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시체놀이

시인 황경순 2008. 8. 1. 13:27

이틀동안 시체놀이를 했다.

정신없는 6-7월, 간간이 여행 겸 다녀온 시인들의 행사, 직원 여행, 그리고 워크샵까지

마치고, 집안에 상주하니 몸이 늘어진다.

그래서 이름하여시체놀이를 했다.

울 큰 딸이 붙인 이름인데, 늘어지게 자다, 텔레비전 보기를 반복한다.

그렇다고 끼니를 안 챙겨드릴 순 없고, 때 되면 맛있게 챙겨먹고, 또 뒹구르르....

먹고 또 먹고...

메가티비가 정말 유용했다.

드라마 놓친 것 다 돌려보고, 영화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걸어서 지구 속으로' 인가 하는 여행 프로그램도 여기저기 돌려보고, 몸은 무겁고

그저 리모콘만 든 시체, 대단한 이틀이었다.

맥을 놓으니 머리도 아프고, 온몸이 안 쑤시는 곳이 없다.

장 봐다 맛있는 것으로 도배를 한다. 그저께는 삼겹살 파티, 어제는 불고기 파티,

낮에는 떡볶이 파티....어제 영화 보면서 딸과 약간의 외도를 했다. 홈플러스 하나미

스시에서 초밥을 양껏 먹어주었다. 시부모님과 작은 딸, 그리고 남편에게는 미안했

지만...남편은 또 더 맛있는 사철탕을 먹고 왔다네.....세임세임....

교사라는 직업, 정말 피곤한 직업이다. 남들은 방학이니 쉬어서 좋겠다고들 부러워하

지만, 하루하루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이 사람의 기를 다 빼앗긴다. 나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집에 있으면 아파서 드러눕는다고 한다.

예전에 아이들 어릴때는 방학이면 집안일이며, 아이들 돌보느라 더 피곤했다. 아이들

데리고 평소에 못해 주었던 봉사를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제 아이들은 컸지만, 요즘 학교는 그 전 같지가 않다.

쉬기로 하면야 쉴 수도 있겠지만, 벌인 일들이 자꾸 불러들이고, 연수 두어 차례 받고

나면 그저 빚갚을 날 받아놓은 것처럼 너무 빨리 흘러간다.

이번에도 다음주까지 내야할 보고서 50쪽은 대단한 부담이다. 이제 겨우 시작했으니

씨름에 씨름을 거듭해야 하고, 9월이 오자말자 해야할 일들도 산적해 있다. 올 여름

모임에서 모은 돈으로 북유럽을 계획했으나, 다들 바빠서 날짜를 잡을 수가 없어서

마음이 허전하다. 나는 그 시간 만큼은 비워두었는데...

그렇다고 쉴 수도 없어, 그 다음주는 합숙연수가 또 잡혔다.

이래저래 보람있는 방학을 보낼 것 같다.

오늘은 학교에 나와서 업무를 보고 있다.

7-8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데, 수업도 없건만, 다들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고

있다. 아마 우리가 컴퓨터의 노예가 아닌지...

그나마 나는 하던 일 잠시 멈추고, 싸이트에서 글이라도 올리고 있다.

에어컨도 잘 나오니 시원한 피서가 뭐 따로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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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목어와 법고>
이들이야말로 평생 시체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