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생각과 생활 사이

시인 황경순 2008. 1. 19. 02:39

영등포우체국.

급히 등기를 붙일 일이 있어 우체국이 어디 있냐는 딸의 물음에 언뜻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편물을 직장 옆에 바로 붙어 있어서 부천에서는 아무 고민없이 일을 처리하곤 하는데..

그리고 목동 살 때는 자주 들렀던 목동우체국인데, 오목교 건너 영등포쪽으로 이사오고

나서는 우체국에 갈 일이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바로 영등포역 맞은 편에 있다는 걸 알았다.

영등포문고가 있는 그 삼거리에 있는 건물이 바로 영등포우체국, 여러 번 본 기억이 난다.

딸은 학원 시간이 바쁘다며 내게 꼭 오늘 날짜 소인이 찍혀야한다고 강조를 했다.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이메일로 부쳐주기로 한 사람들 자료가 부실해서 집에서 더

자료 받고 정리를 오전내내하고 났더니 머리도 아프고 했다. 꼼짝하기 싫은데, 엄마에게

그런 심부름이니 시킨다고 딸에게 짜증을 냈다. 딸은 미안하다며, 꼭 부탁한다면서 2시 반

버렸다.

사실 오늘 쯤 해야할 일이 몇 가지 있는데도 귀차니즘에 빠져 걍 버티고 있었는데....여기

저기 쫓아다니다 보니, 집에 있을 때는 그저 움직이기 싫어해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좀 한

심하게 생각되었다. 다음 주를 위해서 대여하기로 한 한복도 골라야 하고, 장도 보아야하

고 은행계좌 정리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모처럼 부탁한 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부

탁하는 일은 늘 마다 않고 투덜거리다가도 어느 새 다 해 주는 우리 큰 딸인데...

미적미적....

3시가 지나고, 벌써 4시가 지나버렸다.

부랴부랴 샤워하고 준비를 하고 나갔는데, 샛길로 가면 영등포역까지 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는데, 경방필 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근처는 길이 너무 혼잡하고 차들이 잔뜩 밀렸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신세계 주차장으로 차를 댔다. 거기서 뭐 좀 사면 되겠지 하고..



우체국에는 소포를 부치고, 편지를 부치는 사람들로 붐볐다.

내게는 우체국이라는 이미지는 설렘으로 다가온다. 예전에 주고받던 편지들, 빈 우편함을 보면

뭔가 늘 기다려지 막연한 그리움 같은 거...기다리는 것이 정말 행복한 것일까?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

번호표를 기다리니 한 20분 걸려 일을마쳤다. 우체국 1층에는 김도 팔고....

2층에는 은행업무를 보고...달라진 풍속도를 보면서 사랑도 달라지는 것일까...그런 생각들이

스쳐가고...

생각은 생각이고, 생활은 생활대로 흘러가야만 한다.

.

.

.

.

.

인터넷에서 검색해 놓은 한복대여점으로 갔다.

다음 주에 어머니 칠순을 해 드리기로 해서남편과딸들의 한복을 대여해서 입히기로 했기 때

문이다. 인터넷상으론 싼 것도 많았는데 막상 보니, 나쁜 것은 그렇고, 대여비도 만만치 않다

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한 번 입고 말 것을 맞추는 것은 너무 낭비인 것 같아서 처음으로 대

여를 시도해보기로 하고, 애들에게도 전화통화를 해서 마땅한 것을 골랐다. 겨울이라 배자까

지 갖추려니 비용은 만만치 않았지만,잘 골라서 예약을 하고 왔다.

딸이 신도림역을 지나는 중이라고 신세계로 온다고 했다. 둘이서 쇼핑을 했다. 딸에게 옷 하나

사주려고 했더니 싫단다.7층에 가서 뚜껑이있는예쁜 찬통과 머그잔을 구입했다. 철 지나 싸

도 너무 싸게 파는 짧은 코트도 하나 챙기고....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이다. 장 보러 간다더니 홈플러스 아니냔다. 지금 그 곳으로 갈 거라고 했더니 오늘 따라

쇠고기 로스구이를 먹고 싶으시댄다. 비쌀텐데, 삼겹살 사가면 안되냐고 했더니, 싫단다. 알았

다고 하면서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는데, 시간이 한 시간은 걸리건만, 배고파 죽겠다고 몇 번이

나 독촉이다. 어디까지 왔다고 보고를 하면서 집에 도착하니 벌써 8시다. 배고플만도 하지...

덕분에 치맛살 맛있게 구워 먹었다. 얼마나 살살 녹던지....

외식하면 20-30만원 날렸을텐데, 그래도 싸게 먹었다고 하면서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니 보

기 좋았다. 오늘 따라 친환경야채 사온 것도 다 팔렸다.

이렇게 하루가 또 흘러가고, 싸돌아다닌 탓에 해롱대며 비몽사몽간 티비를 몇 시간 보았다.

심야가 되면 눈이 더 초롱초롱해지니....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