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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북도 내륙

유년의 뜰을 찾아서

유년의 뜰을 찾아서

1. 그리운 어머니 품으로

뒤숭숭한 마음을 안고 친정에 갔다. 혼자 갈 때면 KTX를 주로 이용하지만, 이번엔 차를

끌고 쉬엄쉬엄 방문을 했다. 휴가철 막바지라 귀경차량은 붐볐지만, 내려가는 길은 아주

한가하고 쾌적했다.

반갑게 맞이하며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계셨다는 어머니, 내가 올 시간에 맞춰 와서

나를 맞아준 여동생, 일부러 일이 있었는데도 나가지 않고 기다려 준 남동생네 식구들.

그렇게 피붙이를 만난다는 건 가슴이 찡하도록 기쁜 일이다.

요즘 무슨 지압을 받으러 다녔다는 어머니는 근래에 드물게 건강이 좋아보이셔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내 마음은 무거웠지만, 이제 초등 6학년이 되면서 올해 키가 몰라보게 커

버린 조카녀석은 완전 총각티가 나고, 4학년짜리 조카딸은 키는 아직 많이 크지 않았지만

하는 짓이 완전 어른스럽고도 이쁘다.

저녁 늦게 부부동반 모임에 다녀온 막내동생 부부도 와서, 이제 사람꼴을 갖춘 조카의 재

롱에 온 식구가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것저것 집어 먹어서 배는 부르고, 시원하게 마

신 맥주에 더 배가 부르다. 그렇게 일요일 밤은 깊어가고, 어머니와 여동생과 누워 모처럼

나누는 대화에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사는 게 뭐 별건가?

그렇게 그렇게 건강하게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살면 되는 것을.....

2. 팔공산 방짜유기박물관, 그리고 수태골

3일째 되는 날, 오후에는 식구들과 팔공산으로 나들이를 했다.

작년 겨울에 동화사로, 케이블카로 다 갔으니 갓바위 등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영 아니라, 걍 계곡에서 발이나 담그자는 결론을 얻었다. 먼저 방짜유기박물관이라는 곳에

들렀다. 유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었다. 방짜유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

었다. 방짜유기란 여러 단계의 수작업을 거치는 가장 아름다운 유기 제작법이라는 것이다.

반 방짜유기는 틀을 부어서 좀더 대량생산을 할 수 있게 발전한 것이고, 방짜유기가 정말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황금같은 유기였다. 그 무늬나 모양의 화려함과 독특함도 알게 되어

무척 기뻤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내 마음을 끈 것은 그 입구의 '시인의 길'이었다.

그 박물관 가는 입구 다리에서부터 시인의 길이라는 비를 시작으로시인들의 시가 돌에 적혀

있었다. 또한 그 양쪽에는 개인이 돌을 모아 전시해놓은 곳이 있어너무 아름다웠다. 조카들과

식구들이 박물관 감상을 더 하는 동안 나는 미리 내려와서, 그 곳에서 시를 읽고 사진을 찍으

며, 시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또 한 쪽에는 남근석을 무더기로 모아놓은 곳도 있었다. 주변환경과 잘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

들이었다. 아마 공개를 하는 기간이 있는 듯 했는데, 그 날은 개인사정으로 돌아보지 못하게

막아놓아서 좀 안타까웠다.











그 다음 간 곳은 바로 수태골.

막바지 휴가철이 지났지만, 수태골이라는 계곡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이 와 있었다.

(수태골에서 발 담그면 수태한대나? 요건 그 날 저녁 친구들을 만났을 때 이구동성으로 한 말

이다. 그래, 셋째 하나 낳을께.....ㅎㅎㅎ)

수태골은 꽤 높은 곳에 있는 골짜기라 물이 무척 맑고 시원했다.

갑자기 나선 길이라, 근처 가게에서 구입한 과일과 과자를 먹으며 시원한 그늘에 앉아 계곡물

에 발 담그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제일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아이들, 그 아이들의 미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어른들....

