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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부산에서 서울까지

5일째.

혼자 맞은 다대포의 아침은 싱그럽다.

일찍 잠이 깼지만, 게으름을 피운다.

해수욕장 쪽 말고 몰운대 뒤쪽 포구가 바로 보이는 숙소에서 조용한 아침이 시작된다.



살아 있는 바다. 깨어나는 아침 바다.


몰운대가 보이고, 포구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다대포해수욕장이 보이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대며 바다가 훤히 보여서 그저 눈이 행복하다. 햇살에 반짝이는 아침바다.

살아 있는 바다가 새로운 희망을 준다.

10시에 출발을 한다.

일주도로를 따라 낙동강 줄기를 거꾸로 따라 달린다. 을숙도도 보이고, 비가 많이 내려서 낙동강

물이 완전 황토빛이고 물이 넘칠 듯 하다. 결혼하기 전에 을숙도 와서 사진 찍었던 일도 떠오르고....

마지막날은 아버지 산소 방문이 주목적이다.

몇년 만에 가는 것인가?

왔던 도로를 타고 다시 대구에서 또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안동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중간에

청도휴게소에서 황태해장국을 시켰는데, 시원하긴 했는데 먹히질 않는다. 국물만 좀 마시고 열심

히 다시 달렸다.가다 보니 또 비가 흩뿌린다. 이러다 산소에 못 가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그 전에

비가 꽤 와서 걱정을 했는데 군위에 다다르니, 바람이 좀 세고, 햇살 속에 여우비가 살짝 내린다.

길을 잘못 들어 조금 헤매다 드디어 아버지를 뵈었다.

정말 못난 여식이다. 너무 오랜만에 뵈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동생들도 모두 자리 잡고, 다들 열심히 잘 살고 있으니, 계속 축복해주시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

었다. 경치좋은 곳에 잘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처럼 바람이 이렇게 불면 얼마나 추

우실까? 그런 생각도 들고, 너무 높은 곳에 계셔서 마음이 편하실까? 그런 생각도 들고.....멋 모르

고 마련해 놓은 초라한 봉분도영 마음에 걸린다. 어머니까지 모시면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

며 아쉬운 발걸음을 떼 놓았다. 사람들도 아무도 없는 금산 공원묘지, 고향에 가시지 않겠다 해서

모셨지만, 그래도 고향에 모실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가는 길, 오는 길은 소나무숲이 무성하여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아래쪽에서 내려다 보니, 또 왜 그렇게 높아 보이는지....근처를 한 바퀴 돌면서 아버지 계시는 주변을

잘 새겨 두었다. 또 언제나 가서 뵐 지.....



주변을 돌면서 근처에 무엇이 있나 보니, 오래된 느티나무가 동네에 버티고 서 있다.

보호수라고 한다.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비 올 까봐 걱정을 했지만, 산소에 있는 동안은 바람만 세차게 불고 비가 조금씩 흩뿌렸다가 햇

볕 났다가 요상한 날씨였다.그러다 차에 오르고몇 분 지나 의성쪽으로 나서니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외갓집에 들러보고 싶은데, 비가 너무와서 걱정을 했더

니 영주주변에 다다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맑아 있었다.

이미 시간은 3시가 지나 있었지만, 이번처럼 혼자 움직이기도 쉽지 않으니, 내친 김에 외가에도

들르기로 했다. 영주 톨게이트에서 10여 분만 가니 바로 외가 동네다. 외숙모님께 드릴 물건을

사려 해도 마땅치가 않다. 예전에는 번창했던 곳이 너무 한가해졌다. 면소재지라 시장도 번성한

곳이었는데....길은 잘 뚫렸는데도 오히려 발전은 되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큰 외숙모는, 외삼촌이 작년에 돌아가셔서 혼자 계시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서울에 사촌오빠가

모셔와서 좀계시기도 했는데, 답답해서 아파트에는 못 살겠다고 다시 내려 가셨다고 한다. 자식

들이 다들 도시에 나가 사니 집을 다시 손보기도 그렇고, 들에 나가서는 일을 못 하실 정도로 허

리까지 굽었으니, 큰 마당을 온통 텃밭으로 만들어 고추, 콩, 파를 심어서 기르고 계셨다.

예전처럼 마당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빨간 맨드라미 두 포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기지떡을

만들어 주시곤 하시던 외숙모시다. 음식 솜씨가 남다르게 좋으셨는데, 줄 게 없다고 마당의 파를

잔뜩 뽑아 주셨다. 고추도 따 주려고 하셔서 내가 많이 따왔다. 자고 가야지 뭘 가냐고 성화였지

만, 그럴 수는 없고 수박만 잔뜩 먹고작은 외갓집으로 향했다.

