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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강원 내륙

제2땅굴을 찾아서





아침 안개 속에 철원으로 출발했다.

장마라고는 하지만, 비오는 날 보다 맑은 날이 많지만, 오늘은 안개 낀 걸 보니 무척 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오랜 시간에 걸쳐 도착한 곳, 어느 마을이 있는 입구에선가 벌써

어떤 사람이 와서 버스에 '안보견학'이라는 표지판을 차 앞에 두라고 주고는 사라졌다.

철원평야가 참 넓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궁예가 도읍지로 욕심낼만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개성은 지금이야 갈 수 없는 땅

이지만, 한탄강이 도도히 흐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에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높고 낮은

산들....정말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으로 보였다.

분단이 되기 전에는 철원역이 무척 컸다고 한다.

경원선의 교두보로서 대단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서울역과 비교했을 때, 서울역보다 더 크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안내원의 말을 듣고

보니, 철원을 새삼재평가하게 되었다. 원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그 아름다운 경치를 향해갔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분단의 현실이 문득 가슴 아파

졌다. 좁은 땅이 그나마 나뉘어졌으니...

정말 빠른 시간 안에 경원선도 경의선도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게 되고 자유관광을 할 수 있으

면 얼마나 좋을까?

초입에서도 한참을 달려 우리는 제2땅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땅굴. 남방한계선을 넘어 3.5킬로미터나 내려왔다니, 미처 발견을 못했다면 심각

한 사태가 생겼을 지도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은 정말 단단한 바위로 되어있었다. 그 암석

을 깨내고 굴을 파자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희생되었을까?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이 굴을 축축하게 적셔주었고, 곳곳에 이끼가 자라고...패인 홈으로는 지

독하게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청정지역이니 땅 위나 땅 속의 물 또한 그렇게 맑은 것 같았

다. 곳곳에 땅굴을 찾기 위해 시추공을 박은 구멍들이 우리 쪽의 애절한 노력을 실감나게 해

주었다.

마지막막아놓은 곳까지 갔다.

그 쪽으로 곧장 가면 북한땅이라니, 섬뜩해졌다. 땅속 150미터쯤에 있다는 그 땅굴.......땅굴

은 산을 타고, 북쪽의 북방한계선보다 한참 위쪽부터 시작되었다니, 북측에서 얼마나 야심을

갖고 작업에 임했는지 짐작하게 해주었다.

정작 스카우트와 아람단인 우리 아이들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 눈치였다. 땅굴이 그저 성류

굴이나 그런 굴처럼 자연적으로 생긴 것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교육을 하긴 하지만

역사는 정말 잊혀지기 쉬운 것일까?

요즈음은 6-25노래를 가르치기도 좀 그렇다.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인데, 총칼로 적들을

무찌르자는 선동적인 노래를 가르쳐봤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

르쳤지만, 별로 강조할 수가 없었다. 다만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서로를알자는 교육쪽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그들이 우리와는 또 다른 입장이라는 것을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사전에 설명을 곁들이긴 했지만, 땅굴 속을 가면서도 장난치기를 좋아하던 아이들도, 철의

삼각지 전망대에서는 숙연해지고, 해설자의 말을 듣고는 조금 진지해짐을 알 수 있었다. 주

변의 지도를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바로 앞의 비무장지대의 무성한 숲, 50여년 동안 그대로

두어 숲이 우거져 이젠 전망대를 산 위로 옮겨야만 하는 실정.....안개가 끼어 망원경으로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전

망대 옆쪽으로 탱크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는 방어벽, 그 앞 쪽의 남방한계선 철조망

을 보고는 말로만 듣던 분단의 현실을 실감하는 듯 했다.

지금 당장은 무덤덤하더라도,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두고두고 아이들 뇌리에 남아 있어, 앞으

로의 사고방식, 대응방향을결정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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