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는 저리 가라, 나는 피어나리라
순서는 저리 가라, 나는 피어나리라
올봄은 정말 잔인한 계절이다.
3월 내내 눈비 내리고 찬 바람에 잔뜩 웅크려들 수 밖에 없었는데, 4월이 시작되어도
기온은 여전히 낮고, 음산하기만 하다.
오늘 아침 출근길, 모처럼 밝은 햇살이 비치니 어찌나 황홀하던지!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꽃들은 아랑 곳 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세상을 향한 미소를 조금
늦추었을 뿐인 듯 하다. 아무리 찬 바람이 불어도 나뭇가지가 얼어붙을 듯 해도, 그 꽃눈
들은 튼튼하게 살아 햇살을 마중하고 있는 것이다.
올봄의 특징이라면, 먼저 피던 꽃들이 조금 주춤했다는 것일 게다.
가장 먼저 피던 매화가 산수유와 함께 피게 된 것도 몇년 전부터의 추세이고, 서울에서는 산수유
와 개나리가 거의 동시에 핀 것이다. 매화는 이 쪽엔 흔하지 않으니 아직 그 소식을 잘 모르겠지만
산수유 피었으니 당연히 그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있을 것이다.
임진강가의 우리 농장 근처의 밭에는 매화나무가 많은데, 아마 서울보다 한참 북쪽이라 아직 피지
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조용히 그 꽃망울이나 봐주러 다녀와야 할까 보다. 우리 밭에도
올봄에는 그 매실나무를 심을 것이다. 3-4년 후면 피어날 그 꽃들을 상상하니 벌써 황홀해진다. 지
구의 온난화 현상 때문에 북쪽까지 매화나무가 자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잔뜩 움츠려든 꽃들이 애처롭다.
사람도 그러하다.
제대로 꽃 피어 보지도 못하고 바닷물 속으로 실종된 꽃다운 젊은이들, 부디 언 가지를 이겨낸 산수
유꽃처럼 환하게 나타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목숨들이 울부짖는 소리 때문에 이 봄이 더욱 잔인하고 음산한 것이 아닐까?
4월, 환한 꽃들 속에 모든 것이 새롭게 생동하여 좋은 소식만 들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