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과의 이별
해마다 이맘 때면 이별을 한다.
1년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새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올해 유난히 장난꾸러기가 많았다.
학교에 들어와서 적응하느라 바빴던 1학년, 습관을 잘 잡아주어야한다는 마음에
앞서간 적도 있지만, 1년 내내 정신없이 살았다.
까불어도, 생각은 너무나 창의적인 몇몇 그 녀석들을 만난 것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마지막 악수를 하면서 한 명씩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이별을 고했
다. 울컥 눈물이 글썽이는 이쁜이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내년에도 같은 반이 되
어달라고 살짝 이야기하는 이쁜 입들 때문에 작은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마지막 당부말을 하는 시간, 하고 싶은 말을 해 보라니까.
'ㅎ이', 그 녀석은 대놓고 말한다.
하나도 안 섭섭해....
정말?
반말 반, 혼잣말 반 혼자 중얼거렸다.
원래가 청개구리과다.
꼭 남들과 반대로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러면서도 미주알고주알 질문은 제일 많던 녀석이다.
3월초, 하교지도를 할 때는 횡단보도고 뭐고 천방지축 하도 제일 먼저 뛰어 가길래 두
달 동안 그 녀석 손을 꼭 잡고 갔다. 처음엔 절대로 손을 잡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손을 빼려고 했다. 손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다소곳이 잡을 때까지 1주일이 걸렸다.
그만큼 스킨쉽에 굶주려있다는 증거였다.
그후론 꼭 한쪽 손은 그 녀석이 잡고 가려고 했다. 그래도, 감정 기복이 심해서 삐치면
게임에도 참가 안하더니, 이젠 무척 안정이 되었다. 머리도 좋고 글도 잘 쓰는데, 뭐든지
안 하려고 하던 녀석, 자신있는 받아쓰기는 매일 하자고 조르기도 했다.
엄마도 있는데, 워낙 바빠서 나는 그 녀석 엄마 얼굴을 모른다.
하도 산만해서 상담을 했는데, 엄마 대신 아빠가 오셨다. 아빠가 눈시울을 붉히며
관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하셨다. 거의 누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곤 하셨다면서...
누나도 그 녀석을 예뻐하긴 하지만, 엄마 몫까지는 무리였는지...
마지막 날까지도, 정리를 일부러 안하려고 해서 나를 속상하게 했다.
그러면서, 하나도 안 섭섭하다고....
정말이냐니까, 정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눈빛은 아니다.
정말 몇 학년 하시냐니까요?
다른 아이들 나간 다음에 그 녀석이 일부러 다시 와서 물은 말이다.
왜? 하나도 안 섭섭하다면서?
다른 학교로 가는 건 아니죠?
갔으면 좋겠어? 3월 2일날 문집 받으러 오라고 했잖아. 다른 학교 가면, 3월 2일날
못 오는 거야. 그 날 보자...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뛰어간다.
또 환경이 바뀌면 길길이 뛸지도 모르는데,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미래엔 어엿한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해마다 이 맘 때면 쓸쓸하다.
일말의 보람도 있지만, 정들만 하면 이별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기도 한다.
말대꾸의 왕자 또 하나의 'ㅈ이', 이 녀석은 반 년 동안 수업중에도 일어서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녀석, 2학기때부터 겨우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 버릇은 잡을 수 있었지만, 조금만
틈을 주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녀석이다. 그러나, 발상만큼은 끝내준다. 시상도 잘 잡고,
뭔가를 던져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다.
또 한 녀석, 우울한 녀석이다.
일년 내내 많이 웃으라고 한 말이 제일 많았을 것이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골을 내고,
친구들과 싸우고, 참지 못하고.....이 녀석도 이젠 전보다 훨씬 많이 웃고, 조금은 배려를
배운 것 같다. 작은 초코렛 하나 주고 갔으니까....(누나에게 받은 것 까서 그 중에 하나..)
대단한 발전이니까...
또 있다.
한글미해득아, 아마 난독증인 듯 하다. 수학셈은 잘 하는데, 글자는 거의 모른다. 자기 이름
도 그릴 정도이고 읽지를 못한다. 쓰기는 그저 글자를 그리는 수준.....글자를 모른다는 열등
감으로 수업 시간에 남들 괴롭히기 일쑤이고, 읽기, 쓰기가 안 되니 거의 모든 과목에 흥미를
잃은 녀석, 나름대로 개별지도를 많이 했지만, 발전이 미미하다. 특별반 쪽으로 가야하는데,
엄마는 상담을 요청해도 오지 않고,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그 녀석만 생각하면 걱정이 앞설
뿐이다. 그런데도 정은 많다. 살며시 사탕도 하나씩 갖다 주고....
또 한 녀석을 더 들자면, 이녀석은 앞의 저 녀석과는 또 다른 케이스.
앞의 녀석이 부모님의 방치로 치료와 기초교육의 시기를 놓친 경우라면, 이 녀석은 정말 엄마
의 사랑을 듬뿍 받아, 엄마의 정성으로 한글, 기초 셈을 익힌 녀석이다. 읽기는 잘 하지만, 쓰
기는 들쑥날쑥이라, 100점을 맞기도 하지만, 3-40점을 맞을 때도 있다. 숱한 반복을 거쳐야 다른
애들을 따라갈 수 있는 녀석이다. 나와 개별학습도 하고, 따로 교과보충교사에게 보충도 받고 ,엄
마와 또 복습을 해도, 정착이 되기는 쉽지 않다. 바로 받아쓰기를 보면 잘 나오는데, 하루 지나면
많이 잊어버리기도 하는.....그리고 또한 아집이 강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닥투닥 싸우기도
한다.
암튼 내가 자리 비었을 때 다른 반 선생님이 와서 수업 하다가 애들이 말이 어찌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뛰어난 녀석들, 보통인 녀석들, 걔중에는 두뇌회전은 잘 안 되는 녀석들도
있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면 강한 성격의 녀석들이 주축이 되어 큰소리를 치다 보면 엉망이 되니..
2학년이 되어서는 모두 더욱 차분한 마음으로 열심히 생활하기 바랄 뿐이다.
잘 하는 녀석들은 어디가서나 잘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걸리는 녀석들이 내내 걱정스럽다.
부디 새학년이 되어서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