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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사이판

사이판의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 2

사이판의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 2

7)

그 다음날은 정글투어를 했다. 섬의 규모로 보아 정글이라고 해 봤자 우거진 그런 곳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 지 궁금했다. 동부해안은 지형이 험하고 가장 높다는 해발 473m의 타포차우산(Mt. takpocho)이 있고, 길이 잘 개발되지 않아서 주로 사륜구동차를 이용하여 관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산을 중심으로 곳곳에 원주민들의 동네가 있고, 해변이 있고 식물원이나 비교적 험한 바닷가들이 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성모마리아상(Our Lady of Lourdes Shine))이었다. 타포차우산 정상 쪽에서 아일랜드 크로스 로드를 따라 남하하다가 좁은 길로 들어가다보면 ‘Santa Lourdes Shrine As Teo’라는 입구가 보이고 곧바로 동굴이 나오는데 그 동굴의 안에 제단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상을 볼 수 있다. 왼쪽으로는 커다란 동굴이 있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피난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굴 입구에 작은 조각상이 있고 기도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근처는 키가 무척 큰 열대의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었고, 한 켠에서 공예품을 팔고 있었다. 사이판에서는 코코넛껍질로 만든 공예가 매우 발달하였고 보조보는 어느 곳에서나 팔로 있었는데, 이곳에서 파는 공예품의 값이 매우 저렴하다고 한다. 가게세를 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우리가 시내에서 보았던 물건들보다 질도 좋고 깔끔하면서고 값이 쌌다.

다음은 고지대에 있는 원주민들의 마을 체험이었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따라가니 원주민의 집이 나왔다. 넓은 터에 자리잡은 목조건물의 한쪽에는 코코넛 껍질이 쌓여 있고, 한국의 소주병들이 지붕아래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에 와서 체험을 하고 코코넛 속껍질을 벗기면 오징어처럼 쫄깃한데 거기에다가 초고추장을 찍어서 먹으며 소주를 권하였다.

체험 비용에 다 포함이 되었고, 코코넛 수액 빨대로 마시기, 코코넛에서 나온 싹으로 장식된 꽃꽂이, 그리고 코코넛 속껍질로 만든 브

래지어, 현지에서 딴 꽃으로 만든 꽃목걸이와 화관, 빨간 꽃을 달고 기념촬영을 했다. 이것은 남태평양의 대표적인 꽃인 하이비스커스라고 한다. 주로 빨간색이 많지만 하얀색, 오렌지색, 노란색 등 다양하다고 한다. 보통 다섯 꽃잎이지만, 여덟잎도 있고 겹으로 된 것도 있다고 한다.집 뒤쪽으로 넓은 터에는 나무들이 멋있게 서 있었다. 그리고 수확한 열대과일 시식도 했다. 파파야, 코코넛, 바나나, 자몽, 메론 등이 있었는데 싱거운 것도 있었고, 파파야와 바나나가 맛있었다.

다음은 제프리해변이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찍었던 해변이라고 한다. 90년대에 그 드라마에 푹 빠져서 그 드라마 방영날만 기다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었는지 떠오르지는는 않았지만, 그들이 만났던 섬 사이판, 감회가 새로웠다. 드라마에 필을 받아 김성종의 원작 대하소설을 다 빌려서 읽기도 했다. 10권으로 된 전집을 다 읽고, 드라마보다 더 썸뜩했다. 원작에서는 그들의 마지막 죽음 장면처럼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았다. 더욱 비참하게 죽었다. 드라마를 그렇게 잘 각색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파도가 무척 세고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양쪽에 사람 얼굴을 한 바위가 마주보고 서 있다. 왼쪽은 남자얼굴, 오른쪽은 여자얼굴, ‘노인과 바다’라고도 불린다. 또 왼쪽은 동양인, 오른쪽은 코가 오똑한 서양인처럼 생겼다는 설도 있으며, 사람이 다가가면 파도가 더 거세진다는 전설도 있다. 왼쪽의 긴 절벽의 바위들은 악어처럼 생겼고, 그 위의 하얀 건물은 무슨 별장인 줄 알았더니 라오 라오 베이 골프 리조트의 화장실이라고 한다. 코코넛 껍질이 해변에 널려 있다. 바닷물이 신발 한 켤레를 벗어놓은 듯 앙증맞은 모습이 귀엽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바로 해발 473m의 타포차우산(Mt. Takpocho) 정상 탐방코스였다. 원주민들은 지상 최대의 산이라고 부르며 신령한 산이라고까지 부른다고 한다. 처음에는 비바람이 몰아쳐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사방이 안개구름에 덮여 360도 사방을 다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나 싶어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몇 분 뒤 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드러나는 푸른 바다, 그리고 사방의 풍경들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하였다.

