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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 북부

달빛 별빛 물빛에 젖다/2006 춘천 숲속의 시인학교 참관기

달빛 별빛 물빛에 젖다
―2006 춘천 위도 숲속의 시인학교

황경순
(시인)


8월 12일 오전 9시 40분, 혜화역에 도착했다. 버스 앞에 몇 분이 담소를 나누신다.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몇 분이 벌써 자리를 잡고 계신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선배님들은 대부분 일찍 차에 올라 계신다. 사람들이 속속 올라탄다. 열심히 인사를 하고 인원 점검을 한다. 어제 장 본 물건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물건을 챙기는 한편,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은 분들을 체크하고, 전화를 하고, 운영진은 분주히 움직인다.

10시 20분쯤 드디어 출발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시내에서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옆에 앉은 선배님과 뒤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한참 수다를 떨어도 제자리, 또 한참을 지나도 제자리. 오늘 예감이 영 안 좋다. 한 시간이 지나도 차는 시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차들 속에 갇혀 꼼짝을 못한다.

이번 시인학교는 화요일이 15일 광복절이라 월요일을 낀 징검다리 공휴일이기에 막바지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린 탓에 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었다. 또 올여름은 긴 장마와 폭우로 휴가를 미룬 사람이 많았던 것도 원인일 거라고 생각된다. 온몸이 뒤틀리고 화장실은 급하고, 모두 얼른 시내를 빠져나가기만을 고대했다. 드디어 잘 빠지는 길로 들어섰다. 시간은 이미 12시 30분 정도였을까? 도착 시간도 훨씬 지났는데 이제 겨우 구리시라……· 갑자기 버스가 큰길가에 멈추고 건너편 주유소에서 급한 볼일을 보라고 하셨다. 횡단보도도 아닌 길로 목숨을 걸고 우루루 건넜다. 바람을 쐬어서인지 사람들의 얼굴엔 조금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차는 좀 달리는가 싶더니 또 속도가 줄었다.

김유정문학촌에 관한 설명을 해주시기 위해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분들과 드디어 만난 곳은 가평의 어느 휴게소에서였다. 김유정문학촌 촌장이신 전상국 교수님은 두 시간 이상을 기다리다가 다음 일정 때문에 먼저 가시고 이부영 시인만 하얀 비닐 봉투 2개를 가지고 올라타셨다. 맛있는 옥수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버스가 출발하자, 따끈따끈한 옥수수 하나씩을 돌렸더니 모두 어찌나 맛있게 드시던지! 원래 맛있는 강원도 찰옥수수이지만, 점심 때가 지났으니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드디어 춘천으로 접어들어 외곽으로 빠진다. 김유정문학촌이 보이고 안내에 따라 맛있는 막국수 집으로 향했다. 큰 길을 한참 가다가 소양강댐 근처의 작은 마을 좁은 길로 한참을 들어가니 드디어 유포리 막국수 집에 도착했다. 시간은 3시. 모두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시는 대전, 충주 등 각지에서 별도로 오신 분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빽빽한 국수집은 막국수의 원조라고 하신다. 배가 고프던 차라 모두 정신없이 국수 그릇을 비웠다. 많이 달지 않고 부드러운 면발이 특징이었다.

일정이 지체되어 부지런히 출발한 버스에서 김유정문학촌을 세우게 된 배경과 주변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이부영 시인께서 해 주셨다. 금병산 자락 실레마을에 위치한 김유정 문학촌에 도착하니 안내할 분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연못과 정자가 마당 아래쪽에 있고, 전체적으로 산자락 아래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집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아까 설명 들은 대로 ㅁ자형 집이었다. 제비둥지형이라는 이름도 멋있고, 마당 가운데 있는 낮은 굴뚝이 인상적이었다. 화적떼들이 자주 출몰하여 굴뚝을 숨기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사방이 지붕이다 보니 가운데로 보이는 하늘이 인상적이었다. 김유정 선생님은 이 집 주변을 배경으로 한 주옥같은 작품들을 많이 쓰셨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명창 박록주를 사모하였지만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고향에 내려와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며 살다가, 폐결핵과 치질 등이 악화되어 경기도 광주 누님댁에서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젊은 나이에 불우한 생을 마감하여 마음이 아팠다.




