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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사이판

사이판의 눈이 푸르도록 시린 바다 1

사이판의 눈이 푸르도록 시린 바다 1

1)

따뜻한 곳에서 쉬어 오자는 제안에 따라 사이판(Saipan)으로 목적지로 정하고 여행 준비를 했다. 10팀의 부부에다 아이들까지 데려가는 팀이 많아서 움직이려면 대가족, 목적지를 정하는 건 매번 그리 쉽지 않은 일이기에 여러 곳이 물망에 올랐지만 우여곡절 끝에 당첨된 곳이 바로 사이판이었다. 이번 겨울은 특히 영하 10여도의 강추위가 한반도를 강타하니 사이판으로 정하길 잘했다는 말들을 하며 사이판으로 향했다. 10여 년 전 후배가 이곳으로 신혼여행 간다고 했을 때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이 겨울이라 가장 추울 때인데도 낮 최고 기온이 28도를 웃돈다는 곳, 한여름에도 32도를 넘지 않는다는 지상의 낙원, 사이판으로 향했다.

사이판은 북마리아나제도의 일부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 둘러싸여 있고, 산호초가 자연의 방파제를 이루어 섬 주변엔 잔잔하여 그 물빛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

저녁 비행기로 떠났다. 이젠 겨울에 여름 나라로 떠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여름옷을 준비하고 공항에서 겨울 코트를 맡겼다. 신종플루가 잦아들어 그런지 공항은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출발한 지 4시간 30분, 드디어 사이판에 도착하니, 밤공기를 적시는 비가 내렸다. 사이판에서 비는 맞아야 한다고 했다. 스콜(squall)이라고 해서 원래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에 동반되는 비를 말한다. 낮은 구름이 지엽적으로 내리기 때문에 짧으면 1분, 길어야 20분 정도 내리곤 금방 그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오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맞아도 몸에는 해롭지 않고 무더위를 식혀 준다고 한다. 호텔에 도착하니 비는 그쳐 있었다.

이튿날.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다. 뷔페식인데 한국인들 입맛에 맞는 음식이 무척 많았다. 한국인 관광객이 80%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종업원들도 간단한 한국말 정도는 다 잘 했다.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아무 불편이 없을 지경이었다.

2)

첫날은 북부관광을 했다.

사이판섬은 아름다운 경치로도 유명하지만, 태평양전쟁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 관광상품으로 개발을 하고 있다. 맨처음 간 곳은 통칭 ‘반자이 클리프(Banzai cliff)’라고 불리는 푼탄 사바네타(Puntan Sabaneta)였다. ‘반자이’란 일본어로 ‘만세’를 뜻한다. 일본 부녀자와 노인들이 전투에 패하여 미군에 항복하는 것을 거부하며 만세를 부르며 투신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기묘하게도 이곳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약 80m 높이나 되는 절벽에서 투신한 사람이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도 아래를 굽어보면 거친 파도가 변함없이 바위에 부딪치고 있다. 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비석과 관음상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보였는데, 그들은 매우 원통하고 슬플 것이다. 그들은 꼭 그 곳에서 원혼을 달래는 예를 표한다고 한다.

사이판의 원 어브 더 베스트(One of the best)로 꼽히는 아름다운 섬, 유명한 이슬레다 마이고 파항(Isieta Maigo Pahang)으로, 일명 새섬(Bird Island)이다. 이름 그대로 바닷새들의 낙원이다. 석회암으로 형성된 섬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기 쉬운 구멍들이 많아 해가 지면 새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고 한다. 남빛으로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 하얀 석회암으로 빛나는 섬 위에 초록빛이 얹힌 모자처럼 생긴 섬으로 뒤쪽의 곶과 조망하는 곳의 절벽이 빙 둘러싸여 마치 안동하회마을이나 청령포처럼 물돌이동 같이 보이기도 했다.

세 번째로 간 곳은 바나데로(Banadero), 통칭 ‘라스트 코만도 포스트(Last Commando Post)'로 마피산의 절벽 아래에 있는 전적이이다. 동굴 모양으로 패인 자연지형에다 콘크리트로 요새를 구축한 토치카인데, 인본군 최후의 사령부였다고 한다. 측면에 직격탄으로 생긴 직경 2m 정도의 커다란 구멍이 나 있어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역력하다. 뒤쪽 바위 산에도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등, 이 북부지역은 전쟁의 상흔이 무척 많이 남겨진 곳이다. 동굴 앞쪽에 그 당시 사용되었던 일본군 무기의 잔해들이 전시되어 있고,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 그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있다고 한다. 그 옆쪽으로는 그 당시 희생된 일본군과 사탕수수 산업을 위해 이 섬에 살고 있던 일본인 민간인 15,000여명이 희생된 것을 위로하는 오키나와 탑이 있어 일본인들이 순례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한다고 한다.

