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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리고 책

이런 젠장맞을 일이!/이상문 소설집

자존심에 가린 인간 내면의 모습 들여다보기 1

-'이런 젠장맞을 일이'/이상문 소설집-



'이런 젠장맞을 일이'란 소설집을 병원에서 읽었다.

최근에는 바쁘답시고 시집은 그래도 열심히 읽고 있지만, 소설은 내가 보는

문예지들에 나오는 단편들이나 읽는 게 고작이었고, 사실 이 소설도 연재가

된 것인데, 솔직히 말해서 잘 읽지를 않아서 죄송한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다.

책까지 손수 보내주셨으니…….

이번 작품집에는 두 편을 실으셨다.

'이런 젠장 맞을' 이라는 중편과 '아욱된장국 끓이기' 라는 단편이다.

'이런 젠장 맞을'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고 느낌을 적어 본다.

만화를 그리는 그 남자는 당뇨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그것으로 '환지통'이

라는 병까지 얻게 된 아내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아내와의 일상을 회상하면

서, 아내 사후의 자기의 마음과 행동을 풀어놓는 이야기이다.

그 남자는 좀 무심한 성격으로, 아내의 내조를 잘 받으면서 살다가 당뇨가

심해져서 아내의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게 되면서 일상의 변화를

맞게 된다. 아내는 갑자기 수술 부위에 벌레가 스멀거리는 환상에 사로잡히

는 '환지통'을 겪으면서 답답함을 극복하기 위해 각방을 쓴다. 그러면서 한

밤중에 일어나 세탁기를 두고도 손빨래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리

고 남편을 위한 밥상을 매일 진수성찬으로 차리면서 마음의 병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 남자는 그런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난리를 피지만 그 전

에는 같이 큰 소리로 싸우곤 하던 아내는 침묵으로 남편의 그런 화를 참아낸

다.

그 덕분에 그 남자는 비만과 당뇨의 두려움으로 조깅을 하게 되고, 체력이

좋아져서 아내가 아프고부터 시들해졌던 섹스도 더 많이 하게 된다. 아내는

그걸 고마워하면서 남편에게 고맙다고 한다. 남들은 자기 다리를 잘랐다고

섹스도 안 하고 사는 줄 안다면서,

“당신, 나를 무시하지 않아서 고마워요.”

라고 말하면서 그 남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러나 아내는 결국 '환지통'에 시달리며 병원 응급실을 들락날락거리다

가 결국 마지막에는 3개월 정도 병원 중환자실에 머물다가 사망하고 만다.

면회 시간에만 짧은 시간 동안 아내의 얼굴을 볼 수있는데도, 아내가 다

시 집으로 돌아올 것으로 여긴 그 남자는 아내의 마지막 할 말이 있다는

눈빛 마저도 못 알아보고 면회시간이 다 되었다는 말만 건성으로 하면서

외면한 채, 결국 아내와 마지막 대화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혼한 부부 중 친하게 지내던 남편인 나경구와

잦은 술자리에서 서로의 생활을 알게 모르게 내뱉게 되고, 그 후배에게 아

내와 재결합하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후배가 이혼을 한

것은 외도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배도 아내가 몸이 약하

고 아프다는 이유로 3-4개월 마다 주기적으로 여자를 바꿔가며 외도를 해

온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배로서 자기는 충고를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화에서 자기가 아내의 병 때문에 딱 한 여자와 일정 기간

외도를 한 것을 자기 아내가 알고 무척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후배에게서 듣고

너무나 충격을 받고 수치심으로 어쩔 줄을 모른다. 그 때 내뱉는 말이 바로

'이런 젠장 맞을 일이!' 였다.

아무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외도는 했지만, 후배에게 충고까지 할 수 있

었는데, 그 사실을 자기 아내가, 후배의 아내에게 하소연을 했고, 또 그 남편

에게까지 이야기해서 후배까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워 충격

을 받는다. '이런 젠장 맞을 일이!' '이런 젠장 맞을 일이!' 를 자꾸만 반복하

게 된다. 게다가 시골에 살고 있는 어머니까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를 통해 듣고 망연자실한다. 역시'이런 젠장 맞을 일이!' 를 외치지 않

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자괴감에 빠지고, 아내가 죽은 후부터 지금까지 3년 동안, 3년상의

의미로 재혼도 마다 하고, 아내처럼 잠이 안 오면 한밤중에 손빨래를 하면서

보내왔는데, 아내가 죽기 전에 왜 손빨래를 시작했는지를 유추하게 된다. 아내

는 남편의 외도를 알고, 다른 식구들의 빨래와 격리시켜서 따로 손빨래를 했던

것이다. 그남자는 이제 잠을 잘 수가 없다. 시간이 나면 달리기를 하면서 자신

을 혹사시킨다. 아내에 대한 그 미안한 마음보다도 더한, 삶의 허무함에 괴로워

한다. '이런 젠장 맞을 일이!' 를 수십 번 되노l이게 된다.