김유정문학촌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동백꽃이다. 소양강처녀라는 노래에도 나오고 김유정의 작품에도 나오는 동백꽃은 바로 생강나무꽃이라는 것이다. 빨간 동백꽃이 아니라 노란 동백꽃……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여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왼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 「동백꽃」 중에서

우리는 다음 일정이 바빠서 기념관을 둘러만 보고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보기로 하고, 얼른 버스에 올랐다.
이윽고 강이 보이고, 소양강처녀의 동상이라는 것도 보이는데, 서양의 잔다르크상처럼 너무 씩씩한 전투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의견들을 나누었다. 큰 다리 중간에서 버스가 섰다. 바로 우리들의 목적지인 위도, 일명 고슴도치섬인 것이다. 춘천시 서면 신매리에 위치한 위도는 의암댐이 준공되면서 생긴 섬으로 누에고치 모양으로 생긴 섬이라고 해서 위도라고 불린다고 한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짐을 꾸려 작은 다리를 건너고 자동차들은 그냥 들어갔다.

위도는 아주 작은 섬이지만, 남이섬처럼 호젓한 기분이 들기에 충분했다. 사방으로 호수가 보이고, 그 앞으로는 갖가지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드문드문 보이는 숙소들이 장난감집들처럼 보였다. 수영장도 있고, 사륜카도 보이고, 서쪽으로는 텐트를 친 사람들이 호젓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숙소가 배정되었다. 선배님들은 3~4명씩 따로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커다란 방에 배정되었다. 앞에도 잔디, 뒤에도 잔디밭이라 큰 유리창으로 보는 풍경이 그저 그만이었다. 진행팀인 우리는 마음이 급해졌다. 원래 4시부터 북카페 예부룩 야외무대에서 시낭송을 하기로 예약을 했는데 이미 6시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짐만 풀고 바로 행사를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그 뜨거웠던 햇살도 잦아드는 북카페 마당에서 뜻깊은 제1부 시낭송이 진행되었다. 손옥자 시인의 사회로 시작되었는데, 먼저 한국시인작가협의회 이길원 회장의 개회에 이어 첫번째로 시낭송을 하게 된 나, 처음으로 공식적인 시낭송을 하게 되어 가슴이 뭉클하고 떨리기까지 했다. 정재록, 양해기 시인 등 새 등단한 시인에 이어 김선호, 이태규, 황상순, 김수목, 주경림, 박승미, 윤정구, 고정애, 고창수 시인의 시낭송이 이어졌다. 해는 점점 기울고, 무대 쪽에서 바라보이는 남쪽 호수 건너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중에 춘천 시인이 설명하셨지만, 바로 춘천 팔경 중의 하나라고 했다. 또 서쪽은 일몰이 막 진행되어 물빛이 붉게 물들어 일렁이고 마지막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에서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었다. 양해기 시인과 나는 시낭송하는 모습과 시인들의 감상 모습, 주변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느라 바빴다.





순서에 없었지만 즉석에서 마련된 시낭송 순서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열정적으로 시낭송을 하는 안영희 시인의 모습에 모두 박수를 보냈고, 이어서 춘천 시인들의 시낭송이 이어졌다. 허정, 김학철, 허문영, 권준호, 이현협 시인의 시낭송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다음은 오늘의 특별 공연 순서가 진행되었다. 바로 춘천 출신 가수 이남이 씨와 그 딸 이단비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불러 모두 감탄사를 토해냈고, 다음은 딸의 독창에 모두 손뼉을 치며 흥겨워했고, 이남이 씨의 독창인 ‘울고 싶어라’도 이어졌다. 모두들 흥겨운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다음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이신 문효치 시인의 문학특강이 이어졌다. 40년 시력에 ‘백제’에 관한 시를 고집스럽게 써오고 있는데, 시는 괴물과 같아서 버릴려도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하신다. 이형기 시인이 ‘시는 무한다면체, 시는 영원한 미지수’라고 하는 말처럼 시를 말하는 자체가 위험하고 오류에 빠지기 쉽고, 시를 쓰고 읽으면 그만이지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논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보겠다고 하시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셨다.