서쪽으로는 산 아래 그림같은 초록 풍경들이 펼쳐지고, 해변의 숲 너머로 다양한 바다가 펼쳐졌다. 그 뒤로, 전 날 갔던 마나가하섬 주변으로 코발트빛 바다가 꿈처럼 떠 있고, 그 뒤로 보이는 산호초 자연방파제, 그 뒤로 드높게 부서지는 하얀 파도, 또 그 뒤로는 수평선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수평선은 직선이 아니다. 적도에 가깝기 때문에 둥그렇게 휘어져 있었다. 북쪽으로는 절벽이었던 곳의 짙푸른 서태평양이 넘실거렸다. 원래 동쪽 해변이 더 아름답다고들 하는데, 아마 절벽과 험한 지형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듯 했지만, 서쪽의 마이크로비치와 산호초방파제를 중심으로 바다빛깔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남쪽으로는 수수페 근처의 아름다운 해변, 멀리 티니안과 고트 아일랜드까지 보인다. 날이 더 좋으면 멀리 로타섬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더욱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비만 그쳤고, 햇살은 보이지 않고 바람이 휘몰아쳐서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사진이 선명하지는 않은 것이 아쉬웠다. 육안으로는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8)

호텔로 와서 점심을 먹은 후, 주변 해변을 산책했다. 따사로운 햇살에 얼굴이 익을 것 같았지만 물빛은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로 푸르렀다. 카메라만 갖다대면 모두 작품 사진이 된다. 바다가 태양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습, 그 바다를 배경으로 야자나무를 잡고 사진을 찍으니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이판에서는 나무에 크리스마스장식을 단다. 앙증맞

은 산타모양이 너무 정겹다. 밤에는 불이 켜져서 더욱 아름답게 해변을 지킨다. 어지러워 쓰러질 것만 같은 바다의 물빛! 햇살에 또다른 빛깔을 연출하는 바다와 나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니 모델이라도 된 것 같다. 바다와 모래가 이룬 선을 따라 두 팔을 벌린 딸아이의 모습이 바다와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다시 해변을 찾았다. 이 곳의 낙조가 일품이라는 정보를 갖고 있었으니까. 정말 해는 넘어가려고 하고, 바다는 황금빛으로 일렁거리고, 주변의 색깔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빛깔로 제각각 아름다움을 뽐냈다. 자연의 신비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저녁 노을에 취했다. 안타깝게도 바다 위에 구름층이 마지막 모습을 막았지만, 노을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느꼈으므로 마지막 모습은 상상에 맡기자는 여유가 생겼다.

9)

오후에는 아이들은 리조트에서 수영을 하면서 놀고, 어른들은 맛사지와 안마를 받으러 갔다. 두 명씩 나누어서 받았는데 타이맛사지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아주 시원했다. 안마를 중심으로 하는 것과 허브오일을 발라서 맛사지와 안마를 겸하는 두 가지가 있었다. 남자들과 우리 딸은 안마쪽으로 받고 아줌마들은 거의 두가지를 겸한 것을 받았다. 휴양을 하러 왔으니 다소 비싸기는 했지만 한 시간 반 동안 평소에 혹사시켰던 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10)

이제는 마지막 밤, 사실 4박 5일이었지만, 오던 날은 밤이라 새벽에 잠만 잔 셈이고 4일 동안 편안히, 눈도 즐겁고 휴식을 충분히 취했다. 저녁에는 쇼핑을 하러 떠났다. 새벽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두어 시간 가라판 시내 쇼핑을 했다. 우리는 첫날 도보로 많이 돌았지만, 또다시 필요한 곳들을 돌고 필요한 몇 가지를 샀다. 보조보에 대한 설명을 한글로 붙여놓은 상점이다. 보조보는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인형이다. ‘나는 마리아나 군도의 Saipan 섬 산로케 라는 마을에서 왔어요. 신비한 힘을 필요로 하면 팔을 묶어주시고, 사랑이 필요하면 발을 묶어 주시고, 돈이 필요하시면 팔을 뒤로 묶어 주세요’라고 써 있다. 나는 정말 살만한 것이 없어서 아무 것도 사지 못했다. 우리 딸은 문양이 화려한 스카프 하나를 샀고, 남편들은 모임에서 기념티를 하나씩 단체로 샀다. 와이프들 것도 사자고 했지만, 별로 천도 좋아 보이지 않아서 그만 두기로 했다. 시간이 없어서 동행하지 못한 작은 딸을 위해서 앙증맞은 진주 목걸이를 하나 샀다. 그리고 초콜렛 세트와 먹을 것을 조금 사서 부모님께 드리기로 했다.

새벽에 공항으로 출발했다. 우리 나라 가장 작은 공항보다 볼품 없는 작은 공항이었지만, 상점들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각국의 명품 매장들이 화려하고, 다른 곳에서 보았던 기념품들이 훨씬 비싼 값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시간이 남아서 눈으로 구경을 하고, 따뜻한 기온을 마지막으로 즐기기로 했다.

11)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졸고 나니 아침을 준단다. 안 먹으면 서운하니 또 먹고 음료수와 와인을 두 잔 마셨더니 졸음이 쏟아졌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벌써 도착 예고 방송이 들려왔다. 사이판 공항에서는 그렇게 까다롭던 입국 절차가 우리나라로 오니 이렇게 간단할 수가 있을까? 역시 우리나라 사람에겐 대한민국이 최고이다.

공항 안에서부터 스웨터를 입고 양말을 신었지만, 바깥으로부터 찬 기운이 속속 밀려들었다.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갔단다. 맡겼던 코트를 찾고, 파킹한 차를 가져다 주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면서 모임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차를 타려고 밖으로 나오니, 밀려드는 찬 기운을 뚫고 공항고속도로를 달렸다.

“사이판이여, 그 따뜻함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