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창작 2013 여름호 게재
잃어버린 보물을 찾아서
황경순(시인)
강만수 시집
『獨坐礪山독좌여산』
황금두뇌 시인선
오월에 봤다
제 몸을 태워 열반에 든
희디 흰 꽃잎
햇살이 미어뜨린 뒤
드러난 진리의 길
땅 위에 쌓인
저 수많은 목련 꽃잎들은
제 몸을 태워
깨달음의 새로운 장을 연다
-「涅槃經열반경」전문-
강만수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獨坐礪山독좌여산』의 표지를 보는 순간, 마음에 번뇌煩惱가 몰아쳤다. 도대체 ‘獨坐礪山독좌여산’이 무슨 뜻인가? 혹시 내가 모르는 고사성어라도 있나 해서 검색을 해 보았지만 특별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옛 성현들의 문구가 더러 나오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책을 펼치니 ‘시인의 말’ 말미에 ‘여산제’에서 라고 쓰여 있어서 礪山에 홀로 앉아 생각이나 명상에 잠긴다. 이 정도로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시를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점입가경漸入佳境, 시의 제목들이 모두 한자로 되어 있으니 난감하였다. 어릴 적부터 한자 읽고 쓰기에는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편인데도, 1부에서부터 일상에서 쓰는 한자도 아니고 주로 불교적인 용어나 불경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불교도가 아니면 잘 모를 수도 있으리라. 그래도 더러 불경을 읽고 기초적인 소양쯤으로 익힌 덕에 눈에 익은 경전들, 그리고 불교 용어들이 읽을수록 되살아났다.
그 중에서 내 눈을 특별히 끈 시가 ‘涅槃經열반경’이었다. 노스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가끔 접하기도 하거니와 불교의 기본 교리가 잘 녹아있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그런지, 올봄에 보았던 새하얀 목련 커다란 꽃잎들이 단 며칠 눈부시게 햇살 받아 빛나더니 누렇게 변색되어 무참하게 뒹구는 모습이 참으로 애처로웠던 기억이 떠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봄밤에도 하얀 빛을 내뿜으며 어둠을 밝히는 등촉처럼 나부끼던 목련이지만, 순식간에 변해버린 것에 대한 애처로움은 느끼는 생각 자체가 정말 부질없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리에 무수히 뒹구는 같은 꽃을 보았는데 해탈에 이르는 열반경을 본 시인의 생각이 무척 경외스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애처로움에 가슴 아파 하기만 하고, 그저 덧없다는 생각에 빠져 버리기 일쑤인데, 시인은 ‘오월에 봤다/제 몸을 태워 열반에 든//희디 흰 꽃잎/햇살이 미어뜨린 뒤//드러난 진리의 길’을 찾아낸 것이다.
열반(涅槃)이란 범어 니르바나(nirvana)의 음사된 말로 반열반(prinirvana)이라고도 하며 멸도(滅度)라 번역한다고 한다. 열반에 든다는 뜻으로 입멸(入滅)이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때는 죽음을 뜻하기도 하고 실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날을 열반절이라고도 한단다. 그러나 열반이라는 말이 죽음 자체를 이르는 말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열반경에서는 열반을 불멸(不滅)이라고 풀이하여 번뇌나 욕망이 소멸되는 의미로 보지 않고 법신과 해탈, 반야의 세 가지 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깨달음 자체라고 설명한다. 이 열반이 다시 네 가지 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중생세계에서 느껴지는 무상(無常)과 고(苦), 그리고 무아(無我)와 오염을 극복한 여원함(常), 즐거움(樂), 진정한 나(我), 순수한 본래의 청정(淨)의 덕을 갖추어 있는 것이 열반의 세계라는 것이다. 부처의 세계뿐만 아니라 중생의 세계 모두가 본래 열반의 세계라는 것이 <열반경>의 주장이라고 한다. 마치 달이 서산에 져도 저쪽 세상에서 보면 달이 뜨는 것일 뿐이요 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화신의 몸이 죽는 것은 달이 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시인은 이 일곱 번째 시집은 의도적으로 불교와 동양사유의 세계를 다루어 묶었다고 한다. 제목은 한자로 되어 있어 한자를 기피하는 세대들에게는 가슴 덜컹하게 하지만, 내용 자체는 진리를 꿰뚫으면서도 오히려 쉽게 접근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목련꽃을 보고 열반경의 심오한 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자체가 대단한 파급효과를 주는 시라고 생각된다.
잃어버렸던 보물을 찾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모처럼 무겁게 보이지만 들어보면 가벼워서 느껴지는 뿌듯함, 또는 가벼운 세상에서 어느 날 문득 다가오는 심오한 세계로의 심취라고나 할까? 경전에 대해서 다시 되새김질해보기도 하고, 동양 사유의 세계를 이런저런 자료 찾아가면서 읽어보면, 어떤 식으로든 가슴에 뭔가가 쑥 들어와 있을 것 같다. 꼭꼭 씹어서 보물을 잘 소화시켜야겠다.
이 간절기, 가을과 겨울 사이에 읽기에 아주 좋은 시집이고, 다음 시집은 시간에 대한 명상을 준비한다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