언젠가 들렀던 오리고기집에서 느즈막히 먹는 점심 또한 꿀맛이었다.



팔공산은 언제 봐도 내 마음의 산이다.

어릴 적 송충이 잡으러 가던 기억이 난다.

송충이 한 마리에 점수 1점이었던가? 여자들은 송충이에 쏘일까봐 전전긍긍했고, 남자아이들

은 그것이 재미있으니까 여자들 괴롭히고.....그래도 임무 완수는 해야겠으니, 남자들에게 아쉬

운 소리 하며 송충이 한 마리씩 얻곤 하던 기억....그 시절이 그립다.

3. 내 고향 금호강가

고향,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거의 자란 곳이니 고향이겠지?

그 고향이라는 곳이 도시라 전원을 바라보는 사람들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집에서 멀찌기

바라보이는 금호강물, 그리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그 언덕, 그리고 건물에 가렸지만

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대구선철로. 그 곳이 어릴 적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었다. 학교

바로 뒤에는 금호강이 흐르고, 그 금호강을 가로지르는 붉은 철교, 그리고 곧장 이어진 철로

는 위험하지만, 우리들의 소중한 놀이터였다.

금지된 장난은 더욱 재미있는 법,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 들켜서 혼나기도 했지만, 대구선 철로와 경부선 철로는 우리들의

소중한 놀이터였다. 도시변두리에서 시골 아이들처럼 농삿일을 돕지는 않았지만, 우리들

의 주변은 자연이 주로 놀이터였고, 거기에 철길과 그 아래 굴다리, 그리고 금호강과 강가

가 우리들의 주무대였다.

4. 유년의 추억

1970년대 초반이나 중반이었던가?

우리들의 유년이 황금열매를 주렁주렁 달았던 것이....

우리는 5학년 때 친구들이 6학년 때 그대로 진급을 했다. 시골 학교처럼 단급학급이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6반이나 되었지만, 그 때 아마 무슨 시범학교 였던 듯, 학급이름과 담임

선생님은 바뀌고, 아이들은 모두 그대로 올라간 것이었다.

5학년 때의 우리 반은 최고의 반이었다. 담임선생님과 호흡도 잘 맞았고, 무엇보다 그분이

욕심이 많으셔서 우리 반은 뭐든지 1등을 해내는 반이었고, 아이들도 무척 잘 따라주었다.

우리 반 성적이 전교등수가 될 정도였으니까.....아무튼 우리 반은 유별나기도 했고 친구들

끼리 사이도 남다르게 좋았던 듯....사전찾기 대회, 연극대회, 무슨무슨 대회도 엄청 많았던

우리 반, 그리고 교내 반별 대항 경기도 많았던 듯 하다. 뭔 실험실습대회도 있어서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 극성스런 아이들이 그대로 올라갔으니, 얼마나 난리였던가?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무척 바쁘셨고 처음에 우리들과는 전해처럼 호흡이 잘 맞지는 않았다.

괜히 담임선생님을 5학년 때와 비교하고 반발도 하고 그랬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또한 아

주 훌륭한 분이셨고 매우 온화하셨기에 또 우리는 열심히 적응을 해 나갔다. 아마도 조숙했

던 우리들은 남녀가 짝지어 놀러다니길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들끼리 몇명

이 잘 어울려다녔고, 남자들도 자기들끼리 잘 어울리다 보니, 서로 연합을 해서 관심을 증폭

시켰다는 말이 옳겠지? 우리 여자들은 일부러 좀 내숭을 떨었던 듯 하고 남자들은 그런우리

들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나름대로 이벤트를 꾸미곤 했다.

