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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설날에 친정을 다?

결혼한지 올해 만 25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정식으로 설날에 친정부모님께는 세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일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생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주말에 맞아 떨어지면 가기도 했지만,

직장에 다니는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또 어머니생신은 정월 초엿새, 2월에 학년말 준비할 때이거나, 새학년 준비할 때라 시간 맞추기

쉽지 않았다. 이번 설처럼 겨울방학이나 봄방학에 걸리면 좋은데, 항상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차례상 준비며, 친척들 맞다보니,명절의 친정나들이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이들 어렸을 적, 결혼초창기에는 신정을 쇠기도 했고, 구정은 겨우 하루나 이틀 쉰 적도 있었으니

아예 갈 엄두를 못 냈고, 10여 년전부터는 쉬는 날이 많아졌으나, 안 가 버릇을 한 아내나 며느리는

친정을 가고 싶지 않은 줄 아시는지, 별로 위로의 말도 안해주는 시댁 식구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설날 점심 때만 되면 시누이가 왜 안 오냐고 성화를 부리시면서, 전화를 먼저 하시곤 하시는 시부모

님,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빈말이라도 친정에 못 가서 어쩌냐고 말 한 마디 안 하시는 게 무척 서운

한 마음도 들고 서글프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해서 한두번 다녀왔으나, 바로

다음 날 출근하려니 몇날 며칠 너무 힘들어서 또 주춤하게도 되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친정은 안 가더라도, 시누이와 친척들이 오면 자기들끼리 챙겨 드시라고 하고, 자

유로 쪽으로 드라이브를 가면서 마음을 달랜 적도 있었다. 명절 전에도 차례준비하느라 일더미, 명

절 후에도 뒤치닥거리 다 하다보면 온몸이 남아나질 않았으니...작은 댁에는 또 작은어머님이 안 계

셔서 작은댁 제사까지 우리집에서 다 지낸 적도 있었다. 우리 남편과 동갑이지만 형인 사촌아주버님

이 결혼을 늦게 해서 우리 집에서 그 집의 삼남매가 며칠을 거의 함께 지내다시피 한 것이었다. 사촌

들이 다 결혼을 하자 식구가 단촐해져서 좀 편안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몇 년 전부터는 20년 동안 지내던 명절 차례도 지내지 않게 되었다. 이북에 두고 월남하신 아버님

은 맏아들이어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듯한 느낌이 드셨던 해부터 명절 차례를 모셔왔다.

그런데, 몇년 전 금강산에서 이북의 남동생 두 분을 상봉하시고 나서는 동생분들이 이주한 곳에서

산소도 돌보며 차례를 모셔왔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20여년 동안 양쪽에서 차례를 모신 것이다. 그

래서 그 쪽에 산소가 있으니 거기서만 모시기로 하고, 우리는 차례를 모시지 않는다. 나로서는 일거

리가 무척 줄어서 명절이 훨씬 한갓지다. 여기에 작은아버님 한 분만 계시기에 식구도 단촐하고, 오

셔서드실 것만 만들면 되니 보너스를 받은 셈이다. 차례상 준비는 모두 내차지였는데...그래서 명절

이 훨씬 여유로워졌는데도, 막상 명절이 되면 가질 못했다.

방학을 하면 일년에 두차례 꼭 아이들 데리고 친정을 가곤 하지만, 다른 집 자식들은 다 다녀가는데,

맏딸은 명절에 못 다녀가는 것이 안타까우셨을테지만 시집에나 잘 하라고 늘 안 그런 척 하셨다. 그

러나, 다른 날 백곱절 잘 해도 꼭 필요한 날 하루가 더 중요한 가 보다.아들 둘은 꼭 처갓집에 보내시

곤 혼자 계실 때가 계신다. 아버지도 안 계신데, 혼자 계시면무척 적적하셨을 것이다. 여동생은 가까이

사니 명절에는 꼭 들르지만, 걔도 맏며느리인지라, 멀리 사는 시누이들과도 만나보려면 때로는 설날

바로는 못 갈 일도 생기고 보니, 공백이 생길 때가 있다.

어머니도 연세가 들고 몸이 여기저기 편찮으시고 보니, 서운함이 크신지 이제는 사위에게 싫은 소

리를 한 번 하셨다. 전화도 자주 안 하고, 자주 오지 않는다고...올해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먼저

가자고 운을 띄운 남편, 마침 봄방학 중이라 오늘까지는 시간을 낼 수 있어 설날 오전에 내려갔다가

오늘 아침 일찍 올라왔다.

아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하루 밖에 쉬지 않아 부부만 다녀올 수 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좋아하

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더 아팠다. 금요일이 또 생신이라 그 날은 중요한 행사가 있어 내려 갈 수

가 없어서 세배를 하는 것으로 다 축하를 해 드리고 왔다. 남편과 오면서 내가 한 이야기는 우리 딸

들을 멀리 시집 보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가까이 살아야 자주 보고 서로를 챙길 수 있을 텐데, 서로

생각만큼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니, 마음만 안타까우니....예전에는 몸이 안 가도, 용돈이라도 넉

넉히 부치거나 하면 좀 위로가 되었지만, 요즘은 돈이 그렇게 아쉽지 않으니, 한 번이라도 얼굴을

뵙는 게 가장 좋은 일인 것 같기 때문이다.

기침과 가래 때문에 걱정이 되어 친정에 내려 가서도 음식은 정말 조심해서 먹고, 약도 잘 챙겨 먹

었다. 몸이 안 좋아서 최소한의 에너지를 내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려고 애를 썼고, 남편이 운전

을 편안하게 해 주어서 친정을 가면서도 휴식을 잘 취해서 몸도 많이 편안해졌다. 친정어머니는

무척 걱정이 많으시지만, 직업병인 걸 뭐.....

올해는 차가 막히지 않아서 무척 좋았다. 명절 뒤로 이렇게 여유롭게 지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늘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또 한 가지 느낀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챙길 것은 미리미리 챙기면

서 사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다. 특히 젊은부부들일 수록, 양쪽을 서로 함께 챙기는 습관을 들여

야 할 것 같다.

남편의 형제는 삼남매인데, 큰아들이 호주에 살고 있으니 남이나 다름 없고, 시누이 하나만 있는데,

올해는 남편이 다리를 삐어서 설날 못 왔다고 한다. 남편이 누워 있으니, 그 집 식구들도 시누이와
조카만 잠시 다녀가고, 아들은 군대 가서 시댁 역시 쓸쓸했나보다. 작은댁에서는 다들 다녀가시긴

했지만, 해 놓고 내려간 음식이 별로 줄지를 않았다. 앞으로는 어느 집이나 대체로 자녀들이 많지

않으니, 이런 문제가더욱 심각해질 것 같다. 슬기롭게 잘 대처해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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