백제에 관한 시를 쓰게 된 배경은 어려웠던 시절 무령왕릉 유물을 보고 죽음의 문제에 많은 생각을 하면서 쓰게 되었고, 자연히 백제에 관한 역사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전통의 문제, 부당한 억눌림에 관한 동족들의 정신적 상황을 대신 말해주고 싶었고, 또한 시의 브랜드화도 자연히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일본, 중국에 있는 백제 유물도 승화시켜 보고 싶다고 하셨다. 시는 쓰는 것이지 논하는 것이 아니므로, 누구의 말, 누구의 평가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를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지면 재미가 있고, 캘 수 있는 광맥은 무궁무진해진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어떤 분야를 물고 늘어지면 좋을까? 모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듯 눈빛이 진지하게 보인다.

다음은 유경환 시인이 숲속 시인학교의 하이라이트인 무기명 시 백일장의 주제를 발표하셨다. ‘노랗게 마른 풀잎’이라는 한 가지 주제만 발표하시고 내려가셨다. 어떻게 시를 써야할지 모두 눈을 반짝이며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그 사이 해는 져서 주변은 점점 어두워졌고, 불이 꺼지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바로 노명순 시인의 시예술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무대에 설치된 하얀 막만 보이고,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양산을 든 여인과 삼각형으로 마이크를 잡고 선 두 여인, 부분 조명이 켜진 가운데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영춘 시인의 시 「백지」를 공연하는 노명순 시인과 김현지 시인, 정복선 시인이 함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시를 낭송하였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기어 나온다. 검은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바로 이영식 시인이었다. 연기처럼 스멀스멀 기어나온 어둠이 갑자기 윗옷을 벗는 바람에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어둠은 사라지고 또다시 하얀 세상, 음악이 어찌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지, 모두 시극에 압도되어 주변이 모두 고요하다. 서울과 춘천의 시인뿐만 아니라 위도에 온 사람들이 모두 몰려들었는지, 모두들 사진 찍기에 바쁘다.

드디어 시극의 막이 내리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위도 밖으로 걸어나갔다. 오후 9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강원도교육감님의 환영 만찬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었지만, 막국수였으니 다들 배가 고팠다. 저녁 메뉴는 도가니탕, 잘 우러난 도가니탕이 구수하고 맛있었지만, 빈 속에 먹는 소주 맛이 더 좋다면서 문학아카데미 간사 회장인 이영식 시인은 연거푸 몇 잔을 들이킨다. 신경쓰느라 목이 많이 탔나 보다. 술잔이 오가고, 이영춘 시인과 도교육청에서 나온 분이 인사를 하시고, 우리는 신나게 마시고 먹었다. 다들 얼추 배도 부르자 자리를 마무리하고 일어선다. 몇 명이 안 남은 순간에 문효치 시인께서 카메라 가진 사람 없냐고 하신다. 가수 이남이 씨와 사진을 찍고 싶으시다고 해서 내가 얼른 사진을 찍었다. 덩달아 몇 장을 여러 사람이 찍었다. 바로 이런 작은 이벤트가 모여서 인생이 되지 않을까?

오늘의 제2부 순서가 잔디밭 근처 물레방아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되었다. 2부 순서의 진행자는 나다. 원래 사용하기로 한 시간이 8시에서 10시까지였는데, 시작 시간이 이미 10시라, 난감했다. 회장님은 11시까지만 하기로 허가를 받아 오셨다. 1시간으로는 제대로 흥을 돋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뭐든지 닥치면 맞추어서 해야겠지? 마이크를 테스트하고, 노래방기기를 점검하고 2부 진행을 시작했다.

춘천에 왔으니 소양강 처녀로 노래를 시작했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흥겨워하셨고, 춘천의 허정 시인이 첫곡을 부르신다. 시간이 짧아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했더니 신청곡이 속속 접수된다. 다들 어찌 그리 노래를 잘하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특히 중견, 원로 시인들의 노래 솜씨에 모두 혀를 내두른다. 이길원, 문효치, 고창수 시인의 노래에 모두 반해서 할 말을 잊었다. 갑자기 이영춘 시인이 너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고 메들리를 부르자고 하여 춘천의 이현협 시인과 한 곡을 골랐더니 여러 시인들이 나와 흥을 돋워, 덕분에 나는 노래 여러 곡을 불렀다. 올해도 주경림 시인은 소고를 준비해 와서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모두 흥겨운 밤에 젖어들었다. 약속된 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신청곡을 다 못 들어주어 서운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캠프 파이어장으로 이동을 했다.

