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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달마도 달력, 눈밭 이승에 입맞추다/한이나

달마도 달력 외 1편 *문창 2008년여름



한이나



달력 달마도를 천,천,히, 넘겨 본다

제 벽을 향해 앉아

살아 있는 모든 인연을 멈춘 달마대사

선정에 든 정신이 몸에서 벗어났다가

돌아오니

벗어놓은 몸이 온데간데 없다

나도 벗어놓은 몸을 찾아 헤맬 때가 있다

강가강의 불과 물로 영혼을 씻어낸 흐린 불빛이었다가

산사 목탁구멍 속 독경소리이었다가

남자 몸 속으로 들어가 환골 탈태한 그림자이었다가

대청호 수몰된 물 속

물고기 학교 1학년 교실 스무 살 무렵이었다가

돌아와도

여전히 낯선 내 몸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 온

상전이 된 내가 아닌 바뀐 초로의 몸

벗어놓은 몸이 온데간데 없다

나는 내가 아니다





눈밭 이승에 입 맞추다



명은 길어지고 삶은 남루해져

더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일 때

낭파라 깎아지른 절벽의 고개 너머

굽이굽이 굽은 길 아찔함의 끝, 네팔에 간다

트레킹에 들어 나를 맡긴다


고요한 정적 깨뜨리며 부서져 내리는

설산의 눈보라

온전치 못한 마음 이끌고 설봉 바라보며

묵묵히 걷고 또 걷는 길

풀린 다리 절뚝이며 걷는 바튼 숨이

몸을 들어 올린다

확, 눈 앞의 만년설 빙벽 그 은빛 봉우리

신이 사는 곳 히말라야가 흘리는 하얀 눈물


넋 놓다가 가장 낮은 자세 오체투지로

눈밭 이승에 입 맞추는

아, 이 생을 받아 가꾸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가


히말라야 저쪽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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