그 때 월남파병을 하던 시기여서, 그녀석들은 자기들 그룹이름을 '파월개선장병'이라 짓고

6인조를 결성하여 폼을 잡곤 했다. 우리가 한 여자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을 알고 따라와서

철길 근처에서 쫓고 쫓기는 바람에, 땀을 뻘뻘 흘리던 기억이 난다. 그걸 다른 반 친구들이

봐서 선생님들께 일러서 우리는 극성스런 아이들로 지목되어 교무실에 불려가서 혼나기도

했다. 그 때는 담임 선생님께 아직 정을 주지 못하던 때라 담임선생님이 무척 원망스럽기도

했다. 5학년때 선생님은 남녀가 사이좋게 노는 것을 일부러 조장을 하시기도 했기에...

5. 지천명을 바라봐도영원히유년인 친구들

그런 친구들이 요즘 만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번 서울 모임에서 회포를 진하게 풀었지만, 내가 왔다는 소식에 10여명의 친구들이

또 만났다. 얼마나 진하게 놀았던지. 그간 내 마음에 응어리져 있던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조금 풀린 기분이 들었다.

둘째날, 여전히 기분은 풀리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야 할 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너 바쁘다더니 지금쯤 왔을 것 같아서 전화했다며.......

완전 그런 텔레파시가 있을까? 암튼 다들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다음날로 약속을 하고

급히 문자들을 띄운 모양...하루 전에, 또는 바로 그날 연락이 닿았는데도 한 걸음에 달려

와 준 친구들, 얼마나 고마운가?

1차는 친구가 하는 고깃집에서 시작되었다.

건물도 멋지고, 아파트촌을 끼고 있는데, 터가 넓고 고기맛도 좋았다. 유일하게 아직 미혼

인 친구가 누님과 함께 하고 있는 집, 서비스도 엄청 좋았고, 구수한 고기맛보다 더 구수한

우리들의 유년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서도 이어졌다. 어린 시절의 버릇들, 누가 누구를 좋아

했네, 누구는 공부를 잘 했네, 못 했네.....

그 중에 한 친구는 정말 초등학교 졸업후 처음 만났다.

카페에 올린 사진은 서너장 보아서 낯설지는 않았고, 얼굴을 뜯어보니 금방 생각이 나는 친

구, 직장이 먼 곳에 있어서 조금 늦게 나타났지만, 40년 가까운 세월도 잊게할 만큼 너무나

반가운 친구였다. 특히 나에 대한 기억이 좋았던 친구, 그 때는 우러러 보지도 못했다나? 근

데 그 친구는 우리 친구들 중에는 참 형편이 나았던 친구였다. 그런 가정사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고교 교사로 계셨으니, 변두리의 우리들로서는 괜찮은 편이었다.

하기사 직업으로 따지자면, 울 아버지께서도 창창한 공무원이셨으니, 사업으로 전환만 하지

않으셨다면 나도 어쩌면 지금 다른 길을 갔을 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언제나 자기가 생각하

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

늦게 만난 그 친구도 법대를 나와서 실패를 하고 법무사를 하고 있었다. 초등하교 때는 성적

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공부를 열심히 한 케이스이고, 성격도 참 좋아

보였다. 찬찬하기도 하고....그 친구는 동기들 산악회에서 산행을 열심히 한다고 하니, 더욱

건강하기를 바랄 뿐이다.

6 수성못 한 바퀴

2차는 수성못 나들이였다.

내가 서울에 왔을 때 한강유람선 태워줬다고, 거기선 늦어서 금호강 오리배는 못 태워주고 수

성못이라도 한 바퀴 돌자며 수성못으로 향했다. 그 곳은 울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자주 들르기

도 했기에, 나도 추억이 많은 곳이라 했더니, 모두 웃었다. 와, 어찌 그리도 변했던지, 내가 결혼

할 무렵의 수성못은 한가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대단히 번화해 있고, 그 주변은 거의 유흥가로

번지고, 못 가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놀이기구들도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운

동하는 사람들, 삼삼오오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못이라........사실 호수라고 해야할 것이다.