또한, 젊은 여자와 재혼을 결심한 후배에게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로 알게 된

후배 아내의 이혼 결심 사유를 알고 더욱 망연자실해진다. 그 남자의 아내가 병

에 걸려 남편의 외도로 괴로워하면서도 그렇게 사는 것을 보고, 후배의 아내는

자기가 췌장암에 걸린 것을 숨기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도 남편의 바람기를 알고, 그 남자의 아내에게 하소연한 것을 그 남자는 너

무나 많이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미웠을 텐데도, 남편에게 구차하게 기대지

않고, 이혼을 하여 미국에 가서 오빠와 살면서 의연히 살다가, 장례식까지 다

치룬 뒤에 연락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충격은 그 남자의 어머니에 대해서이다. 그녀 역시 그 남자의 아내

나 후배의 아내처럼 남편의 바람기를 참고 견딘 또 한 여인이다. 지방에서 혼자

아버지 때부터 살던 어머니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객사하고 나서도 자식들 키우

고 다들 짝지워 보낸 후 혼자 고향에서 살고 계셨다. 가끔 혼자된 큰 아들의

수발을 들고 반찬거리며 날라 주시며 머물다 가시곤 했다. 3년상을 치르면서 예

년과는 달리 일 주일을 머물다 가신 어머니는 뜻밖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자네 아버지도 바람을 피웠었다네.”

이렇게 말문을 여신 어머니의 이야기는 또 '이런 젠장 맞을 일이!' 를 외칠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동네에 있는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다가 그

녀가 알게 되자, 젊은 여자와 서울로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시체가 되어 돌아왔

다는 것이다. 남편의 배신감에 흥분해서 친정어머니께 배운 대로 ‘내훈’의 ‘투

기하지 말라!’는 덕목을 지키지 못해 남편을 죽인 아내가 되었다는 죄책감이 평

생 그녀를 괴롭혔다고 했다.

그 남자는 어머니의 인생이 불쌍하다기 보다는 어머니의 그 첫마디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자네 아버지도’ 라는 말은 또다른 누구도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

기인데, 그 누구가 바로 자신을 지칭하는 것임을 느끼고 너무나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서 '이런 젠장 맞을 일이!' , '이런 젠장 맞을 일이!' 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남자의 아내가 마지막으로 병원으로 실려가던 날 밤에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유언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 남자는 걱정 없을 거라고. 병원에 보름씩,

한 달씩 입원했다 돌아오면 집안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반찬도 잘 하니 자기가

죽어도 걱정 없을 거라고. 그런데 죽고 나면잘 해 준 일보다 못해 준 일이 더 생각

난다는데, 남편이 그럴까봐 걱정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더욱 치료 열심히 받고 있

다고…….

물론 안부전화였는데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게 이상해서, 경망스럽다고 생각하면

서도 오히려 며느리를 위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마지막 통화였다고

하면서, 뭔가 자기 예감이 있었던 거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참 가슴이 아팠다. 한국 남자라면 통상적으로 용인이 되는

혼외정사와 관계되는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오죽하면 우리나라를 남성들의 천

국이라고 했을까?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살 수 있고, 요즘은 돈이 없어

도 인터넷이니 전화방이니 해서 유혹의 마수가 도처에 뻗쳐 있다. 마음만 먹으

면 얼마든지 가능한 나라이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모텔 사업은 번성한다. 섹스

나 외도의 문제는 어느 나라이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기 때문에 제도가 통

제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에 나도 동감한다. 사람이 기본 욕구가 식욕, 성욕,

물욕, 명예욕 등이 있지만,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탐하는 것이 바로 성욕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현실을 개탄하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인간의 자존심과 내

면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남자는 원래 착실한 남자였는데, 딱 한 여자와 섹스를 했고, 그것도 아내

가 아파서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을 자위해왔다. 그래서 바람을 자주 피워서

이혼당한 후배에게, 나는 사별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너는 바람기 때문에 이

혼당하지 않았냐고, 은근히 그를 나무라기도 하고, 재결합을 권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실은 그 전부터 자기의 외도를 아내도 알고, 후배의 아내와 자

신의 어머니에게 하소연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후배까지도 알고 있었다는 사

실이 정말 견딜 수 없이 젠장맞을 일인 것이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