숙소 앞에 마련된 장작더미에 불을 피우고 준비된 폭죽을 떠뜨리며 모닥불잔치가 시작되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마음을 실어 불같은 시를 쓸 수 있기를 간구하고, 펑펑 터지는 폭죽처럼 마음 속의 응어리들은 모두 터뜨리며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한쪽에서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웠다. 밤은 깊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동쪽 나무 위에는 달이 떠 있다. 살 내린 보름달이 하현달을 향해 가고 있다. 달빛, 별빛, 물빛에 젖은 위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12시가 다 되었지만 자리를 옮겨 아까 파티장에서의 밤은 더욱 깊어간다. 나로서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춘천의 허정 시인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꽃, 나무, 매미, 피라미 이야기까지, 조용하신 줄만 알았던 시인의 입에서 나오는 논리 정연한 새로운 발언에 모두 넋이 빠진 듯 담소를 나누었다. 옆에서는 고창수 시인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시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끝까지 술도 안 들고 기다리신 이부영 시인은 허정 시인과 댁으로 가시고 우리가 숙소에 들어왔을 때는 3시가 다 되었나 보다.

아침 7시, 잠이 깼다. 주변을 보니 모두 어찌나 부지런한지 대부분 산책을 나가고, 방은 텅 비었다. 방 한가운데서 잠을 잔 우리 셋만 늦잠이다. 도란도란 이야기 거는 친구가 있어서 밤을 꼬박 새웠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도 잠을 설쳤기 때문에 자꾸 하품만 나왔다. 그래도 새벽 공기가 너무 좋기 때문에 얼른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섬의 아침은 역시 촉촉하다. 백일장 주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텐트에서 아침을 짓는 사람들도 보이고, 여기저기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평화롭다.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는데, 반지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가방을 다 뒤졌지만 나오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걱정을 했다. 하수구 구멍으로 빠졌나 해서 난리를 폈지만 나오질 않아서 시를 쓸 마음도 나지 않고, 마음만 뒤숭숭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작은 가방을 다시 뒤졌더니 아랫부분에 꼭 박혀 있는 반지를 찾아서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아침부터 감자탕으로 속을 풀고 포식을 했다. 술 안 마신 분들은 부담스러웠을 테지만, 술 마신 분들에겐 아마 좋았을 것이다. 10시까지 시간이 조금 있으니 시를 지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대충 줄거리는 잡았으나 마무리가 마음에 안 든다. 몇 번을 고민하다가 완성을 했다. 나름대로는 잘 썼다고 여기며 백일장 원고 모음 상자에 집어 넣었다.

제3부 특강은 ‘하늘엔 별, 땅에는 꽃, 우리 가슴엔 시 2006년 숲 속의 시인학교’ 라는 멋진 플래카드 아래 안차애 시인의 사회로 야외 세미나장에서 진행되었다. 걱정을 하면서 마이크를 잡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잘 진행하였다. 춘천 시인을 대표해서 이영춘 시인이 인사를 하셨다. 매우 뜻깊은 자리여서 감동스러웠다고 하셨다.
이어 성찬경 선생님의 특강이 시작되었다.

‘정직한 사람은 모두 예언자다’라고 한 블레이크의 말을 인용하여 강의를 시작하셨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질을 꿰뚫고 보면 예언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자기의 희망사항, 전망이라고 본다. 영시를 소개하면서 한 행 한 행 해석을 하고, 좋은 시란 것은 시가 좋으니까 영원히 남는다고 하신다. 바로 그렇게 영원히 남는 시를 쓰는 것이 모든 시인의 영원한 소원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시 100년사를 돌아보면 물 흐르듯이 미려하기만 한 시의 역사가 이어졌는데 이제는 이것을 벗어나서 ‘시에 의미의 핵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의미의 밀도를 높인 시를 쓰자’고 주장하신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좋은 시를 다짐하는 눈빛을 반짝인다.

다음은 동국대 불교철학과 교수인 고영섭 시인의 특강이 계속되었다. 선시와 교시에 대한 일반 시인의 시는 선시풍, 교시풍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고 하신다. 선이란 말이 없는 세계이므로, 우리가 시를 쓰는 것은 이런 자연의 언어를 사용하여 최소한의 가공장치를 할 때 자연스러운 시가 나온다고 본다. 의미의 핵을 갖추면서 이미지를 갖게 분절 너머 의미의 형상화시키는 것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요건이라고 하신다.

