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풀은 죽지 않는다

시인 황경순 2012. 9. 5. 18:27

풀은 죽지 않는다

 

황경순

 

올봄 드센 꽃샘추위에

따뜻한 남쪽에서도

하얀 매화꽃이 눈을 뜨지 못하고

노란 산수유도 아직 몸을 잔뜩 웅크리고만 있다는데

임진강 바람맞이 추운 땅

죽은 풀들 속에

쑥들이 쑥쑥 고개를 내밀고 있지 않은가!

 

다른 쪽 새싹들은 땅을 뚫을 엄두도 못 내는데

죽은 풀들을 헤치니

쑥 뿐만이 아니다

냉이도, 이름 모를 풀들도

여기저기 연둣빛 얼굴들을 내밀고

마른 풀들마저 생기가 돈다

생명들이 꿈틀거린다

그 윤회輪回의 강물에 나도 생기가 돌아

봄을 미리 맞는다

 

봄들판

겨우내

눈보라 견딘 풀더미 속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말라비틀어져도

풀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2012 문학과창작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