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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동해안 남부

간절곶, 그리고 65번고속국도

간절곶, 그리고65번고속국도

여행했던 곳을 다시 찾았을 때 변하지 않은 곳은 별로 없다.

마음의 고향같은 곳 외에는 자주 찾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도로가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나라가 많지 않을 것 같다. 좁은 땅에 복닥거리며 사니, 거미줄처럼 도로

망을 얽어놓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드니 말이다.

지도상에는 건설중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65번고속도로가 잘 뻗어 있었다.

아무리 고속도로가 좋아도, 동해바다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리 유혹적이진 못한 길이어서, 부

산에서 간절곶까지만 바닷길을 이용하고 이 고속도로를 이용해 봤다. 차도 별로 없고 정말 한

산해서 좋았다. 여름에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지만, 이 겨울에 씽씽 달린다는 것은 위험을 동반

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터널에서 과속위반 스티커 한 장이 날아오고 말았으니...

울산 좀 못미쳐서 이 65번고속도로를 타고 해운대IC까지 내달리니 금방 닿을 수 있었다.

밤길이라 정신없이 달렸기도 하지만, 목적지에 빨리 닿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쓰릴이 넘치는 일

이 아닐 수 없었다. 올라올 때는 울산 시내에서 빠져나와 이 고속도로의 시작부분만 스쳐오긴

했지만, 우리 나라의 피를 돌게 하는 새로운 동맥 하나가 활기차게 뛰고 있으니 바람직한 일이

다.

이번엔 머리를 식히려고 나선 길이었다.

친정어머니의 만류도 뿌리치고, 외국여행 캐리어에 책과 노트, 유인물, 노트북까지 싣고 나

섰으니, 여러 곳을 본다기 보다는 짧은 이동에 며칠 잠수를 타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래

도 모처럼 보고 싶다는 친구 잠시 만나러 포항, 부산 들르다 보니, 운전하는 길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비바람이 치는 바람에 기분이 우울해서 하려던 일을 별로 못 했다.

아무튼 내가 보고 싶은 곳은 간절곶이 포함되어 있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파도에 떠나 보내면, 올해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커다

란 우체통에 나 자신을 위한 마음의 다짐을 담아 엽서 한 장 부치고 싶은 마음도 컸기 때문이

다. 그런데 간절곶에 막상 도착하니,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정말 그리 거센 파도는

정말 오랜만에 보았다. 비는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어찌나 센지 우산이 뒤집혀 쓸

수가 없었으니,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파도가 그리 거센데도 바다는 역시 푸르다

는 것도 정말 신기했다. 서해 바다는 비가 오거나, 썰물이 들면 흐려보이는데, 동해바다는 역

시 개펄이 없으니, 비가 그렇게 내리고, 해변에서도 1-2미터로 몰아치는 파도를 토해 놓고도

에메랄드빛이었다.

그래도 나처럼 명성을 따라 찾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임시로 지어진 투명비닐로 만

든 노상카페안에서 차나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그 파도를 감상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

들의 시선에 방해 받고 싶지 않아서 한가로운 곳에다 차를 대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운전석

에서 조수석쪽 창을 열어 놓고 바다를 향해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운전석에서 바로 찍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너무 거세어, 카메라 렌즈가 온전하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사람들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니, 근처에 오면 이 곳을 찾고 싶다.

어슴프레한 수평선, 비바람이 거셀 때 들렀으니 간절함이 더 잘 이루어질 듯 하다.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긍정의 한 줄을 뿌렸다.


파도가 어찌나 센지, 하얀 파도가 분말을 마구 뿌려대는 소화기 같기도 하고,

힘차게 밀려오는 파도는 세상을 다 삼킬 듯 했다.

파도는 깊은 곳에서는 표가 덜 나지만, 바위를 만나면 더욱 사나워진다.

아니, 어쩌면 더욱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신이 나는 듯 하다.




아무리 파도가 거세도 돌탑은 의연하다.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거대한 우체통 역시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비바람을 핑계로 엽서를 넣지 못하고 온 게 아쉽다.


돌고래는 무표정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까지 저 자리를 지킬 것이다.

해돋이를 할 수 있는 바다의 뒷쪽 바다.

생활의 바다이다.

간절곶이 유명해지면서 간판이 바다를 잘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