작은 외가는 면에서 더 들어가야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멀던 길이 차로 가니 7-8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길도 잘 뚫려서 못 알아보게 변해 있었다. 그 길로 야트막한 고개를 두 개 넘어가야 그 마

을이 있었다. 오며 가며, 언덕도 보고, 들판도 보면서 큰집 외사촌이랑 작은댁에 가면 작은 외삼촌

과 외숙모가 늘 반겨 주셨다. 외동딸인 엄마의 맏딸인 나를, 외갓집에서는 늘 반겨주셨다. 뭐든지

다 해 주려고 하시곤 했다. 평소에는 작은 외가에는 잘 가시지 않다가도 내가 가면 같이 원래 살던

동네를 찾으시던 외할머니, 그 할머니와 함께 가면 대접도 더 융숭했다. 10남매 중 2남 1녀의 자식

만 건지신 외할머니, 오랜 세월을 혼자 자식들을 키워오셨기에, 두 아들들의 효도가 남달랐기에.

외할머니 살아계셨을 때는 우리 외사촌들까지 할머니께 지극정성을 다해서 늘 고마웠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외할머니, 그리울 뿐이지만....

작은 외숙모가 감자를 삭혀서 만들어주시던 개떡이 그립다. 요즘은 귀찮아서 삭히지도 않는다고

하신다. 파전, 배추전도 얼마나 맛있게 부쳐 주셨는데....

집전화는 안 받으시더니, 핸드폰도 아예 받지 않으셨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이미 시간이 5시가 다 되었기에, 곧 오시려니 하고 마루에 누워서 기다렸다. 전화를 계속 해 보니

드디어 받으셨다. 웬일이냐며 얼마나 놀라시던지...아마 작은 외가에는 15년 이상 못 간 것 같다.

마을이 그 마을이 아니다. 집들도 절반으로 줄고, 마을 앞으로 흐르던 개울은 도로가 생겼다.

거기서도 역시 자고 가라며 난리셨지만, 출근해야한다고 저녁만 먹고 가겠노라고 말씀드렸다.

바쁜 중에도 밭에서 이것저것 따서 챙겨주시는 저녁은 꿀맛이었다. 고소하게 볶은 박나물, 아

기양파로 만든 짱아찌, 시골된장찌개에 북어찜까지....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깻잎김치와 이런

저런 밑반찬들....밥도 냄비밥을 해 주셔서어찌나 맛있던지!

늘 이뻐하기만 해 주시던 작은 외삼촌 내외분도 벌써 칠순이 다 되셨다.

연세보다 젊어보이시지만, 내가 내민 책을 두고두고 읽어보겠다고 좋아하신다. 그 집 아이들

도 다 도시에 나가 살지만, 고명딸이 바로 옆에 영주에 살아서 10분이면 올 수 있다고, 자주

들른다고 한다. 가까이 사는 자식이 최고지. 내가 좀더 있으면 금방 달려오겠다는 동생의 제안

을 뿌리칠 수 밖에 없었다. 서울로 올라와야 하니까....고춧가루, 풋고추, 마늘, 사과에 감자까

지 차에 잔뜩 실어주시고 옥수수까지 삶아주셨다. 늘 주고 싶어하시는 그 마음을 알지만, 너무

자주 못 가뵌 것이 정말 죄송하다. 7시 반쯤 출발하는 조카를 보고 얼마나 걱정을 하시는지....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찾아뵈어 너무 좋아하셨기에 한 편으로는 흐뭇한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당뇨가 심하다는 작은 외숙모, 허리 꼬부라진 83세의 큰외숙모, 모두 사시는 날까지 너무 고생

하시지 말고 편안히 지내셨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예천 쪽으로 길을 잡았는데, 회룡포와 삼강주막

을 꼭 들르고 싶어서 근처를 가 보았는데, 회룡포는 어두워서 그 진면목을 볼 수가 없었고, 삼

강주막만은 빙 돌아서 들러보았다.어두워서 제대로 맛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안동하회, 영월의

청령포와 더불어 물돌이동의 극치를 달한다는 회룡포를 꼭 제대로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둠속의 삼강주막과 삼강강당....

낮에 보면 낙동강과 어울려 얼마나 아름다울지 짐작이 간다.




이 쪽으로 돌아오느라, 시간을 좀 지체했다. 진행방향이 북쪽이어야 하는데, 이 곳으로 가느라

남쪽으로 더 내려갔다 왔기 때문이다.

문경을 지나면서도 낮이라면 그 아름다운 경치들을 감상할 수 있을 텐데 밤에 지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드디어 문경새재 IC로 진입을 해서 들어섰다. 졸립기도 했지만,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 중간에 한 눈을 팔았어도 빨리 도착한 셈이다. 오는 길도 비가 뿌리다 말다. 하루종일 벼라

별 날씨를 다 보았다.

백두대간의 출발점이라는 다대포의 몰운대, 부산에서 서울까지, 정말 긴 드라이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