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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 북부

안개 낀 북한산

 

20여일 만에 다시 북한산을 찾았다.  아침 8시, 눈을 뜨니 비가 오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지하철역 출구를 빠져나오자, 비가 엄청 쏟아졌다. 저녁을 많이 먹어 잠시라도 걸을 요량으로, 우산을 샀다. 와, 그런데 비가 문제가 아니라 돌풍이 불어 10분 정도 걷는데 우산이 세 번이나 뒤집어졌다.5000원짜리 삼단우산이 약하기도 했겠지만, 우산을 쓰나마나 옷이 다 젖었다.

그래서, 일요일에도 비가 온다기에 산행을 가야할 지 말아야할 지 결정을 못 내리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잠이들었는데, 아침에 비가 오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부지런히 아침 준비를 해서 식구들과 먹고, 설겆이는 할 시간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부탁을 했다.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물을 끓여서 보온병에 담고 이것저것 물건을 챙겼다.

9시 35분에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다. 차가 하나도 안 밀리고, 길이 사통팔달이다.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겨우 매달려서 산으로 산으로 향하고, 우리 산악회 팀은 여유있게 출발을 했다. 사기막골에 차를 대니, 10시 45분쯤, 이제 힘겨운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북한산은 신비에 쌓인 알프스처럼 거대해 보인다. 안개가 아주 짙게 끼어 있었다.

네번 째 산행인데도, 오랜만에 오니까 초장부터 다리가 무겁다.  저 힘들면 못가요...미리 엄포를 놓았더니, 오늘은 쉬운 코스로 가시겠단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배낭이 너무큰데도 끄덕이 없으신데, 아주 작고 가벼운 배낭을 멘 내가 벌써부터 다리가 아프다고 난리다. 산은 정말 정직하다. 자주 가지 않으면 금방 표가 나니 말이다. 사기막골에서 올라가는 길은 정말 완만하다.

나뭇가지마다 봄빛이 가득하다.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치 기지개를 켜는 듯한...어제 내린 비로 쌓였던 눈은 다 녹고, 촉촉한 땅 위로 넘쳐나는 봄빛, 어제 산행은 봄빛과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 산행이었다고나 할까?

어떤 분은 하얀 눈이 다 사라진 것이 못내 서운하신 눈치다. 어제만 해도 눈이 쌓였었는데....하시며...나는 촉촉한 봄길이 좋았다. 진흙길에서는 몇 번 미끄러지기도 하여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고,바짓가랑이는 온통 흙탕물이 튀어서 형편없어졌지만...올라갈수록, 소나무들이 더욱 푸르다. 아무리 사철 푸른 소나무이지만, 봄빛에 더욱 생기가 돌아 초록빛이 더 진한 듯 하다.

산에 올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항상 변함없는 소나무가 으뜸이다.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멋드러지게 휘어진 나무둥치며, 줄기, 소나무 모양을 감상하는 것이 또한 산행의 큰 기쁨 중의 하나하는 걸 갈 때마다 새롭게 느낀다. 20여분 올라갈 때부터 벌써 힘이 들었다.  쉬고 또 쉬고...그래도 부지런히 따라 올라갔다.

오르락 내리락....해골바위 정상은 가지 않기로 했다. 힘들어하는 나를 배려하셨다. 봄이 되니 사람들이 이 코스로 많이 와서, 대장님은 기분이 상하셨다. 이 코스 많이 알려지면 안되는데....전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는데....그래도 사람들이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안내도 해 주시고....해골바위 아래에서 왼쪽으로 접어드니, 선녀탕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20분쯤,

한 시간 반쯤을 걸은 셈이다. 지난 번에 점심을 먹었던 자리의 얼음이 거의 다 녹아서 넙적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한 팀이 벌써 그 윗쪽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우리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서 다른 곳에서, 대장님 말씀으로 밥상에 가서 먹는다고 하셨다. 한 시간을 더 가야 된단다. 부지런히 걸어서 바위도 타고, 오솔길도 걷고....그 때부터 내다리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래서 힘들면 좀 쉬었다 걷기를 반복해서 드디어 밥터에 도착을 했다.

