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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리고 책

바다에 핀 꽃등이여!/이광석 시집 『바다 변주곡』

이광석 시집 『바다 변주곡』

바다에 핀 꽃등이여!

황경순(시인)

1. 한평생 ‘바다 변주곡’을 들으며 살고 있는 ‘마산’의 시인


유난히도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해 4월, 겨우 꽃눈을 터뜨린 매화 꽃봉오리가 다시 꽃잎을 접으며 주춤하는 것을 아침저녁 출퇴근길, 차창으로 안타깝게 바라보며 바쁘게 지냈다. 그 와중에 「바다 변주곡」이라고 쓰인 시집을 읽게 되었다. 바다의 웅장하면서도 다양한 변주곡을 들으며 움츠렸던 어깨를 펼 수 있었다. 시인의 사유를 따라가자니, 너무나 많은 생각이 일었다.

먼저 가장 확실한 것은 시인이 마산을 너무나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물, 그리고 ‘어머니’의 이미지가 시집 전편을 두루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다는 안식처요, 항상 기댈 수 있는 따뜻한 품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강렬한 느낌 하나는, 바로 사계절 피워내는 꽃에 대한 놀라움이다. 바다의 노래 속에, 시공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피워내는 어둠의 꽃, 아픔의 꽃들, 그리고 환한 꽃등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신이 외로울 때 바다는 언제나 그의 머리맡에 출렁거렸습니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물’은 문신의 영혼이었습니다 // 요즘 바다는 밤마다 불 꺼진 미술관까지 올라와 문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바다는 자신의 몸속에서 아직도 작품을 빚고 있는 문신의 ‘손’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이제는 문신의 부재不在가 뒤척이는 바다를 다독여줍니다 문신은 바로 마산입니다.

―「문신미술관에서」 부분


파리를 주름잡던 마산의 세계적인 조각가가 사재를 다 기증하였다는 미술관의 작품들과 문신의 혼이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전시실 미술관 뜨락에서 매화가 불러 올리는 바다”, “‘흑단’을 지키는 파도소리”, “마산바다는 미술관의 큐레이터입니다”라는 표현에서는 바다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선하다.

「복국 한 그릇의 추억」에서는 ‘남성동 어시장 복국거리’, ‘60년대 홍콩바’, ‘오동동파출소’ 같은 예전의 장소들, 그리고 “화인 월초 변재식, 최백산, 위헨리, 강신석, 김세익, 박치덕 같은 60년대 마산 멋쟁이들 멋과 글의 품계에 젊음을 던지고”에서 보듯이 마산의 인물들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아 추억에 젖어 있다.

「돝섬」에서는 “고운 최치원이 달빛에 취해 시상詩想을 빠뜨린 월영대”, “자연산 도다리처럼 파닥이는 가고파 1번지, 마산의 솟대”, “마산 사람들 곧고 바른 자존심”이라고 마산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피력하고 있다. 「월영대月影臺」에서는 “그러나 고운은 다시 돌아왔다/ 월영대에 거룩한 시의 옷을 입히고/ 달빛 노닐던 바다에/ 유등처럼 띄워 올렸다/ 월영대는 지금도 마산의 문학 성소聖所”라고 자랑하고 있다.

마산의 바다와 산, 그 밖의 모든 것에서 의기와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마산의 기질, 마산 사람들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고, 오랫동안 그 곳에서 살아온 체취가 물씬 풍겼다.


2. 변주곡을 연주하는 어머니의 바다


‘변주곡’이라는 말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미지를 풍긴다. 곡을 재해석하여 연주하는 곡,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능숙한 음악가들만 연주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포용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시인 자신의 서문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여섯 번째 ‘바다 변주곡’을 연주한다

나는 과연 시인인가, 내게 시는 무엇이며

바다는 내 시의 무슨 변용인가를 자문해 본다

‘어머니’라는 원초적 해명을 내놓는다

그러나 바다는 정작 말을 아낀다. 시로서는 감당 못할

세상의 삼각파도 앞에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

바다는 시의 염전이며 시의 모국어 훈민정음에 맞닿아 있다.

우리 시의 영원한 동력 어머니의 소금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말」 부분


어머니가 치매에 업혀

세상 밖으로 나가시던 날

바다는 하루 종일 달을 안고 울었다

그 마지막 달빛 한 조각 움켜쥔

어머니의 이승이 조용히 문고리를 놓았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거룩한 마침표

내 가슴에 작살처럼 꽂혀 있다

―「거룩한 마침표」 부분


바다는 늘 시인의 가슴에 살아 있으므로 특히 거룩한 마침표를 찍으시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바다가 대신 하루 종일 달을 안고 울었다는 것이다. 가슴에 작살처럼 꽃혀 있으니 바다가 곧 어머니를 대신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의 지도」에서도 “어린 냇물도 철이 든 강물도/ 바다가 어머니의 고향인 줄을 몰랐네/ 냇물이 강물에 업혀 오늘 밤은/ 어머니의 마을에서 잠이 들것네”라고 표현하여 어머니의 바다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또한 함께 주목할 것은 물에 대한 이미지이다. 물은 바다와 늘 연결되어 있고, 흘러서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생명의 원동력이다. 물이 강으로 흐르고, 그래서 어머니는 물이기도 하고, 강이면서 또한 바다이기도 하다.