그 옆으로 조금 이동을 하면 한국인 위령 평화의탑(Korean Peace Memorial)이 있는데 당시 강제 징용으로 사이판에 끌려와 희생된 700여명의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우리는 그 탑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스스로 원하지 않았지만 나라 잃은 설움에 무작정 끌려와 바다 밖에 보이지 않는 외딴 섬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결국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으니 얼마나 애닯으랴? 이 아름다운 경치도 그들에겐 눈물의 원천이었을 지도 모른다니……. 그 원한을 위로하는 노래비와 원혼을 달래는 비를 세워 더욱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운 고향’이란 제목으로 ‘정치근 시, 김규환 곡의 노랫말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조용히 눈물짓게 한다. 아이들은 그리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설명을 했다. 시대의 아픔을 2세들이 알고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나라 잃은 설움을 겪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산 산 넘고 물 물 건너 멀고먼 땅에

여기 와서 무엇 찾아 헤매고 있나

그리워라 그리워라 떠나온 고향

돌아갈까 돌아갈까 옛날 옛집에

산도 설고 물도 설은 낯설은 곳에

여기 와서 많은 세월 덧없이 갔네

잊지 못해 잊지 못해 두고온 고향

가고파라 가고파라 옛날 옛집에

같은 섬에서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 죽은 일본 민간인들, 또한 원치 않았지만 끌려와서 희생양이 된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을 대신한 한국인들, 모두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개인이 희생되고 만다는 아픈 교훈을 새겨야만 하겠다.

뒤쪽으로 보이는 절벽은 ‘라데란 바나데로(Laderan Banadero)'라고 하는데 통칭 수이사이드 클리프로 저 곳에서도 반자이 클리프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서 일본민간인들이 낙엽처럼 몸을 던져 희생된 곳이라고 한다. 앞쪽의 우리 한국평화의탑 안내표지판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서 있다. 어떤 나라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죽음 그 자체도 참 대조적이라는 생각에 빠졌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또 비가 내렸다. 예년 같으면 이 시기가 건기라 날씨가 가장 좋을 때인데 올해는 이상기온인지, 우기처럼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한다. 장마처럼 습한 날씨에 객실도 퀴퀴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기분이 좀 그렇기는 했지만, 비가 반짝 하고 내리고 나면 또 햇볕이 쨍쨍하니 정말 묘한 날씨였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사이판 중심부의 가장 아름답다는 마이크로 비치(Micro Beach) 물빛이 무척 아름답다. 조금씩 비가 흩뿌리지만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빛깔은 칠색, 팔색, 아니 그 이상의 색으로 시선을 유혹하고 있었다. 한겨울에 보는 싱그러운 호텔의 열대성 나무들을 보면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3)

오후에는 자유시간이라 아이들이 어린 집에서는 대부분 리조트의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고, 딸과 나, 또 남편의 친한 친구의 부인, 이렇게 셋이 중심부의 가라판 쇼핑을 나가기로 했다. 미리 관광서적을 통해 사이판의 다양한 정보를 알아둔 딸 덕분에 남편들은 떼어 놓고, 오붓하게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가장 중심가의 면세점의 일종인 갤러리에서 아이쇼핑을 시작했다. 그 나라에 가면 쇼핑센터와 시장을 꼭 가보라고 하지 않는가? 보조보라는 사이판 원주민들의 상징적 장식물이라고 한다. 이 장식물은 크기가 무척 다양해서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는 어디에나 있었다. 가장 큰 장식품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또 사이판 팬더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두 가지는 꼭 사진 찍어줘야하는 필수라고! 사이판의 중심가가 우리 나라의 한적한 시골의 읍내 같다. 한산하고 조용하다.

이것은 워터볼(Waterball)과 스노우볼(Snowball)로 우리 딸이 집중적으로 모으고 있는 시리즈 한 부분을 장식할 것이다. 너무 앙증맞고 귀엽다.

4)

다음날은 사이판 관광의 필수 코스로 마나가하섬(Managaha Island)관광이다. 섬으로 갈 때는 고무보트를 타고 오션래프팅을 했다. 속도가 무척 빨라서 섬까지 5-6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는데, 그 보트를 기다리는데 30분도 더 걸렸다. 어찌나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지, 기다리는 동안 덜덜 떨면서 커다란 타월을 뒤집어 쓰고 버텼다.

우리 나라의 계곡 래트팅과 비슷한 고무보트였는데 파도가 무척 센 날이라 다른 날 보다는 속도를 덜 낸다고 했는데도, 달리면서 온통 물을 다 뒤집어 썼다. 계곡 래프팅처럼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하는 래프팅이라 참 엉터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오션래프팅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리 나라 정동진에 가서 작년에 탔는데, 훨씬 더 쓰릴있고 안전장치도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보트 운전하는 분들은 이리저리 어찌나 배를 격렬하게 틀면서 모험을 하는지 정말 아찔해서 소리소리 질렀던 기억이 난다.

