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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홍도의 별

홍도의 별

황경순

홍도 해변에서

까만 빠돌들 위에 눕는다

으악, 비명이 절로 나온다

빠돌들을 짓누른 건 나인데

정작 흠씬 두들겨 맞은 건 내 몸뚱이다

도대체 얼마나 모가 났길래?

어깨를 강타한 한 녀석을 빼내어 달빛에 비춰본다

모 난 곳이 하나도 없다

주먹보다 큰 돌이 바다와 얼마나 싸웠으면

모 하나 나지 않고 이리도 단단한 야구공이 되었을까

보기엔 반들반들 한 치의 틈도 없던 그 녀석의 몸뚱이엔

방망이에 저항하기 위한 야구공의 볼록볼록한 홈통들처럼

작은 상처가 군데군데 나 있다.

파도에 맞선 흉터, 치열한 투쟁의 흔적을

반짝이는 빛 속에 감추고 있다

그는, 대륙의 가장 아름다운 홍도봉 중턱에서 집채만 한 바위로 태어났다 바닷물이 대륙으로 쳐들어와 사방이 섬이 될 때 싸우다 온몸이 부서졌다 작은 돌로 다시 부활해 이 해변을 지키고 있다 주변에 흩어진 빠돌들이 모두 그의 분신이다 그랬구나! 그래서 공격은 내가 했는데, 죽도록 얻어맞은 건 바로 나였구나! 엄살떨며 힘들다고 축 쳐진 어깨를 그래서 그 녀석들은 사정없이 때렸구나!

바다와 계속 싸워 몽돌이 되어도, 홈통에서 떨어져 나간 알갱이처럼 모래가 되어도, 허공을 떠도는 먼지가 되어도 빠돌은 죽지 않는다 빠돌과 이야기가 통하니 나 역시 저 반짝이는 별 중의 하나, 우주의 별이었을 것이다 운석이 되어 충돌해도 무섭지 않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나와 한 몸이다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빠돌 위에 살포시 눕는다

적당한 압력으로 온몸을 안마하는 빠돌들,

온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미네르바 201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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