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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리고 책

유물들의 생동감, 그 노래 /서인숙 시집 『조각보 건축』

서인숙 시집 『조각보 건축』

유물들의 생동감, 그 노래

황경순(시인)

직장일로 가장 바쁜 와중에 서인숙 시인의 『조각보 건축』을 읽게 되었다.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시들을 읽게 되었는데, 한 마디로 개성이 무척 강한 시선집이라는 생각과 함께, ‘유물들을 가장 사랑하는 시인의 시집이로구나!’ 하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이는 그의 시를 읽으면 누구나 갖는 느낌일 것이다. ‘유물들에 대한 애착을 이렇게 가질 수 있다니!’ 가슴이 뭉클해졌고, 역시 시인에게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1. 유물들의 부활


시를 읽으면서 발견한 첫 번째 세계는, 누가 읽어도 발견할 수 있는 사실, 바로 유물들의 다양한 부활이다. 시대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고, 그 유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처럼 그 세계가 선명하다. 시인 자신이 자서(自序)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유물들을 가까이 두고,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시인의 숙명처럼 보인다. 유물들을 과거, 현재, 미래까지 연결하여 전통적이며 현대적인 곳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오랜 세월 연구해 온 이력이 모든 시에서 감동으로 다가오는데, 시인 자신의 겸손한 술회와는 달리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해 온 것이다.


조각보를 깁는다/ 조선의 기와집 마을이 아닌 새로운 도시/ 높고 낮고, 삼각, 사각 색색으로/ 명주천, 모직천, 무명천이 이웃되어 살고 있다// 꽃들이 피고 지고 있다/ 별빛이 쏟아진다// 옛집은 어디쯤/ 조각보의 길을 걷는다/ 실오라기 따라 걷는다// 숨바꼭질하다 숨은 마루 밑/ 박쥐에 물린 소녀의 손가락 피가/ 봉숭아처럼 붉던 저녁// 노을이 불타는/ 아득한 마을/ 한 뜸 한 뜸 조각보를 깁는다

―「조각보 건축」 전문


조각보를 바라보며 시인은 자신이 유물 속의 주인공이 되어 조각보를 깁고 있다. 조각보의 그림 속은 조각보가 생필품이던 ‘조선시대의 마을’이 아닌, ‘현대의 도시’를 그리고 있어 시대를 초월하고 있다. 또한 높낮이도 자유자재, 모양도 자유자재, 각종 천들도 모두 화합하여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꽃도 피고, 별빛도 쏟아지는 길을 걷고 있다. 조각보는 그 자체가 멋진 건축물이라고 묘사했으니 건축물 속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함께 살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다 살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참으로 욕심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을 모두 화합하고 싶은 열망으로 늘 가득 차 있는 듯 보인다. 세상사람 모두가 다 이런 마음이라면, 세상은 정말 조각보 건축이 어우러진 도시가 되어 천국이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2.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공간


두 번째로 발견한 세계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부린 시를 썼다는 것이다. 유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과 유기적인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시 속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하여 마음대로 시대를 넘나든다.

밤새 그리던 그림 속 문양이/ 어디론가 사라진 뒤/ 다시 돌아와/ 원시인 듯 벽화를 그려 놓는다/ 알 수 없는 문자, 동물, 나무/ 멀리 사라졌던 시간이/ 새로운 시간으로 바뀌어/ 햇살로 눈부실 때/ 남은 별 하나/ 멀리 빛나는 기도였다

―「새벽」 전문


구름 속에 갇힌 태양은 천년의 얼굴을 내밀어/ 여기 가파른 세상을 빗물로 적시네// 너 오길 천년을 기다렸어/ 성城은 간 데 없어 오직 당간지주만 남아/ 푸른 들녘 속에서 나를 맞아 주네/ 지주에 새겨진 커다란 연화문은/ 하늘을 날 듯 땅 깊숙이 가라앉을 듯/ 무수한 말을 침묵으로 새기네/ 태양신을 닮았는가/ 빛이 된 말/ 비에 젖은 이끼 만발한 돌의 꽃/ 어느 세월의 미로에서 신라가 버리고 간/ 허공 속의 이름 없는 새이던가

―「태양신의 꽃」 부분


밤새 그리던 그림 속 문양이 새벽에 다시 벽화를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문자, 동물, 나무들의 시간이 새로운 시간으로 바뀌어 살아난다는 발상이 간결하면서도, 짧은 시 속에 희망과 절망, 그 모든 것이 다 녹아 있다.

