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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북도 내륙

불국사 목어와 함께/겨울 여행, 바다새를 찾으러 5

점심 식사를 위해 기사분의 말씀을 빌자면 '12가지 삼밥' 집으로 갔다.

삼밥이라, 삼이 뭔 12가지인가 했더니, 사실 쌈밥을 그렇게 발음을 한 것이었다. 끝까지 못 알아듣고 삼밥인 줄 아는 분

들이 계셔서 내가 통역을 했다. 암튼 'ㅆ' 발음 안되시는 건 알아줘야한다니까...

밥맛은 꿀맛이었다. 1시가 넘어서 먹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 음식은 전국이 한 가지 맛으로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기사가 물론 잘 하는 전통집으로 데리고 왔다고는 하지만, 경상도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버리게 하는 시간

이었다. 생선 하나, 나물 하나도 다 맛있다고 난리였다. 아무리 관광을 잘 해도 먹는 것이 시원찮으면 다 망쳤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는 아주 성공적인 점심식사였다.

마당에 꽉 들어차듯이 서 있는 감나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까치밥도 넉넉하고, 주변의 산과 지붕이 어우러져 너무 아름다웠다. 작은 연못가의 화초들, 문가에 서 있는 은계나무

의 삐죽삐죽한 가시,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마가목 열매의 붉디붉은 얼굴이 고가를 개조한 음식점을 더욱 빛내주고 있

었다. 연못에는 잉어들이 바위 밑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불국사로 향한다.

보문단지를 지나면서 보문호에 노니는 오리배가 추억을 일깨워준다. 넓은 호수의 물길이 생각의 바다로 나를 이끌었다.

경주는 내게 정말 추억이 많은 곳이니까. 결혼 전에는 틈만 나면 찾던 곳이기도 했고, 남편과 정식으로 첫 데이트를 하

던 곳이 바로 보문호였으며, 그 당시 제주도 신혼여행 예약이 잘못 되어 대구에서 직행해서 경주 코오롱 호텔에서 하룻

밤 묵은 후 제주로 향했으니... 코오롱 호텔에서 준 주물 종과 매듭으로 이어진 기념품, 호텔에서 찍어준 사진이 아직도

커다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가끔 찾았고, 작년에는 또 호주에서 태어난 조카에게 관광을 시켜주기도 했다.

더 한가한 시간이 되면 경주남산 일대를 죽 돌아보고 싶다.

여고시절, 화랑교육원에 일주일 동안 입소하여 신라의 화랑의 후예로서 기질을 다지던 곳이기도 하다. 처음 쏘아 보았

던 국궁도 그립고, 교육원의 이층침대, 그 때 함께 했던 경북 각지의 친구들도 보고 싶어진다. 어느 하루 남산 일주를 하

던 기억이 너무나 좋았는데, 다시 밟지 못했으니....주변의 유적지를 순례하던 그 날들이 그립고....

아마 제일 많이 변하는 곳이 보문단지가 아닐까 싶다. 호수만 있던 곳에 놀이동산이 생기고...그래도 경주는 늘 유적들

이 잘 보존되어 변화가 가장 적은 도시이길래 내 마음을 늘 붙들 것이다.

불국사는 수백번을 찾아도 내게는 새롭다.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며, 계절 따라 다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목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목어 비로자나

윤정구

쇠락한 大寂光殿 앞마당이다
늙은 木魚 한 마리가
조선소나무 사이로 바다를 듣고 있다
천리를 달려온 나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대적광전의 배흘림을 발판삼아
바다 저쪽으로 귀를 열어 놓고 있다
조선소나무도 되고 바다도 되고 나도 되는
수많은 소리들이 하나의 소리로 울리기를 기다리는,
이제는 삼색 비늘조차 몇 남지 않은 목어
세월의 힘도 빌지 않고
스스로를 깎아내는 아픔도 없이
향기로운 꽃을 피우려 했던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처럼 반쯤 눈을 감고
망망한 바다의 소리를 듣는
늙은 木魚 한 마리,

나는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

이 시가 가슴에 파고들면서 목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세월의 힘도 빌지 않고
스스로를 깎아내는 아픔도 없이 /향기로운 꽃을 피우려 했던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망망한 바다의 소리를 듣는 /늙은 목어 한 마리,

빛 바랜 목어를 보며 떠올렸을 윤정구 시인의 그 얼굴이 떠오르면서, 조용한 그 분의 성품 속에 예리한

성찰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나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시를 써야 하는데....이번 여행에서 시 몇 편을 꼭 얻어야 할 텐데.....

아니 시의 봇물을 터뜨려야할 텐데...


청운교와 백운교의 건재함에 다시 감사함을 느끼면서, 자하문에 대한 느낌이 아련하다.

보랏빛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하문이라는 말을 나는 너무 좋아한다. 자하문, 자하산이 나오는 시는 무조건 좋아하고,

자하라는 말이 들어가면 뭐든지 다시 한 번 쳐다보는 나이기에....

불국정토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그 어감을 나는 너무 사랑하나 보다.

외국에서 온 어린 친구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많이 들었는데, 불국사에 대해서 더는 몰랐기에 청운교 백운교와 주변의 돌

기둥, 연화문, 범종루 등에 대해서 아는대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들이 얼마나 그 의의를 담아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은 잘 몰라도 아마, 먼 훗날에라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을 기대해 본다.


연말이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이 번에 내 눈을 끈 것은 또 기념품 매장과 요사채로 가는 문의 무늬였다. 푸른 빛을 주조로 한 그림이 전에도 그 자리

에 있었을 텐데 유독 이번에 눈을 끈 것은 무슨 까닭인지....

그리고 매장의 그림들과 기념품들이 조금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눈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언제는 볼 수 있는데, 언제는 볼 수 없다는 것.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며, 모든 사물에 적용될 것이니,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하기 보다는, 이렇게 다양한 기회를 만드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