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동해안 북부

울진 대게 만난 죽변항에서 추억에 잠기다

울진 대게 만난죽변항에서 추억에 잠기다

다음 마지막 행선지는 울진 죽변항.

1월은 대게철이라 가족들에게 대게를 먹이고 싶어서, 항구에 들렀다.

대게 하면 영덕 대게가 워낙 유명하지만, 원래 울진대게가 옛날부터 임금님께 진상품이었다고 한다.

영덕이면 어떻고, 울진이면 어떠랴? 다같이 동해에서 잡히는 대게니, 아무튼 아래로 자주 갔던 영덕 강구를 가기에는 시간적으로 무리가 따라서, 이번에는 죽변항으로 가기로 했다.

조금 달리다 보니, 울진 대게 쉼터가 보인다.

멋진 대게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작은 섬과 파도, 주변의 하얀 백사장이 가슴을 탁 틔게 해 주었다. 조금씩 비가 흩뿌렸지만, 심호흡을 하며 동해바다의 정기를 들이마셨다. 대게가 어찌나 귀여운 모습인지!






죽변항에는 사람들이 참 많이 북적거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날이 추운데도 사람들의 발길은 뜸하지 않아서 좋았다. 처음 가 본 항구라, 깊숙이 배가 닿는 곳 근처의 어느 집에서 대게를 골라 찌는 동안 항구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잠시 생활의 냄새를 마음껏 맡을 수 있었다. 내가 초임지에서 자주 접한 양포항 어부들은 참 화끈한 분들이었다. 어획량이 많을 때는 무척 인심도 후하지만,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으면 인심도 사나워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바다를 상대로 살아가는 일은, 그렇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것 같았다. 조난사고라도 나면 인심이 더욱 흉흉해지기도 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농촌이나, 어촌이나 하늘을 바라보며 생업을 이으니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농촌의 인구는 엄청 줄어든 반면, 어촌의 인구 감소는 농촌 보다는 덜 한 듯 하니, 바다는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준다는 생각도 든다. 바다에 나가면 뭐든지 얻을 수 있으니까.

동해 바다에서 배가 들어올 시간에 포구에 나가서 배의 줄을 당겨주면 고기를 던져 주었고, 그것을 회 떠 주는 집도 있었다. 회라고는 오징어 삶은 것과 아나고 밖에 먹을 줄 모르던 내가 포항과 영일에 5년을 살면서 회 킬러가 된 것은 바로, 그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생선은 무엇이든 회로 떠서 먹을 수 있었던 그 싱싱함 때문일 것이다. 고등어, 갈치, 그 밖에 그 어떤 생선도 회로 떠서 먹어도 비리지 않고 맛있었다.

<일출이 아름다운 영일 신창항의 바위, 양포항과는 가깝다. 작년 여름에 찍은 사진>


그리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내륙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처럼 동태나 대구포로만 전유어를 만들어 먹지 않는다. 모든 싱싱한 고기를 다 약간 말려서, 껍질을 살짝 뜬 다음 모두 밀가루와 계란을 입혀 전유어를 만들어 먹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신기했었다. 초임 시절 내가 세들어 살던 집에서는 벼라별 생선을 다 살짝 말려서 생선전을 붙여서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신기했던 것은 바로 ‘밥식혜’라는 것이었다. ‘가자미식혜’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가자미나 기타 생선에 밥을 삭혀서 발효시켜 만든 것이다. 나는 식혜란 말도 사실은 낯선 사람이었다. 우리 고향 예천에서는 식혜를 ‘단술’ 또는 ‘감주’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구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용어들의 차이 때문에 가끔 당황하곤 했는데, 경상도지방에서는 지금도 식혜란 말보다는 감주란 말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로 오니, 그런 말은 전혀 쓰지 않고 오직 식혜였다. 아무튼 동해안의 식혜는 생선을 삭힌 것이었는데, 나는 처음에 그걸 먹을 수가 없었다. 새콤하면서 비릿한 맛이 역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바닷가 근처의 그 분들은 중요한 행사에는 꼭 해야만 하는 음식이었다. 어른들의 생신, 제사, 명절, 그리고 귀한 손님이 오시면 꼭 그렇게 식혜를 미리 준비해서 상에다 내 놓았다. 2년 반 정도 그 집에서 살다보니, 나는 그 ‘밥식혜’ 메니아가 되어 있었다. 전라도나 그 밖의 지방에서도 바닷가에서는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만들어 먹는다고 하니, 바닷가에 사는 분들은 싱싱한 생선과 그 밖의 해산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축복받은 사람들인 것 같다.

