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의 별
황경순
홍도 해변에서
까만 빠돌들 위에 눕는다
으악, 비명이 절로 나온다
빠돌들을 짓누른 건 나인데
정작 흠씬 두들겨 맞은 건 내 몸뚱이다
도대체 얼마나 모가 났길래?
어깨를 강타한 한 녀석을 빼내어 달빛에 비춰본다
모 난 곳이 하나도 없다
주먹보다 큰 돌이 바다와 얼마나 싸웠으면
모 하나 나지 않고 이리도 단단한 야구공이 되었을까
보기엔 반들반들 한 치의 틈도 없던 그 녀석의 몸뚱이엔
방망이에 저항하기 위한 야구공의 볼록볼록한 홈통들처럼
작은 상처가 군데군데 나 있다.
파도에 맞선 흉터, 치열한 투쟁의 흔적을
반짝이는 빛 속에 감추고 있다
그는, 대륙의 가장 아름다운 홍도봉 중턱에서 집채만 한 바위로 태어났다 바닷물이 대륙으로 쳐들어와 사방이 섬이 될 때 싸우다 온몸이 부서졌다 작은 돌로 다시 부활해 이 해변을 지키고 있다 주변에 흩어진 빠돌들이 모두 그의 분신이다 그랬구나! 그래서 공격은 내가 했는데, 죽도록 얻어맞은 건 바로 나였구나! 엄살떨며 힘들다고 축 쳐진 어깨를 그래서 그 녀석들은 사정없이 때렸구나!
바다와 계속 싸워 몽돌이 되어도, 홈통에서 떨어져 나간 알갱이처럼 모래가 되어도, 허공을 떠도는 먼지가 되어도 빠돌은 죽지 않는다 빠돌과 이야기가 통하니 나 역시 저 반짝이는 별 중의 하나, 우주의 별이었을 것이다 운석이 되어 충돌해도 무섭지 않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나와 한 몸이다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빠돌 위에 살포시 눕는다
적당한 압력으로 온몸을 안마하는 빠돌들,
온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미네르바 2010 봄호-
'발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지된 비행 (0) | 2010.06.03 |
---|---|
그, 반달의 목소리 (5) | 2010.02.20 |
22세기 물탑을 쌓다 (15) | 2009.06.04 |
소리가 맛이 되고, 맛이 소리가 되고 (8) | 2009.06.04 |
엇갈린 사랑 (8) | 200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