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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시

슬픈 유리성 슬픈유리성11월 아침,갑자기 닥친 한파로논에 유리성이 생겼다.벼 밑동 기둥사이로 하얀 성이 밤새 들어서고투명 유리창이 곳곳에 뚫려속이 훤히 보인다.투명 유리창속에서노란 벼 낱알들과미처 제 갈 곳을 찾지 못한 애벌레들이 일렁거리면,참새들은슬픈 눈알을 굴리며성을 맴돌고 있다.유리성이 어제의 그 물이 아닌 것처럼,아침 참새의 눈은 역시엊저녁의 그 눈이 아니다.만물이 제각기 슬픈 유리성을 쌓으며......순간이동을 하고 있다. 더보기
청계사 단풍 청계사 단풍청계사 꽃등이단풍들었습니다.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도 아닌데주황 감잎도 다 떨어지고해마다 고운 빛으로 물들던 청계사 은행잎이올해는 시들시들 제 빛을 보여주지 않자부처님 오시듯붉은 꽃등 단풍이 들었습니다.청계사 꽃등은해마다 가을이면노란 은행잎, 붉은 감잎도, 단청처럼, 길처럼 울긋불긋물들고,가을이 되고 싶은 사람,질시와 욕망, 그리고 자존심의 흔들림으로 못 견디는 사람들을모두 불러들여화해의 빛으로 함께 물들입니다.오늘도,청계사 돌 계단에 서서돌 하나,바람 한 자락처럼 나도 함께 물들고세상의 중심이 되어수미산須彌山,수미산須彌山 한 가운데 넋을 읽고 서 있습니다.*수미산 :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 더보기
갯골은 투명하게 빛나고 갯골은 투명하게 빛나고 11월 아침 수백만평의 습지, 갯골에는 모새달의 하얀이삭들 바람에 휘날리며 하얀 눈물 방울을 뚝뚝 매달고 눈길을 모은다. 갈대처럼 흔들리며 하얀 촉수를 내민 모새달 이삭들이 수백만개의 하얀 눈망울을 굴리며 눈 달린 모든 것들을 유혹한다. 아니 눈 없는 바람도, 그저 흐르는 바닷물도 저절로 으스스 떨게 하며 갯골에서 둥글게 몸부림치고 있다. 대면대면한 그의 눈빛에 공허로운 내 마음도 잡고, 떠나갈 그 사람도 왈칵 잡을 수 있는 그런 눈물로, 투명한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고 있다. *모새달 : 바닷가 습지에 사는 벼목 화본과의 여러해살이풀. 더보기
모감주나무 알아요?/동시 모감주나무 알아요? 모감주나무는참 부지런도 해요.포도나무,배나무는사람들이 봉지를 싸주어야 하는데모감주나무는자기 스스로 열매를 싸고 있잖아요.모감주나무는솜씨도 좋아요연둣빛 봉지를 어쩌면 그리도예쁘게 만들었을까요?모감주나무는마음씨도 고와요.열매들이 얼굴 탈까봐그들처럼갈색으로 여물어 가잖아요.나도 모감주처럼 부지런하고솜씨도 좋고마음씨도 고운 나무가 되고 싶어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