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시

슬픈 유리성

시인 황경순 2009. 11. 20. 01:00

슬픈유리성

11월 아침,

갑자기 닥친 한파로

논에 유리성이 생겼다.

벼 밑동 기둥사이로 하얀 성이 밤새 들어서고

투명 유리창이 곳곳에 뚫려

속이 훤히 보인다.

투명 유리창속에서

노란 벼 낱알들과

미처 제 갈 곳을 찾지 못한 애벌레들이 일렁거리면,

참새들은

슬픈 눈알을 굴리며

성을 맴돌고 있다.

유리성이 어제의 그 물이 아닌 것처럼,

아침 참새의 눈은 역시

엊저녁의 그 눈이 아니다.

만물이 제각기

슬픈 유리성을 쌓으며......

순간이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