다음은 강원대 최현섭 총장이 방문하셔서 환영사를 해 주셨다. 교육은 마음을 바로잡게 하는 것이라면, 문학의 힘, 시의 힘이 교육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약을 만드는 것이 시인이라고 하면서 문학아카데미에서 춘천을 선택하여 온 것을 환영하고, 소외된 춘천, 강원대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홍보를 부탁하셨다. 오늘 행사, 춘천의 풍경, 추억이 좋은 시로 남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이어서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백일장 심사결과 발표이다. 이영춘 시인은 심사평을 하기 전에 어떤 미국 유학생의 예를 들면서 소월의 「진달래꽃」을 다같이 낭송하게 하여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이번 백일장에는 강, 방천리, 물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이 많았고 수준이 지난해에 비해 아주 높았다고 하셨다. 시는 발견의 눈, 혁명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며, 춘천의 곳곳을 담고 가서 좋은 시로 승화시켜 달라고 당부하셨다.




드디어 박제천 선생님께서 심사결과를 발표하셨다. 참가작품의 2/3 정도가 모두 입상감이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며 뿌듯하다고 하셨다. 차하에 김현지 시인, 차상에 정재록 시인, 장원에 정복선 시인이 영광을 차지하였다. 정복선 시인은 해마다 차상이나 차하를 차지한 백일장 전문 킬러인데 올해 처음으로 장원을 하여 그 소감이 남다르다며 기뻐한다. 정복선 시인이 장원 작품 「섬을 떠나며」를 낭송하는데 “정말 장원답구나!”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짧은 시간에 어쩌면 그리 자연스럽고 의미 깊은 시를 술술 지어내는지 부러울 뿐이었다.

다음은 특별상 순서, 춘천의 김학철 시인이 시상을 해주셨다. 멀리 충주에서 기타를 가지고 왔는데 2부 시간이 짧아서 실력 발휘를 못한 김생수 시인은 인기상을, 손수 운전해서 대전팀을 몰고 온 강정애 시인은 배꼽상을, 백우선 시인은 귀한 손님상을, 사진 촬영에 애쓴 양해기 시인은 노력상을 받았다.

점심은 역시 막국수 집이었지만, 메뉴가 다양했다. 감자전과 도토리묵, 보쌈까지 나와서 동동주와 마시니 그저 그만이었다. 강원대 총장께서 마련한 점심을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매우 유명한 집이라고 했다. 주변에는 무궁화, 글라디올러스 등 활짝 핀 여름꽃들, 초록빛으로 물결치는 논, 밖에서 그런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커피 맛도 일품이었다. 지방에서 따로 오신 분들과는 그곳에서 작별을 했다.

돌아오는 길은 사통팔달이다. 3시간쯤 걸려서 일찌감치 도착했다. 서울의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고, 어제 이맘때 보았던 위도의 석양에 물든 물빛과 시원한 바람, 그 속에 울려 퍼지던 시구들이 그리워졌다. 한밤의 별빛, 한 귀퉁이 이지러진 달빛도 머리에 되새기면서,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8월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펼쳐진 이번 강원도 춘천시 서면 신매리 고슴도치섬 위도에서 펼쳐진 숲속의 2006년 숲속의 시인학교에는 성찬경, 유경환, 고창수, 문효치, 이길원, 박제천, 배인환, 이상문,이원규, 유재엽, 백우선, 박승미, 노혜봉, 정복선, 안영희, 한이나, 노명순, 김현지, 송정란, 이보숙, 배경숙, 이섬, 주경림, 윤정구, 이태규, 황상순, 고영섭, 김수목, 김생수, 이영식, 진태숙, 손옥자, 박등, 김선호, 권현수, 고영, 김정임, 정진영, 김정미, 강정애, 양해기, 정재록, 황경순, 김현주, 박순덕 외 김명환 씨 등 일반 참가자 다수가 서울 등 각지에서 참가하였다. 춘천에서는 이영춘, 김학철, 허문영, 이무상, 허정, 이부영, 박영희, 권준호, 이현협 등의 시인이 참석하였고, 가수 이남이, 이단비 부녀와 현지의 일반 독자들, 피서객 등이 다수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문학과 창작 2006 가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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