천년 동안 기다리며 당간지주에 새겨진 연화문(蓮花紋)에 대한 묘사는 정말 대단하다. “태양신을 닮았는가” 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당간지주에 새겨진 연꽃무늬가 빛을 받아 날아오를 듯 가라앉을 듯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마치 무수한 말을 침묵의 문양으로 새긴 것으로 해석되고, 태양신은 빛의 효과로 생긴 돌의 꽃, 비에 젖은 이끼 만발한 돌의 꽃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당간지주는 비를 맞고 있어 이 상반되는 상황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물론 비가 와도 빛은 존재하는 것이지만, 태양신으로 비약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첫 연에 “구름 속에 갇힌 태양이 천년의 얼굴을 내밀어/ 여기 가파른 세상을 빗물로 적시네” 라는 시구를 다시 되새겨 보니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또한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자들이 연꽃을 ‘영원한 생명의 꽃’으로 숭배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저 단순한 연꽃무늬가 아니요, 당간지주에 새겼으니 불교가 상징하는 연꽃무늬가 아닌 더 넓은 세계를 포용하는 표현이라는 생각에,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현실, 또는 본질로 돌아와 신라의 유물인 당간지주 속의 연화문은 “세월의 미로에서 신라가 버리고 간/ 허공 속의 이름 없는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고 표현했다. 구름 속에 갇힌 태양이 가파른 당간지주만 남은 세월을 슬퍼하며 푸른 들녘을 헤매며 고독해 한다. 비는 내리고…, 이 얼마나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인가? 영원한 생명이라 어쩌면 더욱 슬플지도 모르는 생의 비애까지 절절이 느껴지는 詩다. 시인의 시는 자꾸 되뇌어 읽을수록 더욱 많은 의미로 재해석이 된다. 시는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할 때 가장 시답다고 생각할 때, 오랜 세월 유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해온 시인의 노력이 진한 감동으로 전파된다.


3. 사물의 유물적 해석


세 번째 발견은, 유물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을 유물처럼 부활시켜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시인의 사유는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공을 넘나들며 어떤 사물이든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시가 시간의 벽을 넘고, 공간의 제한을 벗어나 언제나 자유롭다. 그러면서도, 항상 민족 또는 인간의 본질과 결론적으로 연결을 짓는 힘이 강력하다.


나무오리 세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 암컷은 당채무늬로 곱습니다// 어느 날 왁자지껄한 소리소리/ 그들은 고향이 우포늪이라/ 잠시 들렀다가/ 이백 년을 흘러오듯/ 끝없이 흘러가야 한답니다

―「우포늪」 부분


보라,/ 아직도 떠나지 못해 서성이는/ 저 붉은 빛발/ 온 도시를 물들이네// 바다를 태우다 쓰러진 말/ 수많은 말들이/ 파도로 출렁이네// 아무리 절망해도/ 노을 앞에선 꿈이 살아나네/ 그리움이 솟아오르네// 잃어버리고 잊은 것들을/ 강으로 나무로 그려보는 시간/ 커다란 캔버스에/ 완성된 풍경이여

