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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 북부

북한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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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출봉에서 바라본 노적봉>


1월 25일, 드디어 처음 산행에 참가했다.

나는 차를 가지고 갔기에 구파발역을 지나쳐서 고양시 쪽으로 더 갔다가 오는 바람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인공폭포가 어딘지 알 지도 못했기에 산악대장 딘님과 통화를 하고 차에서 기다렸다.

산악회라고 해서 많은 분이 오셨을 줄 알았는데 딘님과 모르는 남자분 한 분이차에타셨다.사람이 좀 많았으면 좋겠고 여자들도 있으면 좋을텐데여자 혼자서 따라 가려니허전하긴 했지만 이미 나왔으니 안 갈 수도 없고 용감하게 따라 나섰다.

의상봉을 비롯해 칠봉을 건너야 한다는데, 괜찮을 거라고 하셨지만, 내가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다.

겨울 속의 봄처럼 따뜻한 날씨, 개나리 꽃눈이 금방 노란 꽃을 내밀듯이 물이 올라 있는 산길을 걸으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늘 찌든 공기만 먹고 살다가 향긋한 나무냄새를 맡으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용기를 내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으로 룰루랄라 하는 시간도 잠시, 금방 가파른 바위가 나타났다. 그저 미끄러질 것만 같아서 다리가 후들후들 정말 무서워서 발을 내딛기가 무서웠다. 딘님과 서사장님께서 잘 이끌어주셔서 드디어 의상봉에 도착했다. 가면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 그리고 서울 시내 풍경이 어쩌면 그리 멋있는지!의상봉에 올라선 느낌은 천하를 얻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좀 내려가서 다음 코스인 용출봉에 도착했다. 거기 역시 그나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으며, 다시 용혈봉, 증치봉을 차례로 오르락내리락 했다. 바위를 탈 때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근육이 땡기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가파른 곳을 큰 보폭으로 오를 때는 다리가 경련이 나는 듯 했다. 그래도 산이라는 곳은 또 내리막이 있으니 그럴 땐 좀 걷기가 편했지만, 두 시간 쯤 걷고나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나는 엄살을 잘 부리질 못하는 성격이라 참을만큼은 참았는데, 너무 힘들다는 말을 안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딘님과 서사장님이 나 때문에 속도가 늦으실까봐 부지런히 따라 걸었는데 다리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점심을 먹고 가자신다.

딘 대장님은 넙적한 바위를 지목하여 그 위에 올라서 밥을 먹자고 하신다. 그 바위 오르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무사히 올라서 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었다. 든든한 우리 딘님은 손바닥만한 조립식 버너에 능숙한 솜씨로 불을 붙여 코펠에다 준비해오신 물을 붓고 라면을 끓이셨다. 처음 산행을 온 나는 별 준비없이 와서 그릇도 없어서 서사장님이 라면포장지를 접어서 드시고 내게 컵에다 라면을 떠 주셨다. 산에서 먹는 라면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점심 먹고 일어서려니까 쥐가 나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 바쁘답시고 늘 운동부족이라 내 다리도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엄살을 잘 피는 사람이라면 아마 더 많이 쉬다가 와서 덜 했을지도 모르는데, 다리를 너무 혹사시킨 것 같았다. 한참을 주무르고 하니 걸을만해져서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조금만 힘을 주면 또 쥐가 나곤 했다.



그래서 나머지 봉우리들은 포기하고 내려가자고 하셨다.

내려가는 길은 훨씬 편하긴 했지만, 가볍게 주변의 산을 1-2시간 정도 걷는 것이 최고였던 내게는 4시간 정도 걷는다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북한산성 매표소인가 하는 곳으로 내려와서 우리는 파전과 도토리묵에다 동동주를 마셨다.막걸리를 잘 못 마시는 나였지만, 산행 후에 먹는 맛은 그저 그만이었다. 두어 잔을 마셔도 취기가 올랐다.추운 곳에서 땀을 내며 걷다가 하산길이 추웠는지 얼굴은 발그레해지고, 내가 해냈다는 충만감이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슬슬출발한 곳으로 다시 걸어왔다. 찻길로 가면 운치가 없어서 산길로 가야한다는 딘님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산길을 돌아서 오는 길은 개나리가 많았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성급한 개나리들은 벌써 노란 빛이 드러났다.

"이젠 완연한 봄이구나!"

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다리는 뻣뻣하고, 온몸은 쑤시고, 그 날 이후 일 주일 내내 아픈 다리로 절뚝거리며 다녔지만, 마음에 담고 온 북한산이 그 아픔을 달래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