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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리고 책

관찰과 비교의 미학/배인환시집`꽃다지와느티나무`

<문학과창작 2009 겨울호>

배인환 시집 『꽃다지와 느티나무』


관찰과 비교의 미학


황경순(시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는 슬픔을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 특히 가을은 막연히 슬퍼지는 계절이다. 곱게 든 단풍을 보아도, 비 오는 날 창 밖에 떨어지는 그 단풍을 보아도, 괜히 눈물이 나려고 한다. 배인환 시인은 사람들의 이런 느낌을 잘 나타낸 시편들을 모아 여섯 번째 시집 『꽃다지와 느티나무』를 상재했다. 6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가슴에 와 닿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비교의 미학에 능하다는 것이다. 자연과 사물 하나하나를 그냥 넘기지 않고 자세한 관찰을 통해 가장 적절한 요소를 추출하여 서로 비교하면서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둘째, 본질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 자세가 경이롭다. 자신만의 이상향을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역력하다. 셋째, 옛것을 사랑하며, 전승되기를 바라는 전통사랑을 통해 인간미를 지키려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현대의 각박한 현실을 전통의 전승을 통해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1.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비교의 미학

슬픔이란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러면서도 매우 상대적으로 표현된다. 인간 본연의 애처로움을 생각하면 절대적인데, 기쁨과 슬픔이란 말을 함께 쓰지 않으면 어쩌면 가치가 떨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배인환 시인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향하여, 이런 비교의 미학을 아주 잘 펼치고 있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꽃다지와 느티나무」에 그것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얼어붙은 땅속 웅크린/ 꽃다지의 실뿌리,/ 잠자는 세계는/ 경계의 저 건너/ 하얀 겨울 넘어 노란 꿈/ 앙증맞은 몸에 별을 달고 있다.// 겨자씨보다 더 작은 느티나무 씨의 세계는/ 백만 배의 몸통과 백만 배의 세월/ 꽃다지의 별의 세계/ 느티나무 잎 하나하나에 빛인 햇빛의 세계/ 산들바람에 나풀거린다.// 이른 봄/ 꽃다지는 서둘러 씨앗을 퍼트린 후 사라진다./ 느티나무는 갈바람에/ 과년한 딸을 시집보내듯/ 씨앗을 실어보낸다./ 서로가 다른 세계,/ 잠자는 씨앗의 컴컴한 자궁 속,/ 삼세三世가/ 나의 어딘 가에도 숨겨져 있다.

―「꽃다지와 느티나무」 전문

이 시에서 꽃다지와 느티나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인데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꽃다지의 실뿌리가 노란 별을 달고 꿈을 꾸고 있다. 겨자씨보다 작은 느티나무 씨앗은 백만 배의 몸통을 꿈꾼다. 소외받은 사람들의 꿈이나 유명한 인사의 꿈이나, 꿈은 역시 꿈이다. 다같이 행복하고 황홀한 꿈이 아닐런지…. 또한 뿌리는 철저한 어둠의 세계이며, 씨앗은 찬란한 빛의 세계이다. 꽃다지는 이른 봄 서둘러 씨앗을 퍼트린 후 사라지고, 느티나무는 갈바람에 씨앗을 실어 보내니, 철저한 반대 세계를 살고 있는 꽃다지와 느티나무인 것이다. 그러나 그 뿌리와 씨앗의 컴컴한 속성은 같다. 컴컴한 자궁 속에서 끊임없는 순환의 세계가 반복되고, 그 속에 나의 꿈도 숨어 있다는 것이다. 철저한 비교의 미학 속에 진리가 살아 꿈틀거리는 시, 읽을수록 느낌이 새로워지는 시이다.

가을 나무를 보면/ 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운 빛깔로 물든 단풍을 달고 있어/ 우선 아름답다./ 갈색 단풍이 북풍에 떨어진/ 나무를 보면 슬픔을 느낀다./ 잔가지를 찬바람에 들어낸 나무를 보면/ 어느 누구든 늙은 어머니의 고독을 느낄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 이런 슬픔/ 이런 고독은 시의 속성이므로/ 누구든 가을 낙엽을 보면/ 시를 생각하며/ 아름답고 슬픈 시를 읽는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이유이고/ 마찬가지로 가을 나무가 차가운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이유이다./ 모든 것은 이렇게 이유가 있다./ 가을 나무는 신통하게 시를 안다.

―「가을 나무」 전문

갈색 단풍이 북풍에 떨어진 나무를 보면 슬픔을 느끼는, 그런 아름다움, 그런 슬픔을 느끼는 시인, 시인은 끊임없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시인의 감성은 변함이 없다. 모든 것은 시를 향해 열려 있는 시인은, 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유가 바로 시를 알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을 나무가 신통하게 시를 아는 것을 감히 누가 알 수 있을까? 시인의 눈이 아니라면…….