겨울강은 울지 않는다

울지 않는 겨울강은 어머니의 눈썹처럼

차고 매서웠다. 어머니를 기다리던

유년의 밥상은 언제나 쓸쓸한 한기가

묻어났다

…중략…

저만큼 겨울강 끄트머리에 어머니가 오고 있었다

노란 개나리꽃 한 다발을 들고 화안히 웃고 있었다

―「한기」 부분


시인은 겨울에 관한 시를 많이 읊었다. 이번 시집에서도 이런 이미지를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 황량하고 추운 겨울 속에서 화안한 꽃을 피워내기에 그 겨울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또한 강이 물이요, 어머니의 이미지이기에 아무리 쓸쓸해도 따뜻함이 묻어난다.


3. 어떤 사물이라도 피워내는 꽃, 그리고 꽃등


시들을 읽으면서 시인의 꽃에 대한 잠재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시인이 의도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시의 곳곳에서 피어나는 꽃향기가 시집 전체에 온통 퍼져 있다. 그것도 별다른 시련 없는 온실의 꽃이라기보다 자신의 힘으로 힘겹게 피어나 더욱 향기롭고 값진 어둠의 꽃, 아픔의 꽃, 눈물꽃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또한 시인의 마음 속에는 항상 희망의 등불이 켜져 있다. 그것이 여러 형태로 표현되어 있고, 꽃등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소금」에서는 “눈보다 하얀 소금이/ 햇빛에 굽혀 일어선다/ 바다를 버리고 태어난/ 저 순백의 눈꽃 같은 반란/ 천연 짠맛 소리쳐 불러낸” “‘소금’이라는 명품 청정의 온갖 맛을 다스려온/ 어머니의 손끝에서 피워 올린/ 희고 눈부신 단아한 향기”에서 보듯이 소금꽃이 얼마나 눈부신가? 환한 미소 곁에 떠오르는 보조개처럼 귀하다고 보았다. “그 희고 짜디짠 줏대와 자존심/ 바다가 내게 준 젊은 날의 회초리였네”라고 그 찬란함의 과정이 왜 소중한지 역설하고 있다.

「물의 변증법」에서도 “제 몸 한가운데를 관류하는 물의 중심이고 싶었다/ 그 물의 몸 안에는 물의 시가 자라고 있었다 몇 밤을 지샌/ 수련의 눈부신 새벽 나들이 같은 꽃”으로 저문 강가에서 물이 된 한 여인의 기다림과 젖은 눈빛을 꽃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바다 변주곡」에서는 아파서 “각혈하듯 시의 꽃을 피우던 가포 겨울바다가 조개껍데기처럼 개펄에 엎드려 있다”고 했고, 「바다를 거닐다」에서는 ‘바다가 꽃으로 피워낸 외딴 섬’으로, 섬이라는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꽃은 더욱 빛을 발하여 꽃등을 밝힌다. 「꽃등의 내력」에서는 상처들이 빚어낸 가장 절정의 꽃등이라고 표현했다. 꽃도 부족해 꽃등으로 피어나는 상처들의 화려함, 그것도 마술 한 토막으로 엮인 아름다운 꽃등이 아닐 수 없다.


꽃잎 하나 진다

다른 꽃잎이 그 뒤를 따른다 마치 꽃비가 내리듯 앞뒤 좌우 적당한 간격을 두고 제 길을 간다 마지막 남은 한 잎을 보내기 이해 나무는 등을 떠밀지 않는다 이 작은 질서에도 우주의 섭리는 권좌를 지킨다 꽃들은 한 방울의 눈물도 슬픔도 없이 봄의 격정을 인내할 줄 안다 떠나는 그늘도 남기지 않는 절제의 그릇도 본다 차가운 눈발 속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헌혈하던 매화는 이제야 푸른 잠을 깬다 내게도 마지막 남은 한 송이 이름 없는 꽃이 있다 어떤 모진 바람이 불어도 쉬이 흔들리지 않고 어떤 거센 태클이 와도 좀체 넘어지지 않는 야생초 같은 목숨의 꽃, 그 꽃등에 사랑을 입맞춤하고 싶다 내가 세상 밖으로 호명될 때까지 너를 지키는 나무이고 싶다.

―「꽃등」 전문


“어떤 모진 바람이 불어도 쉬이 흔들리지 않고 어떤 거센 태클이 와도 좀체 넘어지지 않는 야생초 같은 목숨의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어둠의 꽃이든, 아픔의 꽃이든, 눈물의 꽃이든, 낙화해서 실망할지라도 다시 태어날 희망의 꽃으로 피어나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더욱 살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시인은 시인 자신에게 항상 그렇게 말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도 그 꽃 한 송이 피워 꽃등으로 거듭나 세상을 향해 자신있게 밝히라고 말하는 듯하다.

시인은 1959년 청마 유치환 선생님의 추천으로『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50여 년 시를 써오면서도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있다. “완고했던 지난 겨울이미지 그 미완의 언어들은/ 내게 또 다른 시의 인질이 되라고 채근한다./ 잘못 저어온 삶의 항해일지 성찰하듯/ 어머니의 저문 바다에 시의 뱃길을 다시 연다”고 밝히며 여섯 번째 『바다 변주곡』을 연주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시력 50여 년에 걸친 여섯 권의 시집과 저서들, 인생 70여 년이 융합된 겸손한 자세에서, 폭넓고 깊은 사고를 가진 시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자꾸 되새김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