와, 정말 근사한 곳이네. 마치 식탁을 차린 듯이 바위가 놓여 있는 곳에서 점심 준비를 했다. 밥이 기름이 좌르르 흐른다. 은근히 배여나는 다시마향, 밥물이 좀 적었다고 못내 아쉬워하시는 주방장님. 그러나 밥은 너무 맛있어서 연신 밥을 떠 넣었다. 평소 집에서 먹던 양의 두 배 이상을 떠 주시길래 덜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세 숟가락이나 더 먹었다. 5인분은 되는 밥인데 대장님이 3인분은 드셨을 텐데, 밥 더 달라고 난리시다. 그렇게 밥이 맛있었다. 냄비밥 먹어 본지가 언제였던가? 정성으로 준비된 맛있는 음식, 나는 게무침이 너무 맛있어서 내가 거의 다 먹었을 것이다. 싱싱한 양상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고, 오이도 또 찍어먹고....콩나물국맛은 또 어떻고? 정말 시원했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심심하게 끓여서 국물을 마시니 속이 얼마나 편안한지! 대장님은 콩나물국에 김치 넣는 거 처음 봤다고 난리시다. 나도 집에서 콩나물국은 꼭 김치를 넣고 끓이면 얼마나 얼큰하고 시원한데.......조금 아쉬웠던 것은 김치가 너무 안 익어서 좀더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담백한 맛이 또 좋았다.


사실 취사가 금지된 곳에서 밥을 해 먹는 것은 좀 찔리기는 했다. 사람들이 많이 안 다니는 코스라고는 하지만, 불안하긴 했지만, 대신 찌꺼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왔다. 자연보호는 철저히 해야하니까....식탐을 해서 잔뜩 먹었더니, 발걸음이 더 무겁다. 대장님은 걸어가면서 계속, "배불러~~~`!!"를 연발하며 걸어가셨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쳐다보았다. 배부르고 힘들고....내 입에서는 자꾸 신음이 흘러나온다. 이거 뭔 앓는 소리여? 앞서가던 대장님이 웃으면서 놀리신다. 좀 쉬어가자구요! 또 쉬고, 또 쉬고...내려가는 길은 상장능선이란다.

클럽의 산행후기에서 보았던 바로 그 상장능선, 정말 아름답고 좋은 코스였다. 바위와 소나무의 절묘한 어우러짐, 오르락 내리락 근육을 골고루 쓰게 해주니 너무 좋았다. 상장봉에 이르러서는 바위타기를 했다. 나는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바위만 보면 공포에 떨리는지...바들바들 떨면서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미시고, 아무튼 무사히 올라섰다.

역시! 올라서길 잘 했다. 경치가 끝내준다. 이제사 안개가 다 벗겨진 인수봉은 그 미끈한 몸을 드러내고....백운대의 위용도 대단하다. 돌아오면서 군데군데마다 각도에 따라서 인수봉이 주는 느낌은 다 달랐다. 아직도 마을이나 산 아래쪽은 안개가 뿌옇다. 신비에 싸인 산, 안개 속의 북한산은 너무나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형태만 보여주고, 다른 것은 다 껴안은 모습,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작은 도리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작은 일은 덮고 지나갈 줄도 알아야 하고, 그러나 기본적은 원칙에는 충실해야하지 않을까...나 때문에 쉬운 코스를 택했다고 하시더니, 코스가 문제가 아니라, 내려온 시간이 5시 30분쯤이었다.도대체 몇 시간을 걸은 거야? 순수하게 걸은 시간만 5시간 반-6시간은될 거다. 그냥 우이동으로 넘어갔으면 많이 안 걸었을텐데, 오늘 엄청 걸은 거라고 하셨다. 낑낑거리면서 앓기는 했어도, 그래도 초보자치고는 잘 한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바위타기 처음할 때 더 떨었다고 하셨다. 아직도 무섭기는 마찬가지고..

사람은 역시 칭찬을 받아야 해. ㅎㅎㅎ 맛있는 점심에 유익한 대화....너무 행복한 산행이었고, 안개 낀 북한산, 정말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