2. 본질을 향한, 끊임없는 구도자의 세계

본질을 향한 그의 탐구정신은 「물골 찾아가는 길」 연작시에서 잘 나타난다. 물골은 홍길동의 ‘율도국’처럼, 제주사람들의 영원한 낙원 ‘이어도’처럼,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처럼 이 세상에 없는 시인만의 낙원으로 보인다.

진악산* 어딘가에 물골이 있다는데/ 어딘지 몰라/ 그저 신화에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신화의 물골을/ 기어이 찾고 싶은 것일까?// 비가 안 와/ 가뭄이 계속되면/ 산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들,/ 읍내 사람들, 심지어 면에서 온 사람들조차/ 몰골에 뫼를 써서 그렇다고/ 뫼를 파내야 된다고/ 몰골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야 된다고/ 법석을 떨었다.// 기우제야 사람이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기에/ 세계 도처에서 행해졌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이상하게 비가 내렸다./ 가물던 하늘이 쨍하고 깨져/ 소나기가 억수로 내려/ 덩실덩실 춤을 춘다.// 소나기에 묻어오는 흙 향기/ 비를 기다리던 농부들만이 맡을 수 있는 경지/ 누가 감히 넘보겠느냐//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이 희한한 현상에/ 그만 어리벙벙해졌다.

―「물골 찾아가는 길 1」 전문

물골을 찾고 싶어하는 시인은 어느 화가처럼 영원한 산으로 정하고, 비밀을 캐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신화 속에서는 기우제를 지내면 가물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물골, 그 물골을 찾아 시인은 하염없이 헤매지만 매일 허탕을 친다. 물이 있다는 9부 능선을 헤매기도 하고, 물골을 찾아 헤맬 때는 이 세상에 없는 가까운 사람들 생각을 하며 새들과 함께 물골을 찾아 헤맨다. 물골에는 생명수가 있다는데, 바위덩이의 그 산이 자궁처럼 물을 품고 있어서 샘들이 많다고 하였다. 산꼭대기는 거꾸로 보면 맨 밑바닥이기에 생명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산엔 절이 많고 암자도 많으니 스승이 틀림없이 있을 터, 도사 같은 스승이라도 찾자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목적은 분명치가 않지만, 시인은 목적이 분명하게 산을 오른다. 평생을 탐구해도 찾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찾아서, 그 본질을 찾아서 물골이라는 지명을 걸어놓고, 본질을 찾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물을 찾는다는 것은 바로 근원이며 본질이 아닌가? 그의 이런 구도자적 자세는 모든 시편에 다 느껴진다. 근원을 찾아, 그 해답을 알려줄 스승이라도 찾자고, 그는 도시에서도, 산에서도 늘 탐구의 눈을 부릅뜨고 있다.

3. 전통 계승을 통한 인간미의 재발견

인사동 골목에 들어온 차들은/ 차 구실을 하지 못한다./ 도시 한복판에 온 개처럼/ 꼬리를 사타구니에 끼우고/ 방향을 모르고 있다.// 인사동 사람들은/ 이런 차를 무릎으로 툭툭 치고 다니며/ 진열장에 있는 가마만 본다.// 외국인도 많은 인사동 사람들은/ 다들 흰옷 입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된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인사동조차 고구려로 만들 생각 같다./ 차 꼴이 되고 싶은가 보다.// 인사동 좁은 골몰에 왜 차는 자꾸 껴 드나/ 이제 그만 빠져주었으면 좋겠다.

―「인사동 시편 6―인사동 차」 전문

인사동에 관한 시편이 여러 편 나온다. 인사동에서 시인은 보물을 찾기도 하고, 현대문명과 옛것을 비교하며 사람다운 냄새를 표현하고 있다. 가장 편리한 현대의 도구인 차가 인사동에서는 개가 된다니! “꼬리를 사타구니에 끼우고 방향을 못 찾는” 차들을 보며, 시인은 여유롭게 인사동 거리를 활보한다. 인사동 사람들은 갈 길 잃은 개를 툭툭 치면서 신경도 쓰지 않고 눈은 진열장의 가마를 보고 있다. 다른 부채를 보는 것도 아니고, 바로 가마를 보고 있다. 가마는 이제 특정한 행사 외에는 쓰여지지 않는 탈 것, 바로 현대인의 필수품인 자동차와 대조를 이루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을 포함하여 모두 조선시대로 돌아가 흰옷을 입고 인사동을 활보한다. 그런데 여기에 중국사람들은 아마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지, 자동차들처럼 방향을 잃고 어리둥절해 하는 것인지? 좁은 골목에서 자유로운 조선시대 사람들과는 다른 대조를 이루며, 차들이 생경스럽게 끼어드는 것이 못내 못마땅한 시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여러 사물을 끌어와 비교의 미학을 보여 주고 있다. 자꾸 시를 읽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인사동시편에서는 칼 박물관을 보고 칼이 무기로 별로 필요하지 않는 시대이지만 앙증맞고 예쁜 칼들에 반해보기도 하고, 성 박물관이 한쪽에 있지만 사람들은 그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것에 대한 평가도 하고 있다. 인사동에서는 몇 시간을 기다려서 호떡 하나를 사서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면서 먹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한다. 인사동에서 우리의 혼이 살아 있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풍물들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서울 한복판, 아파트 옆/ 철도 건널목에 서 있던/ 고압선 철탑만한 느릅나무가/ 공항으로 연결되는 철도공사가 한창이더니/ 하루아침에 베어졌다.// 정육점의 돼지처럼 회전 톱으로 자르더니/ 어딘가로 보내졌다./ 무지막지한 굴삭기가 뿌리까지 뽑아버리고/ 흙으로 흔적도 없이 메워버렸다./ 주위에는 환경운동가는 한 사람도 안 산다.// 어느 해인가는 뿌리부근에서 토종꿀벌이 들락거렸다./ 누군가 꿀이 탐이 났던지 구멍에 불을 질렀다./ 나무는 화형을 간신히 모면했다.// 족히 보호수가 될 만한 크기인데/ 연륜인데/ 느티나무, 은행나무의 혈통이 아니라/ 그보다 낮은 버드나무, 상수리나무의 혈통도 아니라/ 노예 취급을 했다.// 한 때는 느릅나무가 암에 좋다고 해서/ 논두렁에 있는 어린 나무 뿌리까지 캐졌다.

