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시
물거품 사리
시인 황경순
2010. 8. 31. 03:22
물거품 사리
양치질을 하면
면도를 하면
빨래를 하면
거품 속으로 들어간다
바닷물 아래쪽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하얀 거품 환상에 눈 멀어
혹등고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청어떼처럼
거품 그물에 걸려서
하얀 거품 속으로 들어가는 이,
하얀 거품 속으로 들어가는 턱,
하얀 거품 속으로 들어가는 때
누런 이들이, 거뭇거뭇한 털들이, 빨래에 묻은 때들이
거품 그물에 걸려
청어떼가 되었다
환상을 쫓는 것은
텅 빈 혹등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등고래 트럼펫 연주에 맞춰
바다 한 가운데서
모순의 염불을 외며 다비식을 한다
청어떼가 다시 토해낸 거품들이
엑기스만 뽑아낸 물거품 사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