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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리고 책

이런 젠장맞을 일이 2/이상문 소설집

자존심에 가린 인간 내면의 모습 들여다보기 2

-'이런 젠장맞을 일이'/이상문 소설집-



그 남자의 아내 또한, 남편의 외도에 배신감과 치욕스러웠지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자신만의 해소법으로 손빨래를 하면서 화를 삭힌다. 그러나 남편

에게만은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수년동안 앓아온 자신 탓이

라고 진수성찬을 만들어 내면서 남편에게 일부러 더 잘 해준다. 다리까지

절단한 자신과 섹스를 해 주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덕분에 그 남자는

비록 외도는 했지만, 죄의식도 없이 아무도 모르므로 당당하게 살 수 있었

고, 아픈 아내에게도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아내가 죽은 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남으로써, '이런 젠장 맞을~'

이란 욕을 입에서 떼지 못한다. 그것은 이제까지 사회인이나 가정인으로서 부

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는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가족과 이웃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

-해설‘염치와 자존심’ 장영우(동국대교수, 문학평론가) 중 일부-

“부부란 게 뭔데. 이런 젠장맞을 일이 있나…. 암 진단을 받은 그의 아내가 당

뇨병과 함께 살고 있는 그 남자의 아내를 보면서 치사하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구차하다거나 몰염치하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그래서 자신은 그 남자의 아내처

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더란 말이지. 그렇게 죽을 때까지 자존심을 지

킬 수 있었더란 말이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군.

이런 젠장맞을…….“

-소설 본문 중에서-

장영우 교수님은 해설에서 염치(체면)와 자존심을 지키면서 사느라고 왜곡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작가가 은밀히 다그치고 있다고 했다.

누가 보더라도 그 남자는 괜찮은 남자이고, 아내의 죽음으로 잘 못 해준 것

을 뉘우치면서 손빨래로 아내 잃은 슬픔과 상실감을 달랜다. 그런데 그런 죄

책감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 무렵,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너무나 충격을

받게 되어 '이런 젠장 맞을 일이!' 를 외치며 괴로워하지만, 결국 인간 본연

으로 돌아와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이다.

그 남자의 아내와 나경구의 아내는 왜곡된 자존심과 염치를 지키면서 죽어갔

다.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지만, 남은 사람은 얼마나 더 슬프고 비참한가? 그

남자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더 큰 멍에를 짊어진 것 같다. 나경구 역시, 진실은

모르고, 다른 여자와 재혼날까지 잡아놓고 그 남자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자리

에서 외국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아내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 그러면

서도 재혼할 여자에게는 아무 내색도 않고, 가슴으로만 아픔을 삭히는 그 심

정! 아마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을 것이다.

이 소설은 염치와 자존심만 지키면서 왜곡되게 살아온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

하고 있는 것이다. 세 여자는 모두 터트릴 것을 터뜨리고 살아야 인간답지 않

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그 남자의 어머니는 현대인답게 살려는 생각을 한

것이 참 잘 된 일이라 생각된다. 딸이 자기 어머니를 상대로 미쳤다고 할 지라

도 체면을 뒤로 하고 뒤늦게 일흔일곱 나이로 새로운 연인과의 관계를 시작한

다는 것이 멋진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부부란 게 무엇인지 다시 성찰하게 해 보고, 죽음과 인간의 내면을 잘 건드린

멋진 작품이다.

참 살다 보면, 여자들이 참는 일이 많다.

나도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부부가 함께 맞벌이를 하면서 야기되는 문제점

들도 많다. 젊은 세대들은 대체로 서로 도우면서 잘 극복하고 있는 듯 하지만

우리 세대들은 여자들의 희생의 몫이 크다.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나

도 진작 깨달았다. 그래서 때론 싸우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시도

쓸 수 있는 치열한 나를 발견할 수도 있게 되었다.

특히 나는 시부모님과 오랜 세월 함께 살고 있다. 모신다는 말은 당치 않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함께 살아왔기에, 서로 할 말을 하면서 살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다.

지금은 전 보다는 나의 입장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아직도 좁혀지지 않는 간격

들이 무수히 많다. 자존심과 염치도 좋지만, 인간다운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문 교수님의 소설은 나를 다시 한 번 되돌

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가 손홍규는 ‘치열하고 탄탄한 서사의 리얼리스트’ 라는 이름을 붙인 작가

탐방에서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가하고, 전쟁과 베트남에 관한 소설을 많이 쓴

작가가 베트남의 슬픈 역사에 관한 깊은 공감과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을 잘 찾아

내고 있다. 그는 작가탐방에서

“소설에서 서사가 부족한 시대라는 지금, 21세기 새로운 문학의 건설이라는 과

제는, 어쩌면 젊은 작가들만의 몫은 아닌 것 같다. 치열한 현실 인식과 탄탄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사와 궤적을 같이했던 리얼리스트 이상문. 21세

기가 환영할 단단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그에게서 기대해보자.“

라고 했다.

내가 읽은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특히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는 중년에게는

모두 공감이 갈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인생의 깊은 맛, 우여곡절을 겪

어 본 사람이라면 더욱…….

이상문 선생님은 '문학과창작'주간을 지내기도 하셔서 자주 뵙는 편이지만, 늘

뵈면 낙천적이시고 참 사람 좋은 분으로 보인다. 우리 선생님과는 막역한 사이

셔서 각종 행사에서 내뱉으시는 말도 직선적이고 어떨 때는 일부러 상스런 말

을 섞어 쓰시기도 하지만, 참 재미있는 분이시다. 자그마한 외모와는 다르게 통

도 참 크신 분이다.

최근 몇 년 전에 이 소설처럼 ‘젠장맞을 일’을 당하셨다. 작가의 말에서 부인에

대한 그리움이 배여 나온다. 인간이 가장 심리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배

우자의 죽음이라고 한다. 떠나간 후에는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잘 해 준 일 보다

는 못해 준 일이 자꾸 떠올라 발목을 잡힌다. 그런 인간의 심리를 경험을 통해서

더 잘 표현하신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신혼이시다. 술도 많이 드시더니 요즘은

밝은 표정이신 듯 해서 친구분들 사이에서 놀림도 당하시곤 하시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긴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의 그 남자의 어머

니처럼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어느 날 ‘늙음․죽음보다는 녹슨 삶이 더 두렵다’는 말을 발

견하고 섬뜩했다고 한다.

그는 20여년 전에 소설을 쓰는 젊은 남자들이 목걸이를 하고 다니거나, 귀걸

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

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별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징크스가 있듯이 작가들도 새로운 발상을 해야만 좋은 소설을 쓰는

것을 인정한다면, 프로운동선수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기도를 하는 것, 물건을

지니는 것처럼 그것도 인정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지갑 속에 부적을 갖고 다니

면서 겉으로는 잘난 척 하는 사람보다도 얼마나 인간적인 가를 깨달았다는 것이

다.

이 소설은 그런 작가의 의식이 반영된 소설이다. 그런 만큼 다섯 번이나 고쳐 쓸

정도로 어렵게 쓰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도 목걸이나 귀고리를 하지 않고 버텨나갈 것이다. 그 모습들이 눈

에 거슬려서가 아니라, 방식을 바꾸는 것은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것이라는 어쩌지

못할 자신의 답답한 판단 때문이다.

나는 이 답답함을 사랑한다.“

라고 말을 맺고 있다.

그러나 그 내면 속에서는 체면과 자존심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당당하게, 더욱

열심히 살아가고, 글을 쓰고 싶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더욱 건강하게 행복하시고, 좋은 소설 더 많이 쓰시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