―「우리 동네 느릅나무」 전문

시인에게는 사라지는 것이 늘 안타깝지만, 주변에는 그런 걸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다. 그 흔한 환경운동가 한 사람도 안 사는 동네, 그런 아파트들이 밀집한 도시의 아픔을 노래한 시들이 여러 편 보인다. 병든 주목 시리즈와 느티나무, 소나무 등 고귀한 나무들이 현대에 와서는 아주 푸대접을 받지 못해 노예취급을 받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조금만 새로운 시설에 방해만 되면 베어 버리고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무신경함이 사람들의 혼까지도 다 파헤쳐질까봐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DNA에는 무슨 비밀이 있을까./ DNA 지도 작성이 완료되었다지만/ 정말인가 // 누구나 사마귀를 보면/ 눈살을 찌푸린다./ 짝짓기를 한 후에 일어나는 사건을 보라.// 인간의 DNA에도 사마귀가 있음을 본다./ 섬뜩한 이 동물성 // 이 병원균은 사람이 사는 공기에 감염되어/ 에이즈처럼 번지고 있다. // 우리 할아버지들은 이 병을 막아보려고/ 회초리를 들었다./ 백신은 잘 들었지만/ 이제는 변형 바이러스에/맥을 못 춘다. // 할아버지들은 양로원으로 다들 쫓겨나고/ 젊은 엄마들의 회초리에도/ 변형 바이러스는/ 또 다른 내성의 변형 바이러스를 만들고 있다.

―「사마귀의 DNA」 전문

사람들은 주변의 돌과 나무를 거침없이 제거하다 못해 이제는 인간의 DNA까지도 손을 대려고 한다. 지도는 길을 찾기 위해 작성하는 것인 만큼, DNA 지도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게까지 인간의 거침없는 제거의 손길이 미칠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신의 본성이 아닌 사마귀의 본성을 가지게 됨을 경고하고 있다. 짝짓기를 한 후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무엇을 뜻할까? 궁금증이 일었다. 변심했다는 애인을 찾아가 살인을 하는 세상, 사마귀가 아무 곤충이나, 심지어 동료들까지도 살상하는 그런 DNA가 인간의 염색체 속에 스며들 것을 강력히 경고한다. 전통의 회초리가 무너지고 젊은 엄마들의 무디어진 회초리에 이 변형 DNA 지도가 무작위로 살포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 불치병을 앓고 만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런 불상사를 미리 막기 위해서 전통을 살리면서 인간의 본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자연과 사물 모든 것을 아우르며 시를 쓰고 있으며, 이번 시집은 그 동안 묶었던 시집들 사이에 넘쳐나서 빛을 보지 못했던 시들도 함께 빛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분류된 것도 6부로 구성되었거니와 그래서 주제도 다양한 편이어서, 그 일부를 소개하는데 지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든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을, 물골, 그리고 인사동을 그리며, 시와 본질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

배인환 시인은 충남 금산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한국시협, 한국문협 대전지회, 대전․충남수필문학회 회원이며, 공간시낭독회 상임시인이며 전원에서 동인이다. 시집으로 『길잡이』,『외눈 안경알』,『가장 밝은 사건』,『라라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고』,『만재도 시편, 영문 시선집 『Poem of in-Hwan Bae』가 있으며, 수필집 『하늘에서 숲에 비를 뿌리며』,『네잎(공저)』,『아버지의 원두막과 어머니의 유품』이 있다. 그리고 김구용 평전 『완화 초당의 그리움』등이 있고, 성균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