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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동해안 북부

황씨시조제단원黃氏始祖祭壇園, 평해황씨대종회平海黃氏大宗會

황씨시조제단원黃氏始祖祭壇園, 평해황씨대종회平海黃氏大宗會

월송정과 함께 이번에 꼭 돌아보고 싶은 곳이 나의 뿌리인 평해황씨대종회와 이 제단원이었다.

소식은 어렴풋이 듣고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던 터라, 조상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이 참에 꼭 들르리라 마음 먹었다. 뭐 그렇다고 자랑하거나 우쭐거리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뭐

우쭐거릴 것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성씨는 왕족도 많고, 양반 아닌 집안이 없다고들 한

다. 그러나, 무심하게 지내던 뿌리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겉치레만 화려하다고 성씨가 발전하는 것도 아니고, 제단원이나 종중을 잘 꾸몄다고 해서 더 잘

되는 것 하나도 못 보았기 때문이다. 종친회라는 것과는 워낙 무관하게 살다보니, 이제사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본다. 아마 할아버지나 아버지께서 아직 생존하셨다면 아마 이렇게 무심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고, 큰아버지나 나의 사촌동생인 종손은 아마 잘 알고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도 여자이기도 하지만, 평소 남동생들도 그런 얘기는 별로 나누고 살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이니,

이 바쁜 세상에 그런 것이 그리 소중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월헌 같은 종택에서 종부

께서 아직도 가문의 전통을 잇고 계시다고 하니,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면 해내지 않을까? 아무튼

뿌리를 돌아본다는 것은 흔들림에 더 의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잘 돌아보게 되었

다. 누구의 조상이든 귀중하게 생각하고, 미래를 더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다. 그리

고 잘 조성된 시설들을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고, 각자의 뿌리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바탕

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터넷에서 월송정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다 보니, 사람들이 월송정 들렀다가 잘 조성된 곳을 보고

숙연하게 생각하고 소나무숲을 거닐면서 뿌리를 생각하는 글들을 많이 읽게 되었다. 누구의 조상

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선조들의 자취를 내일을 가꾸는 뿌리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

각이 든다.

월송정 표지판을 보고 가다보면, 아담한 소나무숲이 보이고, 커다란 일주문이 보인다.

아직 현판을 달지 않았지만, 양쪽 대문으로 삼은왼편 기둥에는'평해황씨대종회平海黃氏大宗會'라

고 씌여 있고, 오른편에는 '황씨시조제단원黃氏始祖祭壇園'이라고 되어 있었다. 웅장한 일주문은

아직 미완성인 듯 했지만, 위용이 대단했고, 솔숲으로 길이 난 월송정 가는 길의 왼쪽 제단원은 꽤

넓었고, 비석들과 건물들이 여러 채 있어서 무슨 궁궐 같기도 하였다. 또한 긴 담장 곳곳에 틈을 두

어 공원처럼 자주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소나무숲을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없어보

였다.



















일단 월송정을 먼저 들른 후, 나오는 길에 송림 사이에 난 길에다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친정아버지께서 조상님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도 틈만 있으면 무슨무슨

할아버지, 무슨무슨파, 몇대 손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알려주셔서 잊지 않고 있지만, 여자여서

그 밖의 것은 그리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실 즈음에는 여자도 족보에 오를 수 있

으니, 열심히 활동하란 말씀을 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별로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요즘 와서야 시대

가 시대니 만큼 뿌리에 대한 관심도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잘 꾸며

놓은 제단원은 마음을 뿌듯하게 하였다.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

다.

이곳 방문을 계기로 최근,뿌리에 대하여 좀 자세히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 황씨의 대부분은 하나에서 분파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알기로는 평해, 장수, 창원 세

형제에서 비롯된 세 본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장수에서는 더 많은 파를 배출한 것을 알 수 있었

다.

다음의 자료는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대종회의 자료에 의한 것이다.

'황씨의 도시조都始祖는 모두 황낙(黃洛)이다.

평해황씨 시조 : 황온인(黃溫仁)

도시조 황락(黃洛)은 한나라 유신(儒臣)으로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년)에 구대림(丘大林)과 함께

교지국(월남의 한지방)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중 폭풍을 만나 평해에 도착하여 청착하여 살았다. 황

락(黃洛)의 후손에서 황갑고(黃甲古, 기성군), 황을고(黃乙古, 장수군), 황병고(黃丙古, 창원백)의 3

형제 중 큰아들 황갑고(黃甲古)의 후손이 평해황씨라고 한다. 그 후 계대가 확실하지 않아 고려 때 금

오위장군 태자검교를 지낸 황온인(黃溫仁)을 1세조상으로 하고 본관을 대대로 살아온 평해로 하였다.

黃洛 시조설은 중국문명의 開祖였던 黃帝(軒轅氏)는 有能國의 임금 少典의 아들로 태어나 中原(지금

의 황하유역)의 여러 부족국가를 통일하여 黃帝가 되었다. 전욱고양씨(顚頊高陽氏)는 黃帝(軒轅氏)

의 자손이며 육종(陸終)은 전욱(顚頊)의 증손(曾孫)으로 黃邑에 봉해져 성을 황씨로 창시(創始)하였

다고 전해진다.

그후 육종(陸終)의 후예(後裔) 중에는 해(海), 락(洛), 호(湖) 3형제가 있었고 그중 둘째인 락(洛)(한

나라 光武帝 建武 4년 신라 유리왕 5년) 후한(後漢)의 유신으로 구대림(丘大林, 평해 구(丘)씨의 시

조)장군과 함께 교지국(交趾國, 옛 월남의 한지방)에 사신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평해에 도착하여

청착하여 살면서 황장군이라고 하면서 우리나라 황씨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평해(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越松) 지역에는 황장군의 묘가 전해지며, 구(丘)장군이 살았다는 곳을 구미진

(丘尾津)이라 부른다. '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중국과 한국의 기록이 상이한 면이 많다지만,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은 역사

적으로 매우 얽혀 있음을 최근에 보도되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평해 월송정은

'평해황씨시조제단원'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황씨제단원'이라고 되어 있다. 황씨들은 연합하여 전

체모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나의조부님도 한학을 하셨고, 아버님도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잘 아시겠지

만 지금은 그런 곳과는 인연이 멀게 살고 있는데, 아무튼 제단원을 멋있게 조성하여 뿌듯하였다. 네

티즌이 선정한 아름다운 숲으로까지 지정된 제단원의 소나무숲, 그리고 주변의 소나무숲, 월송정 부

근의 솔숲까지 정말 아름답고 조용한 곳에 위치하여 더욱 기분이 괜찮았다.

제단원은 추원재追遠齋, 홍살문, 崇德門, 각종 碑들이 있고, 연못이 있으며, 연못가에 정자까지 있어

무척 아름답다. 연못이 얼어 투명한 얼음에 햇살에 비쳐 더욱 아름답고, 제단원 내의 소나무들이 어

찌나 곧게 잘 자랐는지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비각들도 들여다 보고, 시조를 기리는 비석에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인사도 드렸다. 제단원 내의 소나무들은 어찌나 쭉쭉 뻗고 아름다운지, 소나무들이

그렇게 키가 큰 것은 보기 드물 것이다.

일주문 앞으로 나오니,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신 분에 대한 안내표지판이 있었다.

또 오른쪽으로는 시조의 비가 거북등에 얹혀 있었다. 그리고, 일주문 뒤쪽에는 '아름다운 숲'이라는

안내판이 또 있었다. 여기 제단원부터 월송정까지가 바로 네티즌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숲

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제단원의 소나무들은 정말 아름다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