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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시

계산착오

계산착오

함박꽃이 함박 웃으며

하늘에서 무더기로 쏟아진다

제일 먼저 닿은 곳은

목동 69층 하이페리온 지붕 꼭대기,

하늘 찌르며 서 있느라 얼마나 고통스러웠니,

여의도 63빌딩 꼭대기에도 내려앉으며,

너 역시 외로웠겠지?

여의도 쌍둥이빌딩 꼭대기에도 동시에 내려앉으며

너희는 그래도 둘이라 낫겠지?

토닥토닥 하얀 솜사탕을 뿌려주고,

북한산 백운대 깃대 위에도

바위 위에도

소나무 가지에도 함박 웃음을 바리바리 얹어준다

공평하게 내린답시고

숨도 쉬지 않고 몇 초 만에

후미진 아파트 골목까지 함박눈이 달려왔을 때는

얹어주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함박웃음으로 눈을 맞는다

그저 오겠다는 시늉만으로 하얀 가루를 조금 흘렸을 뿐인데

함박웃음을 주기도 전에

거리도 나무도 차들도 미리 하하하 웃고 있다

우뚝 솟은 것들은 선물을 먼저 주어도

미소도 보내지 않더니

그저 모양새만 갖춘 소박한 것들은

함박꽃보다환하게웃으며

소담한 보살이 되었다

얼마나 착각이었던가

공평하려고 하는 자체가 불공평하다는 것,

함박눈이 함박꽃의 모습으로 103년만에

우담바라로 피어나

염화칼슘에게 중생제도의 자리를 내주고

열반에 들었다

'나역시 하얗게 포장하며

마냥 하늘에 떠 있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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