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시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시인 황경순 2010. 1. 4. 22:01

아무도 밟지 않은 길

농장 가는 길,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길,

태초의 길이 이랬을 거야.

니가 옳다

내가 옳다

흑백 논리로만 이어지는 세상,

아무리 우겨도

진실을 이길 수는 없다고

어두운 곳은 밝게

밝은 곳은 알아볼 수 없게 뭉개 버리는 눈.

여길 밟아봐!

여길 딛고 멀리 보란 말이야!

눈이 하얀 몸을 온통 내밀며

소리친다

쿡 찍힌 발자국 하나,

또 하나 또 하나

이방연속무늬로 찍혀가면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술술 풀리고

알 수 없던 그 마음까지 하얀 눈 발자국 속으로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쏙쏙 들어온다

아무도 밟지 않는 길에서

눈이

세상을반전反轉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