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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북도 내륙

천마총, 대능원에서/겨울 여행, 바다새를 찾아서 4

넓은 유적지의 일부이지만, 따로 입장료를 받는 대능원으로들어간다.

사람들은 일명 천마총이라고 하지만, 대표적인 유적지가천마총이긴 해도, 그 많은 무덤들의 주인공들이

무척 서운할 것이다.

대릉원은 소나무가 무척 아름답다. 다른 계절에는 계절별로 꽃이 피고 지겠지만, 을씨년스런 겨울, 산더미

같은 무덤들도 갈색으로 옷을 갈아 입었고, 낙엽수들이 다 앙상해지고, 간간히 달린 열매들의 잔해만이 화려

했던 계절의 본 모습을 알려준다. 그러나 사계절 그 어느 때 보다도, 소나무의 위용이 살아나는 때가 바로 겨

울일 것이다. 껍질은 더욱 선명해지고, 나뭇잎들은 더욱 푸르러 보인다. 그러나, 소나무잎도 진다는 것을 사람

들은 생각할까? 소나무들 아래 무수히 떨어진 갈색 소나무잎들. 그것을 어릴 적 '갈비'라고 불렀다.

방학 때마다 시골에 가서 한 달을 살다 오던 나, 겨울 방학이면 사촌과 같이 갈비를 끌러 가는 것이 하루 일과

중에 포함되었다. 불쏘시개로는 그만이었다. 나의 고향 마을은 이름이 동송리이다. 冬松. 겨울 소나무가 아름

다운 마을이었다. 앞산도 뒷산도 소나무밭이었다. 바늘처럼 가는 잎들이 소나무 아래 빽빽히 쌓여 밟으면 뽀

드득 소리가 났다. 다른 낙엽들을 밟으면 바스락거리고 푹 빠지기 일수였지만, 소나무잎들은 단단하고, 미끄럽

기까지 했다. 소쿠리와 갈퀴를 들고 가서 아랫쪽에 이미 썩기 시작한 잎들은 그대로 두어 거름이 되게 하고, 최

근에 떨어진 마른 잎들만 긁어모으는 것이 요령이었다.

말랐지만, 그 솔향기는 진했다.

다른 잎들도 불쏘시개로 좋았지만, 아마 솔잎의 효능 때문에 아마도 긁어오라고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

에야 든다. 소나무잎으로 만든 음식들이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더러는 꺾인 생솔가지도 꼭

주워오라고 하셨다. 그 솔가지들이 불길을 지체시키면서도, 그 향이 무척 진해서 부엌에서 불을 땔 때는 무척

향기가 좋았다. 어떨 땐 너무 안 말라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곁길로 빠졌지만, 대릉원의 소나무는 정말 아름다웠으므로, 아름다운 소나무들과 함께 했던 어린 시

절을 생각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누구를 향해 저렇게 뻗었을까? 위로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언가를 향해 뻗어있는 소나무들. 쭉쭉 뻗은 소나무 껍질들

의 아름다운 무늬들,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땅으로 누울 것 같아 받침대를 해준 소나무들도 간간이 눈에 뜨였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지 않은가?그러나, 오랜 세월을 무수히 겪어왔을 소나무들의 가지가지에 정이 간다.



가장 대표적인 천마총. 누차 보아왔지만, 또 새롭다.

이번에 일행 중에 외국에 오래 살다온 학생 하나와 그의 외국인 친구가 동행하였다. 너무 일찍 외국에서만 살아서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면서 그 아빠가 서울역에서 우리 일행에게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였기에, 챙겨가면서 같이 다녔

는데, 아직은 역사에 대해서 그리 관심이 깊지 않은 듯, 지루하게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유적의 의의에

대해서 설명을 많이 해 준다고 노력을 했다. 일행 중에 내가 경주를 가장 많이 다녔기에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을 해 주었

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기의 외국인 친구에게도 통역을 잘 해 주었다.

안압지에서는 좀 흥미를 덜 느끼더니 천마총과 대릉원에 대해서는 좀 놀라는 듯 했다. 무덤 속의 규모와 그 부장품들에

대해서 의의를 설명해 주니 더욱 감탄을 하는 눈치였다. 그 보존이 잘 된 것 하며, 경주의 산처럼 큰 무덤들도 무척 인상

적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이번에 새로 느낀 아름다움 중 또 하나는, 주변의 연못과 벤치의 어우러짐이었다.

겨울 연못과 주변의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움에 눈이 부셨다.

연못을 둘러싼 돌과 보도블럭 대신 박힌 은빛 돌들의 눈부심, 물 위에 동동 뜬 낙엽들의 고즈넉함, 하늘을 향해 머리를 풀어헤친 겨울나무들의 황금빛 옷자락, 붉은 벽돌 무늬와 붉게 물든 단풍나무의 잔해와의 어울림, 둥글게 동글려진 나뭇가지들

의 부드러운 실루엣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다.



아름다움은 늘 새로운 것이다.

어제의 햇빛이 다르고, 오늘의 햇빛이 또다른 것처럼.....

마지막으로 나의 눈을 끈 것은 바로, 철 모르는 개나리꽃이다.

따뜻한 남쪽이라지만, 서울에는 대낮에도 영하의 날씨였다는데 경주는 봄날 같았다. 물론 바람 끝은 매웠다.

추위에 약한 그 지방 사람들은 무척 추운 날씨라 했으니....

제일 정직한 것이 바로 꽃들이 아닐까?

제 철도 모르고 개나리꽃이 피어 있었다. 애처롭게 핀 개나리꽃, 찬 바람 몰아치면 그 운명이 어찌될 지 명약관화한 사

실이겠지만, 어차피 한 철 피었다 지는 것이 꽃의 운명이라면, 남들이 다 깊은 잠이 든 이런 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주목을 받는 것이 더 보람있을 지도 모른다는....

억측 아닌 억측을 하며, 발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