파티란 곳도 가 보았고,

무슨무슨 페스티발에 파트너로 따라 가기도 했던....때론 맘 편한 친구의 집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잔뜩 사다놓고, 먹고 마시며 즐겁게 게임도 하고 얘기도 나누었던....

아무튼, 성탄절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화려하고 들떠 지냈건, 경건하게 보냈건, 나에게는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결혼 후, 아이들 어릴 때는 꼭 산타 대신 선물을 숨기기도 했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이젠, 그도 시들해져서, 작년부턴 트리도 만들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

어 먹곤 한다. 우리 나라 사람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겪지 않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참, 그리고, 작년에 초등학교 동기회에 처음으로 나갔는데, 교회에서 같이 연극을 한 친구를 만났

다. 어찌나 반갑던지,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상봉식을 했다. 그리고 올해도 이번에 시집을 내서

따로 보내지는못했지만, 그날 바로 주었더니 너무나 좋아하며 축하를 해 주었다.

한 해가 정신없이 정말 화살처럼 스쳐간 듯하다.

너무 바쁘게 살아서, 어제 겨울방학을 하고 보니, 오늘 아침엔 눈은 떠졌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아마 며칠은 끙끙 앓을 테지만, 모레부터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오후엔 장을 잔뜩 봐왔다.

TV와 라디오에선 크리스마스에 싱글이냐, 커플이냐를 놓고 말들이 많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은

흘러가므로, 내년엔 더 나아지겠지....그런 기대로 올해도 보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가족 모두가

현재처럼 건강하고, 새해에는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기도해본다. 성탄절 밤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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