유독 대구사람들은 못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서울경기에선 물왕호수, 백운호수 , 또는 저수지,

이런 말들을 많이 쓰지만, 규모면에서는 호수나 못이나 저수지나 비슷하다. 못이라는 말은 순 우

리말이다. 대구에는 수성못,배자못, 태전못, 성당못.....그런 못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

라지고 수성못이 가장 번화했을 것이다. 주변의 논밭들도 거의 아파트촌, 유흥가, 식당가로 변하

고....

7. 현실의 정점

3차는 단란주점이랄까?

룸이라고 해야겠지?

아무튼 최신식 시절을 자랑하는 술집이었다. 친구 동생이 하는 곳인데, 그 곳에서 지난 번 서울에서

실수를 많이 한 친구가 자리의 실수를 만회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나 보다. 꼭 그래서라기보다

그 친구가 마음은 대단히 여리고, 친구들을 사랑하는데 술버릇이 좀 안 좋아서 분위기를 망쳤었다.

나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라고 했더니, 식당에서 기꺼이 사과를 하고

모두 기분좋게 즐길 수가 있었다. 노래를 얼마나 열심히 불렀던지, 목이 다 뻑뻑했다. 술도 엄청들

마셨다. 양주까지 엄청 마시는 바람에 그 다음날 녹초가 되었을망정, 어린 시절 친구들이라 그렇게

마음놓고 놀 수 있었으리라.

이제는 인생 3박자를 맞추며 살자.

그게 우리들 이야기의 지론이었다.

건강하게, 즐겁게, 친구와 함께!

건강이 없으면 아무 것도 가질 수가 없다

적당히 먹고 놀 돈이 없으면 즐거울 수가 없다

아무리 건강이 있고 돈이 있어도 함께 할 친구가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아가랴?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현실의 정점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 열심히 살자고

그렇게 다짐을 했다. 노래에 섞고, 수다에 섞어서....

8. 고단하면 쉬어가리

흐~~친구 한 명이랑, 4차를 했다.

뭔 사연이냐 하면, 일찍 결혼한 여자친구가 있는데, 남편이 위암이 재발해서 마음이 안 좋은 친구가

있다. 남자친구들도 있을 때는 얘기하기 힘든 일도 있어서 여자들끼리 남기로 했는데, 다른 친구들

은 너무 늦어서 집에 가고, 둘이 남아서 좀더 얘기를 했다. 참 사는 게 다 똑같은 것 같지만, 집안에

그런 우환은 없어야하는데, 그 친구가 너무 가슴아프다. 집안 형편 때문에 일찍 결혼해서, 고생도

많이 했는데, 남편이 5년 전에 위암 수술을 했는데, 관리를 잘못 해서 또 재발을 했기에 요즘 무척

고생하고 있다. 아픈 남편도, 수발하는 친구도 너무 지쳐서 서로 사이까지 안 좋은 모양이어서 더욱

마음이 안됐다. 남편이 원래 자상한 성격은 아니었는데, 암이 생겨서까지 술을 많이 마시고, 지금도

치료중에 술을 마시곤 해서, 마눌을 더욱 심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 먹으면 철이 들어야 하는

데.....

멀리서 온 친구를 그냥 두고 가서 다른 친구들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참 미안한 생각

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 여자친구가 마음이 편치 않다 보니, 술을 마시면 잘 울고 신세타령을 잘 한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이들 그런 경우가 있어서 내가 너무 힘들었을 거라고 걱정들을 해서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난리였다. 그래서 얘기는 좀 들어주고 억지로 택시를 태워보내고 나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그래도, 오랜만에 둘이 좀더 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속이

답답할까?

9. 유년에서 깨어나다

너무 이른 시간에 귀가를 했다...1박2일이 따로 없네....

어머니는 걱정이 많으셨는지 몰래 들어갔는데도 화들짝 놀라 깨셨다.

친정 왔으니 맘 놓고 놀았지뭐....ㅎㅎ

아, 그 날 낮은 너무 힘들었다.

으아! 어찌 그리 머리가 깨지도록 아픈지, 속도 울렁거리고.....

포항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가게 될지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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