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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 북부

해골바위를 보면서

세번 째 산행은 어제 다녀왔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는데, 원래 두번째 주가 쉬는 토요일인데, 출근을 하라더니, 안해도 된단다.

갑자기 시간이 생겼으니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일은 그대로 쌓여 있으니, 그냥 나가서 일을 하려고 했는데, 일요일날 하기로 하고, 산행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전날 모임이 있어서 늦게 귀가해서 컨디션이 어떨지 몰라서 갈까말까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7시. 가도 될 것 같았다.

일 주일에 두 번 산행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냥 집에 있으면 요즘 뒤숭숭한 마음에 일도 잡힐 것 같지 않아서,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아침준비를 했다. 콩나물국도 끓이고...그래놓고 정작 나는 먹을 시간이 없었다. 부랴부랴 배낭을 챙겨서 나섰다. 벌써 9시 10분, 지난 번처럼 가면 20분쯤은 늦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합정으로 가자고 했다. 갈아타는 것 한 번을 줄이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토요일이라 한가할 줄 알았던 길이 무척 막혔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차들이 너무 많았다. 아무튼 합정역에서 6호선을 타고, 불광에서 갈아타려고 보니 10시가 다 되었다. 그래도 10분만 늦고 구파발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러 갔다. 산에 가는 사람들도 버스는 대만원이었다. 오랜만에 만원버스를 타니 고등학교 때 생각이 저절로 났다. 그 때는 늘 만원버스를 탔었지.....

사기막골에 도착하니, 10시49분.

걷기 시작이다. 나무에 눈꽃은 거의 사라졌지만, 길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세번 째니 낫지 않냐고들 그러셨지만, 나는 괴로웠다. 여전히 눈길에, 어제 마신 술 탓에 속은 부글거리고, 아침은 못 먹었지. 버스 기다리는 동안 뭐라도 좀 먹을 걸. 초반부터 낑낑....강아지도 아니고...

해골바위쪽인가로 갔는데, 꽤 힘들었다. 말씀으로는 나 때문에 쉬운 코스로 돌렸다는데, 의상봉보다는 쉬운 코스이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힘들었다.다른 분들은 잘도 걸으신다. 펄펄 날으실 듯 성큼성큼 앞장서시고...

바위 한 곳을 오를 때부터는일행 중 한 분이 내 배낭까지 짊어지셨다. 그래도 내 몸은 천만근....그 다음에는 다른 분이 또 내 배낭을 짊어지시고.....우리가 간 봉우리가 뭐였더가...암튼 거기서 본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인수봉이 그 잘 빠진 몸매를 드러내고 백운대가 그 뒤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백운대 위에 깨알같이 올라선 사람들도 보였고, 바위로 둘러싸인 백운대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이 맛에 어려운 산행을 하는 거로구나! 시내쪽으로는 해골바위가 보였다. 바위가 뚫린 속에 눈이 내려, 섬뜩한 해골같은 바위였다. 북한산 여러 봉우리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서 있는 모습에 가슴이 탁 트였다.

커피와 간식을 먹고 나니 속도 좀 나아졌다. 다리도 덜 아픈 듯 하고.... 속이 확 뚫린 기분이 들었다. 뽀드득뽀드득 눈길을 걸으며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들, 눈 온 거 아직 못 본사람들은 정말 불쌍하다고 연신 중얼거리면서 걸었다. 조금 편안한 길은 한결 나았다. 한참 가다가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떡라면은 어찌나 맛있던지!

이젠 내려가는 길만 남은 줄 알았더니, 산을 넘어 우이동으로 가신단다. 흐아!!

자신없다니까 금방이라고...

점심 먹으면 힘이 더 날 줄 알았더니, 걸은 시간은 거짓말을 못하는지, 발걸음은 더욱 무겁고....길도 아닌 곳 같은 낙엽과 눈이 덮힌 길을 무작정 걸었다. 한 고비 힘든 산을 오르니 서울 우이동 쪽이 훤하다. 헬기장에 가서 바라본 풍경은 더욱 뚜렷했다. 탁 트인 풍경, 우뚝 선 코끼리바위도 멋있고, 오밀조밀 들어선 이 동네 저 동네....내려가는 길은 한결 낫다. 내리막길만 있으면정말 덜 힘들텐데...인생은 쉬운 길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을....

법화사에 도착해서 아이젠을 벗었다.

절 건물이 보통의 절 같지 않았지만, 바위앞에 돌부처가 절의 분위기를 잘 풍겨주었다. 조금 아래에서 약수를 마시고, 우이동으로 내려왔다. 내려온 시간은 이미 4시 10분인가 20분, 5시간 반 정도를 걸은 것이다. 4시간, 5시간, 5시간 반...걷는 시간은 자꾸 늘어났다.

또다시 파전, 도토리묵, 감자전에 먹는 막걸리맛이란!! 시원한 맛, 그러나 열은 확 오르고...

몇 번 산행을 해 보지 않고서 무엇을 말하랴마는, 그냥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산에 대한 생각, 사람에 대한 생각....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 발랄한 성격, 모두들 건강해보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미숙한 초보자를 위해 모든 봉사를 아끼시지 않는 그 마음들, 고맙기도 하고, 죄송스럽다.

산은 새로운 인연도 맺게 해주고, 산이 있어서 낯선 사람들과는 한결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하였다.

산은 어떤 사람이 오던지, 능력에 맞게 잘 안내해 주리라는 믿음이든다.

새로 생긴 연인 같은 북한산, 어디에서 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북한산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 같다.

2006.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