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반달의 목소리
황경순
안양천 둔치에 반달 두 개 떴다하늘에서 강물 속에서 대칭을 이루며
어머니 목소리로 떠 있다 바쁜갑제? 우예 전화도 없길래 해봤대이 니
목소리가 와 글노? 마 푹 쉬라 전화 끊재이
어머니는 항상 반달이다 환한 보름달이기 보다는딱 절반 모자라는 반
달이다 입이 짧다고 나무라던 그 눈, 남보다 잘 못해 주어 미안해하던
그 눈, 멀리 시집보낸다고 눈물 훔치던 그 눈, 그 반달눈 둘이 안양천까
지 따라와서 오늘은 목소리가 되었다 찬바람 바튼 기침 따라 하늘의 반
달은 사방으로흔들리고, 내장이 요동친다 반달눈 잠긴 강물이 덩달아
심한 기침을 한다
어머니는 한 달 내내 반달눈으로 나를 지켜보신다 아니, 어머니의 눈은
사실은, 항상 그믐달이다 그믐달 다음엔 어둠이 오고, 작은 달로 밤을
환히 밝힐 수는 없다고 가장 싫어하시는 그믐달이다 한 달 내내 자식 걱
정에 바로 뜰 수 없어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겉은 가늘어진 그 그믐
달이다 환한 보름달로 비춰주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까지 커질 수 없어 눈
을 부릅뜨고 반달로 반달로 늘 내 곁을 은은히 비춰주는 어머니, 오늘 반
달로 반달 두 개로 밝히며 안양천까지 따라와 내게 그 눈을 뜨고, 커다란
목소리로 말씀을 하신다. 반달로, 반달로 떠서
-미네르바 201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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