―「능선, 저 노을」 전문


우포늪에 솟대가 있는 것일까? 사물을 유물로 해석한 좋은 예가 아닐까? 고향이 우포늪이라 들른 진짜 철새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외로움을 잠시 잊었다가, 다시 보내야 하는 마음을, 이백 년이라는 말을 넣어 역사성을 불어 넣었다. ‘저 붉은 빛발’도 예사롭지 않다. 아무리 절망해도 다시 살아나는 꿈, 시공을 초월하여 그림으로 완성된 풍경이 된다. 또 하나의 역사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온통 세상에 깔린 숫자를 지우면/ 아무 것도 부러울 것 없는 / 허허한 자유인// 그곳에 펼쳐진 하늘 땅/ 꽃들의 이름이/ 수평선에 깔린다// 네가 내가 되고 / 내가 네가 되는/ 일치의 순간들이/ 풍성한 날개를 펴고/ 슬픔에 젖은 가슴들을 달랜다// 돌아보아도 돌아보아도/ 정은 이별을 머금고/ 이리도 허덕이던 과거가/ 조용한 횃불을 밝힌다// 저버릴 수 없는 인연이란 구슬/ 다만 별을 헤이는 마음으로/ 잎을 바라보는/ 이 한적한 평화// 세상의 숫자를 모르는 / 나그네의 기쁨인가/ 한세상을 돌아온/ 뼈저린 체험의 초월인가// 시간도 숫자도 없는 날

―「숫자」 전문


국경이 없는 하늘/ 그 아래 국경으로 가로질린/ 거대한 아프리카의 땅이/ 검게 가로누워 있다// 안달루시안 음악이 타악기로/ 하늘을 찌를 듯 요란스레 울리며/ 민족성을 과시하고/ 잃었던 땅을 찾은/ 식민지였던 한을 풀어놓는다// 가난을 말아 가며 검게 엮어 온 세월의 끝/ 아랍의 문화를 수놓고/ 잘생긴 사나이들의 얼굴에/ 슬픔이 감돈다// 성애가 없는 야수적인 열정을

―「마라케시의 하늘」 전문

현대는 숫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TV채널 속으로, 지하철 호선이나 버스 번호 속으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화번호 속 등등 그 숫자의 노예가 되어 산다. 그것을 벗어버리면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역시 생각은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이리도 허덕이던 과거가/ 조용한 횃불을 밝힌다.” 자유로워지면 상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드니, 현실을 벗어나 과거의 추억 속에 잠겨 웃음 짓고, 미래로 상상의 날개를 펴면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원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국경이 없는 하늘/ 그 아래 국경으로 가로질린/ 거대한 아프리카의 땅이/ 검게 가로누워 있다”는 표현도 참 인상적이었다. 정말 아이러니컬한 세상, 하늘에는 국경이 없는데, 땅에는 국경이 있다. 검은 아프리카가 누워 있다. 시에 등장하는 민족은 아프리카 원주민이지만, 내 눈에는 왠지 우리민족처럼 보인다. 아직도 끝없이 이어진, 갈 수 없는 철조망, 아랍에 침략을 당한 아프리카의 비애가 아니라 분단의 현실을 아파하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몽고 풍습의 잔재, 중국문화의 잔재, 일본수탈기의 잔재, 그리고 현재는 미국과 서구의 문화적인 식민지 의식까지 꼬집는 것으로 느껴진다. 시선집에는 외국을 여행하면서 노래한 시들도 많았는데, 시들마다 우리 역사와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들을 발견할 수 있다.


4. 회화적 입체적 미학적 음악성의 調和


시인이 자서에서 “토기, 백자, 목기, 자수, 청동기, 와당, 민화, 떡살 등을 회화적 입체적 미학적 음악성으로 표현하여 나의 시 세계를 구축하고 싶었다”고 표현한 것처럼 시인은 유물을 수집하고 늘 가까이 두면서 그 속에 깃든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 슬기와 그 멋에 매료되어 수필을 쓰고 시를 써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이미 엮었던 시집 속에서 특히 그들을 더욱 정선하여 시선집을 엮었으니, 그 유물들의 향기가 대단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소리도 향도 없이 이백 년/ 오직 적막한 어둠으로/ 아낙의 슬픔/ 붉은 꽃송이