또 하나 부러웠던 것이 또 그 추어탕이었다. 그 주인집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추어탕을 잘 끓였는데, 미꾸라지로만 끓이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나는 생선도 싱싱한 것으로 뭐든지 끓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사실 그 때 까지만 해도 비위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비리거나 그런 음식은 잘 먹지 않았었다. 추어탕도 잘 먹지 못했고, 사실 곰탕이나 그런 것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매운탕 같은 것도 좋아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부모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추어탕을 마지 못해 먹어보긴 했지만 주로 미꾸라지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만든 것은 바다에서 나는 생선을 넣어 만들었는데 재피(산초)가루를 넣어, 그 독특한 향 때문에 더 먹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나중에는 아주 맛있게 잘 먹게 되었다.

죽변항에서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비가 와서 여러 곳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배에서 고기들을 내리고, 밤이면 수십만촉의 불을 밝힐 집어등을 매단 배들이 사람들과 만나고 있었다. 바람이 워낙 거세지니까 배들은 안전하게 줄을 서서 항구에 조용히 머무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면, 대낮이니 저녁의 조업을 위해서 휴식을 취하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게는 맛있게 쪄져서 스티로폼 상자 속에 얌전히 포장되어 승용차 트렁크에 실렸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뿌듯하였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그 때 바로 먹으면 더 맛있었겠지만 말이다.







다음은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 머물렀다.

늦은 점심을 먹고, 기념품도 샀는데 그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시관도 갖추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세차게 불었다.

이 휴게소는 최근에 지어진 듯 한데, 바닷가 조망시설을 잘 갖추었다.

여름에는 사람들로 아마 발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한가한 겨울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가는 길에 임원항이 보였다. 임원항은 울릉도 가는 뱃길이 있어, 서울에서 울릉도 가는 사람들은 이용하기도 하는 길이기도 했다. 지금도 물론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예전에 포항에서 울릉도를 갔었지만, 임원항도 유명하다고 들었다. 임원항이 보이는 언덕에, 조망 쉼터가 있어서 주변을 살펴보기 좋았다. 이번에 보니까 동해안 드라이브 코스 곳곳에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쉼터들을 만들어 놓아서 참 좋았다. 전에는 휴게소 아니면 차를 댈 수도 없어서 참 안타까웠는데, 곳곳에 만들어진 쉼터가 참 좋았다. 서민들을 배려하는 곳이라 더욱 마음이 뿌듯했다.

우리 나라가 아무리 땅덩이가 좁다지만, 결코 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여행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날, 울진에서 네비게이션을 찍으니 강릉까지 와서 영동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가장 빨리 서울로 올 수 있는 방법이었다. 중간에 국도를 타고 중앙고속도로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신호등도 있고 규정 속도가 있으니 시키는대로 운행을 하기로 했다. 몸은 서울로 향하지만, 마음은 자꾸 바다에 머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저녁의 중요한 행사만 아니면, 하루 쯤 더 동해쪽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북으로 향했다. 동해안으로 달리는 길은 곳곳에 절경이라 발길을 멈추고 싶었다. 그렇게 따뜻하던 날씨가 울진에서부터 조금 추워지더니, 삼척 쯤 오니 눈이 내리고 기온도 뚝 떨어졌다. 싸락눈이 내렸지만 눈은 고속도로 가장자리쪽으로 조금씩 쌓여갔다. 덜컥 걱정이 앞섰다. 체인도 없는데 계속 눈이 오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릉 쪽으로 갈수록 눈발은 차츰 약해지고 저 멀리 서쪽 산 얼굴에 걸린 구름들이 신비롭게 보였다. 그 구름들 사이로 내비치는 햇빛은 태초의 신비처럼 아름다웠다.

강릉을 지나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드니, 날이 아주 청명해졌다. 고속도로 주변의 산과 들은 전에 올겨울 풍성한 눈들을 그대로 이고 있어, 사방이 절경이었다. 하얀 눈을 인 소나무, 그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덮어버린 눈들이 겨울의 을씨년스러움을 모두 감춰주니, 아름다운 설경에 기분이 붕 뜨는 듯 했다. 게다가 서쪽으로 다가갈수록 해는 점점 요상한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불그레 물들다가 붉은 빛이 점점 짙어지면서 구름과 어우러져 신비하게 저물어 가고 있었으니......


퇴근 시간에 다다른 수도권 근교의 고속도로는 역시 몸살을 앓았다.

그렇게 맑던 하늘에 또 비까지 내리니, 여기저기 사고가 났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이래저래 행사에 시간 맞추기는 이미 늦었지만, 참가에 의의를 두고 강남으로 가는 길은 멀고 멀었다. 누가 우리 나라를 좁다고 했던가? 5-6시간 만에 달려온 길, 비오고, 눈오고, 맑고, 또 비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