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친정 나들이

시인 황경순 2008. 8. 19. 10:34





5일 동안 집을 비웠다.

아마 친정 나들이로는 가장 신기록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와 동생들은 방학 하자 말자 왜 안 내려오냐고 성화가 대단했다.

때가 되면 볼 사람은 꼭 봐야한다는 거....

남편은 휴가철 지났으니, 사무실 자리 비우기가 그렇다 하고, 작은 딸은 친구들과 여행이 잡혀

있다니, 큰 딸과 둘이서만 떠났다. 그나마 큰 딸은 주말에 학원을 가야해서 같이 올라올지 더

머물지 결정을 못 하고 떠났다.

첫날

14일, 오후에 떠나서 대구에 도착하니 7시30분.

밀리지 않는 길을 잘 택해서, 휴게소 마다 쉬엄쉬엄 쉬어서 여행 기분까지 내니 좋았다.

휴가철이 지나서 여동생은 바쁘다고 늦게야 왔다가, 광복절날까지 일이 바쁘다고 새벽 일찍 일

어나 출근을 하고....

아무튼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한 저녁은 단란하고 행복하다.

나만 멀리 떨어져 사니, 늘 애틋하다.

그래서 내가 내려간다면 모두 열일 제치고 모이는데, 이번엔 여동생에게 정말 미안하다. 휴가철

놓치고 내려가서 피곤하게 했으니....

이틑날

15일, 아침 일찍 일어나 물놀이를 가기로 했으나, 불발이 되었다.

전날 저녁 마신 술들로 늦으막히 일어났고, 그 동안 밀렸던 피로가 친정에 가니 한꺼번에 다 몰려

오는지 몸살기까지 있어서.....어린 조카들은 들떠 있다가 실망을 하고....

점심 식사를 위해 코스트코 나들이를 했다.

장도 볼겸 싸고 괜찮은 피자를 먹자는 의견을 받아들여서....

서울에도 우리 집 근처에 코스트코가 있는데, 물건을 대량으로 살 일이 많지 않으므로 회원으로 가

입하기가 그래서 안하고 있는데, 물건값이 꽤 저렴해서 고려해보기로 했다. 식구가 많은 우리 집은

생필품비용도 만만치 않으므로.....피서가 따로 없었다. 어찌나 시원한지....천정이 높은 매장에 시

원한 바람이 냉동실처럼 불어오니..

이것저것 쇼핑을 하다 보니, 그새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대구 경산 지방에 폭우경보가 내렸다.

와!

비가 어찌나 쏟아지는지, 곳곳에 하수도가 역류하기도 하고 길마다 개천이 된 것 같았다.

집에 올때는 그래도 비가 잦아들었는데, 그 때부터가 문제였다.

저녁에 모처럼 초등학교 소꿉친구들을 만나기로 했고, 우리 딸도 서울로 태워 보내야 하는데...

원래 딸과 같이 갈 때는 같이 올라오려고 차를 가지고 갔으나, 모처럼 며칠 시간이 있으니 더 머물

기로 하고,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잡아둔 것이었다. 비 그치기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동생차를 타

고 동대구역으로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었다. 오거리는 완전 강처럼 빗물들이 모이고, 분수처럼

하수도가 역류하는 곳도 있었다. 집중호우에는 아무 대책이 없나 보다.

그 빗길을 뚫고 우산은 쓰나 마나, 강물같은 보도를 뚫고 딸에게 표를 끊어주고 시간되면 가라고

하고 동생에게로 왔는데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엔 약속장소로 이동하는데, 황

금동까지 가야하는데, 중간에 무슨 지하차도로 지나려니 경찰차가 길을 막고 있다. 아마 거기에

물이 찼나 보다. 할 수 없이 빙 돌아서 칠성동까지 가서 신천대로로 진입을 하니 거기는 시설이

잘 되어 있는지 길이 양호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나오라고 한 친구들에게도 미안했지만, 그렇게 얼굴 보지 않으면 만나

기 힘든 터라, 도착하니 다른 친구들도 속속 도착을 했다. 모처럼 만나니 얼마나 좋던지....몇 시

간 동안 저녁 먹고 수다 떨고, 멀리 팔공산 절에 다녀와서 늦게 도착한 친구까지 기다리며, 생고

기와 가오리찜으로 술잔이 돌았다. 어린 시절 이야기는 끝도 없다.