―「자수」 부분


세상의 모든 푸른 색은/ 여기 다 모여라/ 허공을 채우고 채우다/ 그 깊이를 안고/ 여기 비취빛으로 자리하였나

―「고려청자사발」 부분


흑요암을 거느린 세원정의 호수/ 한 폭의 거대한 동양화/ 파도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고목 사각이는 소리/ 소리가 물빛에 닿아 화음하는 교향곡/ 저 구름 한 점 지휘봉을 휘두르네// 수련이여/ 너 여기 피어 있어/ 그리웠구나/ 해풍에 미소짓는 너

―「귀신마을(보길도에서)」 부분


이 세 편의 시 ‘붉은 꽃송이, 비취색, 흑요암’에서 보듯이 색감이 뚜렷하다. 시집 전편에서 읽혀지는 색감이 무척 매혹적이다. 백자, 청자의 빛깔 묘사가 확실하며, 유물들에 대한 묘사에서 그 유물들이 그대로 그려지는 회화적 요소가 전체 시들에 고루 표현되어 있다. “흑요암을 거느린 세원정 호수, 온갖 소리가 어우러져 교향곡을 연주하는” 그 입체감, 음악성 등 미학적 요소를 시에서 찾을 수가 있다. 또한 시인의 시들은 전부 노래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반복의 미, 민요적인 요소를 살린 시가 많다. 자칫 가벼워지기 쉬워 현대의 시인들이 기피하기 쉬운 구어체로 쓰인 시들이 많은 것도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가슴에 꼭 묻으면/ 어머니 품속 같아/ 따스하나 서러운 이별이/ 아픔으로 전해 오는 전신// 하얀 색의 여백을 둔/ 청화 함박꽃,/ 조선의 여인이다/ 여인의 치맛자락이다// 소쩍새가 울고 간 솔잎에/ 송송이 맺힌 이슬 같은 피부/ 살결이 꿈틀거리는 외로운 여운/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다// 차마 흙에 묻힐 수 없어/ 여인의 손끝에서 전해 온 삼백 년/ 하늘 가득 채우고/ 울음 가득가득 채워라

―「분원 항아리」 전문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한 시가 또 있을까? 여백의 미, 절제와 인내의 미학, 조선 여인의 미소처럼 포근하고, 넓은 치맛자락이라니! 그러면서도 속으로 삭이는 그 눈물, “소쩍새가 울고 간 솔잎”이라는 부분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시인은 이렇게 우리 민족을, 우리의 유물을, 우리의 모든 사물과 사람을 사랑하기에, 그 유물들 속에 애정을 실어 시공을 넘나들며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진정한 자유를 외치고 있다. 1965년부터 수필을 써 왔고 지속적으로 유물에 관한 문학 작업을 해 왔으니, 그 시세계의 완성도를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詩)의 도(道)와 기(器)가 갈마들다」라는 제목의 작품해설에서 윤재근 문학평론가(한양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시를 독자가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로 즐겨주면 그만이 시도를 새기며, 20세기 구미 시론을 기웃거리지 않을 수 있었고, 우리가 물려받은 숨결을 담고 있는 사물을 마주하고,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숨질로 읊어지는 소리를 바탕 삼아 뜻을 일구는 상들을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로 빚어낸 많은 시편들을 낳을 수 있었던 셈이다.”하고 언급한 것처럼, 전통의 가사나 시조, 민속조의 리듬을 잇는 시가(詩歌)로서의 시의 맥을 잇고 있다. 너무 난해하고 시의 기교에 치우쳐 음악성을 잃어버리기 쉬워 때론 정체성에 빠지기도 하는 현대시와는 다르기에, 이 시선집이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또한 시가 추구하는 본질에 충실하여 시적표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회화적, 입체적, 미학적, 음악성의 조화로움을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온 결과를 정리하였으니, 더욱 뜻 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