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단시초短詩抄/강우식
시인 황경순
2008. 12. 31. 21:45
단시초短詩抄
강우식
1.생
죽기 살기로 한사코 붙잡고 늘어지고 싶다.
아무리 하나님이
회초리를 든다 하여도, 죽어라
말 안 듣는 초등학교 생도가 되고 싶다.
2.사랑1
바다 속
땅 속
몇 천 만자
깊이
유전은 발견하면서도
몸속
유전은
왜 모를까.
유전이다.
내 가슴 속
사랑의 샘이
터졌다.
기름값
좀 받겠다.
3.항로
여자라는 무거운 짐을 싣고서
난바다를 가는 듯 안 가는 듯 가는
컨테이너 화물선 같은 사내. 사랑 때문에
가끔 뱃고동 소리처럼 목젖 떨려도
묵묵히 가야 할 항로가 있다.
4.목숨이 있어
목숨이 있어
정관, 담석, 치질, 위암수술
째고 자르고 꿰매고도
끈질기게 살아왔다.
목숨이 있어
일, 경, 현, 숙, 옥, 문, 분, 등의 여자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도
살 아프게 살아왔다.
목숨이 있어
하늘만큼 바다만큼 살아온
모든 업 내가 안고 죽는다.
목숨 다한다는 것, 끈끈한
삼복더위에
을지로통 강서연옥에서
냉면 한 그릇 먹는 것처럼
시원하다.
5.묘비명
어머니가 그리워서
한 잔 술에 취하면
수없는 꽃들의 손목을 잡고
하룻밤 같이 자자던
사내.
한 그루 나무처럼
끝없이
홀홀했던 인생.
여기 고향바다에서
한 줄의 시가 되어
잠들다.
만세! 만세!
-'문학과 창작' 2008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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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시집 '별' 출간
미네르바시선 1호 /연인M&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