10시가 넘었는데, 바닷가에 다녀온 친구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못 와서 미안하다고, 아직 모여

있으면 그 동네로 오라네....늦게 차 가지고 와서 술 안 마신 친구차로 또 움직였다. 우리 집은

더 가까워져서 다행이라며, 차에서도 수다와 장난이 난무하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그 동네

에서 또 맥주를 마시고 노래방까지 다녀오니 이미 하루는 지나고.....새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새

벽 2시가 되어 띵똥띵똥~~비밀번호를 모르니 할 수 있나....집에서는 그리 늦으면 난리겠지만,

친정인데 뭐....암튼 친정이 편하고 좋다. 모처럼 엄마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3일째.

늦잠 자고, 10시쯤 깼지만 밥이 안 넘어가 티비 보다가, 12시에 다른 식구들은 점심인데 나는 아

점을 먹었다. 그리곤 엄마와 오손도손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 또 낮잠을 달게 잤다. 오후에 남

동생과 어린 조카들이 장을 봐 왔는데, 300개짜리 퍼즐을 2개 사왔다. 오후에는 저녁까지 그거 맞

추느라 눈 빠지는 줄 알았다. 저녁 늦게야 겨우 하나를 완성하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전날 나를

태워다 주고 바로 밀양 처갓집에 다녀온 남동생이 또 왔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또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은 벌써 12시가 훌쩍 넘었다. 엄마와 나란히 팩을 하고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

결에 잠이 들었다.

4일째.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 산책을 했다.

내가 놀던 금호강가, 물이 불어서 나무들이 불쌍하게 이그러져있다.

흙탕물이 가득찬 강, 그 뒤로 보이는 맑은 하늘, 강가를 돌아 모교까지 한 바퀴 돌았다.

아주 이른 아침이라 모교는 교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나팔꽃들만 아침을 환하게 밝힌다.

이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일요일이라 무척 밀릴 터, 부산 친구에게서 대구까지 왔으면서 그냥

가냐고 성화다. 토요일날 대구나 부산에서 만나려 하다가 둘다 술이 덜 깨고 몸이 시원찮아서 관뒀

기 때문에 아쉬움이 그대로 남았기에....원래 아침 일찍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올라 오려고 했는데...

에라 모르겠다. 혼자 오붓한 김에 하루 더 개기자!

부지런히 아침을 먹고 출발이다.

대구-부산간 새로 뚫린 고속도로로 부지런히 밟는다. 청도, 밀양, 양산...경부고속도로로 돌아갈

때 보다 시간이 절반은 단축된 것 같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한 잔 마시고, 풍경도 보니, 산세가

무척 아름답다. 비 구름이 산에 걸려 차분히 가라앉은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청도휴게소에는 청도를 대표하는 특산물이라고 감나무를 멋지게 만들어 놓고 시선을 끌고 있다.

다대포.

몇 번 들렀지만, 발 디딜 틈이 없을 해운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한가하다. 백사장도 넓으니 사

람들이그렇게 많은데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는 몰운대, 평소 운동부족이라 몰운대를 한바

퀴 도는 것으로 여유롭게 보내기로 했다.

몰운대가 백두대간의 시작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바위들과 소나무의 어울림이 너무 아름

답다.구름을 몰래 숨겨 놓아서 몰운대라고 했을까? 작은 땅이 굴곡이 심해서 절경을 이룬다. 곳곳에

널린 바위 틈마다 낚시꾼들이 즐비하다. 고기가 잘 잡히는지, 검은 바위에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가는 곳 마다 벤치가 있고, 화장실이 있고, 참 잘 정비를 해 놓아서 더 좋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기를 낚는 걸까?

세월을 낚는 걸까?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바로 붙은 쪽의 풍경이다.


몰운대 언덕에서 바라본 해수욕장.



마침 밀물 때라 물 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꽤 보인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해수욕장이 있는 바다와 근처의 아파트들




바다가 맞닿은 바위틈에서는 사람들이 열심히 뭔가를 캐거나 줍고 있다. 꽃게를 잡기도 하고, 굴을

캐기도 하고, 어린 자녀들이 있는 집에서는 하루 보내기 참 좋은 곳이 다대포라는 생각이 든다. 모래

가 해운대 같지는 않지만, 서해안처럼 다져진 해수욕장에서 수영도 하고, 몰운대 숲 속에 도시락 싸

와서 먹으면서 땀을 식히고, 또 바위틈에서 해산물도 건지고, 또 낚시 좋아하는 아빠들은 낚시도 하

면, 정말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게다.

낮에는 회 먹었으니, 저녁에는 또 다른 친구를 불러내어 꼼장어구이에 정겨운 대화가 끝이 없다. 밤

늦게까지 해변가의 횟집과 꼼장어집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리하여 또 하루가 그렇게 저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