역시 마나가하섬은 정말 아름답다. 어디에 렌즈를 갖다 대어도 바다빛깔이 다르게 보인다. 세 번째 사진의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산호초로 형성된 자연방파제로 파도가 저렇게 거세게 하얗게 부서지는데, 해변쪽으로는 다양한 색의 바다빛깔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해변의 모래는 정말 새하얗다. 바다 속은 어디나 속이 훤히 보인다. 여기서 스노클링을 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고 우리는 반대편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고 바다와 해변, 나무들을 감상했다. 바람이 거센 한적한 곳에는 나무들이 센 바람에 뽑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연중 기온이 높다 보니, 저렇게 누운 나무에도 여기저기 뿌리가 뻗어 다시 자란다고 한다. 해안에는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정말 사이판에서 자랑할 만한 아름다운 섬이었다.

5)

오후에도 일정이 나뉘어졌다. 아이들이 어린 팀에서는 스킨스쿠버 강습을 하기로 했고, 우리 집과 남편이 가장 친한 친구네 부부는 잠수함 투어를 하기로 했다. 잠수함을 타기 위해 첫날 갔던 북부해안으로 다시 가서, 마나가하섬 근처의 해저 22미터까지 내려 가서 바닷속을 탐사하는 것이다. 기다리는 포구의 경치도 환상적이었다. 배 두 척이 그림처럼 정박해 서 있고, 바다빛과 하늘빛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바지선 같은 배에다 천막을 씌운 듯한 단순한 배를 타고 산호초 방파제 근처까지 이동을 했다. 노란 잠수함이 기다리고 있는데, 파도가 세서 도킹하는데 무서웠다. 배가 어찌나 흔들리던지, 몸이 요동을 쳤다. 무사히 배 가까이 잠수함을 붙이고 좁은 사다리계단을 통해 한 명씩 잠수함 속으로 내려갔다. 자리를 잡으면 배는 산호초들이 있는 곳 가까이 이동을 한다.

해저 17-22미터까지 내려가면 빛이 단순화된다. 햇빛이 제대로 반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고기들은 잠수함에 붙은 이끼를 떼어 먹으면서 달리기도 하고, 산호의 벽이 보였다. 그 산호의 거대한 벽 앞에 일본군 배의 잔해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폭격을 하

던 비행기도 분해되어 물고기들의 삶의 근거지가 되고 있었다. 이 곳은 산호들도 많지만 배와 비행기의 잔해 때문에 더욱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빛깔을 지녔을텐데 물고기들의 빛깔은 단순해보였다. 워낙 깊은 곳이라 그렇다고 한다.

잠수함은 30여명이 탈 수 있을 정도로 좁았지만, 무슨 우주선 속 같기도 하고, 참 신기했다. 돌아오는 길에 쌍무지개를 보았다. 섬의 어느 한 쪽에 스콜이 내리고 있나 보다. 여기는 햇볕이 쨍쨍한데 황홀한 무지개를 보니 올해 운이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그 잠수함 운영 회사에서 버스를 내주어서 여러 호텔을 둘러서 왔다. 어느 호텔 앞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사진을 찍는 시늉을 했더니 포즈를 취해 준다. 원주민들이 참 순박하다. 그리고 여기는 몸이 뚱뚱해야 미남미녀로 통한다고 한다. 여성들도 100킬로그램이 넘지 않으면 미인 축에도 들지 못한다고 한다. 오는 중에도 또 비가 내려서 창밖이 뿌옇게 보였다. 달리면서 해변의 풍경을 좀 찍고 싶었는데, 너무 심한 비 때문에 별로 좋지 않았다.

6)

호텔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날씨가 개어 있었다. 어둠이 깔려오는 수영장과 해변을 산책한 후, 바닷가 바비큐 파티장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저녁에 또 비가 내려서 자리를 옮겨 앉으면서 먹기도 했지만, 10여분 후에 또 비가 그쳤다. 친구 부인과 나는 해변으로 가서 별을 바라보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변용 비치 의자에 누워 간간히 내리는 빗방울을 맞기도 하다가, 또 별들을 보다가 시원한 밤바다를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 멀리 사이판을 지킨다는 군함에서 불빛이 주기적으로 다른 신호를 보내기도 했고, 신혼여행 중인지 우리가 얘기를 하던 말던 바로 앞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한 쌍도 보았고, 바닷물에 풍덩 뛰어 들어 수영을 하는 백인 한 쌍도 보았다. 밤이라 그런지 마지막에는 애정행각으로 가는 모습에 우리는 웃다가 조용하곤 했다. 이젠 들어가자고 하면서 걸어들어오는데, 하도 안 들어오니까 식구들이 전화를 했다. 멀리 도망 나왔다고 했더니, 그래 봤자 손바닥 안이라며 객실에서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