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흙의 꿈/허만하
시인 황경순
2006. 9. 12. 01:29
흙의 꿈
허만하
서걱이는 풀숲 속에 보이지 않는 짐승의 길이 있듯 하늘
에는 더 높은 하늘을 젓는 새의 길이 있다. 부분은 전체보
다 클 수 있다. 밭두렁 돌무더기 속에서 신혼의 손이 찾아
내었던 암막새 조각이 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화려한
날개 펼치고 있는 가릉빈가. 갈고리 발가락이 잡을 나뭇가
지는 천년의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솔바람 소리 내
며 타오르던 장작불 불길이 구워낸 황홀한 흙의 상상력. 무
쇠보다 강한 흙 조각에서 가을바람 소리가 나는 것은 이름
없는 신라 와공 새김칼날 끝에 비치던 은백색 억새 물결 때
문이다. 황룡사 절터 밭두렁 길에서 바라본 코발트블루 하
늘의 맑은 높이. 풍경이란 말이 동사가 되는 추령재 칠십
굽이에서 다시 만나네.흙도 꿈을 가지면 맑은 노래 꽃잎처
럼 뿌리는 새가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