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경기 북부

따뜻한 방석바위, 북한산 사기막골에서

3주만에 산에 갈 생각을 하니,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햇살이 따사롭다. 토요일 오후에는 그렇게 춥더니, 성산대교를 건너면서 보이는 북한산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적당한 안개에 가려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사기막골.

비교적 길이 평탄해서 초보자들에게 알맞은 코스이다. 군데군데 언덕길에는 관리소측에서 화강암을 박아 놓았다. 비가 많이 오거나 했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아서 보기가 좋아 보였다. 삐죽삐죽한 돌이 아니라 동글등글한 돌, 반짝반짝 빛이 나는 하얀 돌을 박아놓아서 부담스럽지 않고 걷기가 좋았다. 원효봉 가는 돌길은 얼마나 가파른지 아시는분은 아실 거다. 돌계단 오르는 건 정말 힘들다. 그러나, 돌길보다는 역시 그냥 흙길이 좋다. 푹신푹신한 흙을 밟으면서 걸으면 땅의 기운이 더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래길도 좋다. 비가 와도 질척거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쓸려내려가버리면 돌이 남아서 험해지는 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그런 것을 생각해서 언덕길에 돌을 박아 놓은 것은 무척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여분 오르니 해골바위 아래이다.

가파를 바위를 타보기로 한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바위 위를 오르니, 세상이 모두 발아래다.

오랜만에 찾은 해골바위.

바로 옆에서 보니 그저 바위에 골이 패인 정도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사물의 진가가 때론 가려지

기도 하는 것이다. 또다시 한 구비 오르니, 이젠 해골바위가 발 아래 보이면서 해골의 형상이 뚜렷하다. 바위 아래로 바라보이는 도시 풍경, 소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이 모두 내 것 같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숨은벽 쪽을 향한다. 다가갈수록 새롭게 보이는 인수봉과 백운대의 모습은 계절마다 또다른모습이다. 이쪽에서 내가 본 인수봉이 가장 멋있어 보인 것은 바로 겨울이었던 것 같다. 소나무들은 여전히 푸르르고,백운대 북쪽 벽의 얼음들이 서슬이 퍼래서 아름답던 모습들이 가장 백운대답게 보였던 것 같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리라. 또한 눈 덮힌 그 모습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깡마른 산이 비로소 세상을 안을 듯이 포근해보이는 눈 덮인 산 말이다.



숨은벽을 돌아 비둘기봉(?)으로 올라갔다. 전에 와봤던 것도 같고....아마 반대쪽으로 돌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봉우리와봉우리를 이은 성벽의 모습은 절묘하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아마 예전에는 감시의 대상이었을까? 아마 침략군이 우리처럼 힘겹게 그 골짜기를 올라오면, 그 자리에서 일격에 잡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그런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가끔이상한 쪽으로 발휘되는 나의 상상력에 나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앞뒤의 풍경을 잠시 동안만 감상하고는 반대쪽으로 돌아들고, 또 한 차례 바위를 돌아가니 널찍한 바위가 조금 경사지

게 버티고 있다.

아, 거기가 바로 명당자리였다.

널찍한 바위가 어찌나 따뜻한지! 뒤로는 바위가 벽을 만들어 바람을 막아주고햇살이 따뜻하게 내리 쪼여 너무 따뜻했다. 바위는 따끈따끈하게 데워져서, 아침에 사기막골 입구에서추워서 의자에 앉지 못하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점심 때앉았던 작은 바위들도 너무 차가워서 방석 없이는 앉을 수가 없었는데.....그리고 돌들을 쌓아놓은 벽 위에 앉았더니,너무따뜻했다.따뜻한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음은 평화롭고 안식처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방석같은 바위,그 바위와 주변 풍경에 반해서 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산에 다니다 보면, 자리의 중요성을 정말 실감을 하곤 한다.

한 겨울에도 거기처럼 아늑한 자리가 있는가 하면, 한여름에도 너무 서늘한 곳이 있다. 바람이 무서울 정도로 부는 곳도 있고, 특히 겨울에 그런 것을 많이 느끼곤 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풍수지리란 것을 믿어오신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추운 곳에 오래 있다 보면 저절로 병이 들 것 같으니까.....

내려오다 성벽 한 쪽을 돌아드니, 이젠 그저 하산길이다. 낙엽이 어찌나 골골이 쌓였는지 걸음이 더뎌졌다. 이렇게 가다가는 하산하는데 두 시간은 더 걸릴 듯 하다. 사기막골의 단풍을 늘 기대했었는데, 그 아름다운 모습이 다 사라져서 무척 안타까웠다. 가뭄 탓으로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없었고, 그나마 바람에 다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단풍도 들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진 나무들, 떨어지지도 못하고 나무에 힘겹게 달린 모습이 속이 상했다. 산행하신 분들의 사진으로만 만족해야한다. 그러나, 골골이 쌓인 낙엽들이 가을임을 실감나게 해준다. 낙엽을 밟으며 감회에 젖기도 하고, 속이 보이지 않아 발도 헛디디고 미끄러지면서..... 낙엽비를 만들어 뿌리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산행의 기쁨에 젖기도 했다.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계곡에 물이 고인 것이 보였다.

며칠 전 한 차례 내린 비로 쌓인 물인지.....맑은 물에 낙엽들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욕조에 장미꽃잎을 동동 띄운 것처럼....

그 물에 반신욕을 하면 낙엽물이 몸에 곱게 들 것 같았다. 빨간 단풍잎 향기, 노란 낙엽 향기까지 몸에 배여...

역시 물이 있으니 가을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가을비에 낙엽빛이 고와지듯이......

족욕을 하고 가자면서 농담도 하면서, 가을분위기에 잠시 젖어 들었다.

사기막골 입구에 내려서니, 동네 어귀에서 정말 빛깔 고운 단풍나무를 보았다.

산에 있으면 주변과 얼마나 어우러졌을까....

안타까워하면서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국내여행 > 경기 북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탄강 래프팅  (8) 2007.07.18
산정호수의 들꽃향기  (14) 2007.05.27
달빛 별빛 물빛에 젖다/2006 춘천 숲속의 시인학교 참관기  (2) 2006.09.02
안개 낀 북한산  (3) 2006.07.31
해골바위를 보면서  (0) 200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