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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베트남 하노이

하노이 4, 베트남의 상징 호치민 유적지


호치민의 혼을 찾아서

아침 5시에 기상을 해서 아침 식사를 하고 하노이로 귀환하기 위해 7시쯤 호텔을 출발했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우선 집들이 거의 도로변에 죽 늘어서 있다. 개방을 하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토가 있지만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가로 4미터를 기본 필지로 해서 집을 지을 수 있게 땅을 분양했다고 한다. 세로로 길쭉한 형태의 집이 나올 수 있어서 집의 구조는 거의 비슷하고, 자신의 취향이나 능력에 따라 층수는 선택해서 짓는단다. 한꺼번에 지을 수도 있고, 살다가 형편이 되면 증축을 하기도 한다. 나는 각 나라의 집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자세히 관찰해보았더니, 2층집이 대부분이었고, 더러 3,4층 집도 보였다. 역시 가이드의 말대로 앞에서 보면 같은 너비의 집들이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어서 참 신기했다. 도로는 아주 엉망이다.




하노이↔하롱베이간 도로는 가장 잘 닦여진 주요 도로라고 하는데, 노면도 좋지 않고 사람들의 운전 습관은 더욱 섬뜩했다. 특히나 오토바이들의 주행은 정말 아슬아슬했다. 주교통수단이 오토바이가 대부분이어서 고속도로에도 다닐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을 하고 있어서, 대형버스, 트럭들과 뒤엉켜 아주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대부분 사고가 나면 사망사고가 많다고 하니 아찔하였다. 어느 지점에서는 결국 교통사고가 나서 버스가 지체되기도 했다. 버스로 3시간 정도 이동을 해서 하노이에 도착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었는데 여기서는 가장 큰 회사중의 하나인 ABC기업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했다.

휴게소는 주차공간이 아주 넓었고, 휴게소 안은 면세점처럼 운영되어 고급품목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노니나 히노끼는 물론 명품 가방이나 시계부터 베트남의 특산물까지 골고루 판매되고 있었으나 사고 싶은 것은 별로 없었다. 휴식도 할 겸 매장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노이에 도착했으나 호치민 유적지는 관람시간이 정해져 있다면서 먼저 라텍스 매장을 들렀다. 이 곳 역시 쉬었던 휴게소를 운영하던 ABC(아베쎄)기업에서 운영한다고 했다.

시골이나 도시나 집들의 모습은 조금 달랐지만 그 면적은 그대로 지켜지는 듯, 매장 옆의 가정집들이 눈길을 끌었다. 공장도 겸하고 있는지 바깥의 주차장이나 공간도 매우 넓었고 겨울인데도 푸른 잎에 싱싱한 열매가 달린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서 하노이의 겨울 기온을 알려 주는 듯 했다. 라텍스 좋은 것이야 대부분 잘 알고 있지만 간단한 설명을 듣고 체험을 해보면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PHO24'라는 쌀국수 전문점이었는데 하노이에서는 제일 유명한 집이라고 했다. 이층에서 먹었는데 유리가 설치되어 아래의 주방에서 조리하는 과정을 다 볼 수 있어서 보기 좋았다. 국수 면발이 넓적한 것이 특이했고, 특이한 야채와 유부 튀긴 것도 하나 나왔다. 국물이 아주 담백하고 시원했다. 최근에 한국에도 프랜차이즈로 이 브랜드가 진출을 했다고 하니, 나중에 먹고 싶을 때 가고 싶다.






국수집 옆의 가게앞에서 이상한 풍경이 보였다. 한 여인이 뭔가를 태우고 있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새해이기 때문에 액을 쫓는 풍습으로 가짜 돈을 태운다고 했다. 이제 하노이의 주 관광지인 호치민 유적지로 가기 위해 이동을 하는데 건물들을 살펴보니 시골에서 보던 풍경대로 도시에서도 4미터의 원칙은 지켜지고 있었다. 오토바이들의 천국도 곳곳에 보였고, 대우에서 지은 호텔도 보여서 흐뭇했다.

버스에서도 넓게 보이던 바딘광장에 도착했다. 하노이의 중심인 바딘광장은 베트남의 독립이 선언 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지금 국회의사당과 공산당 본부 건물 등 정부 행정 건물이 보여 있는 곳이다. 뿐만아니라 호치민의 영묘와 호치민의 생가와 박물관 등이 있다. 짙은 대리석의 건물에는 베트남의 영웅, 위대한 지도자인 호치민의 방부처리되어 있다. 호치민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아침 7시~11시인데, 억지로 시간을 맞추면 볼 수 있지만, 우리 정서에 맞이 않아서 일정에 넣지 않았다고 했다. 생전 호치민은 자신을 화장하여 베트남의 북부, 중부, 남부에 각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기며 우상화하는 것을 걱정하였는데,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방부처리가 된 인물로는 전 세계 몇 명이 안되는데,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등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많았고, 붉은 선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었다. 호치민 영묘 맞은 편의 아이보리색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호치민’은 빛을 가져 온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단다. 2년간 6개 국어를 통달했고 독신주의자이며 70가지의 가명을 가졌다고 한다. 죽은 후, 동상이나 무덤을 만들지 말고 나무 한그루만 심어달라고 하였단다.



뒤쪽으로 돌아가면 호치민의 관저인 주석궁이 나오는데, 호치민은 실제로 집무는 이 곳에서 보지 않고, 근처의 허름한 곳에서 집무를 보았다고 한다. 이 건물은 아주 아름다운데 들어가지는 못하고 잔디밭 너머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주변은 아름다운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바로 실제 거주하면서 집무를 보았던 곳. 건물들이 소박하고 생전에 생활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1식 3찬에 아주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외국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승용차들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호치민이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주변의 호수와 어우러진 건물이 아름다웠고, 호수에 비친 모습이 아주 낭만적이었지만, 호치민은 평생 베트남 국민들의 민생을 위해 살았다고 한다. 죽은 후에는 안경과 필기도구 밖에 유물이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검소했는지 알 수 있다. 호치민의 노력으로 베트남의 오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그 원하던 통일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여 안타깝다. 호수 건너편에는 전쟁 때 사용했던 지하 벙커도 보존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바로 일주사(One Pillar Pagoda). 하노이를 상징하는 고찰로, 기둥 1개 위에 불당을 얹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1049년에 지은 일주사는 연못 한가운데 있었지만 계단으로 땅과 이어져 있다. 가파른 사다리를 올라야 내부를 볼 수 있다. 태종이 연꽃 위에서 아이를 안은 관음보살을 보았다고 해 연꽃 모양을 본떠 일주사를 만들었다고 하고, 조개 모양의 기와를 사용했다. 이 사찰에 참배하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여 많이 찾는다고 한다. 다른 불교 사원들처럼 주변에 참배에 쓸 과일과 초, 꽃 등을 팔고 있는 가게가 있었고, 연못 한 켠에는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자식을 바라는 염원은 있고, 기원하는 방법도 다양하지만 인간의 나약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노이 공항에서 오후 6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하므로 3시 반쯤 공항으로 향했다. 씨엠립 공항과는 다르게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은 역시 수도에 있는 공항답게 컸지만, 인천공항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대단한지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 나라의 국력도 역시 실감이 났다. 가이드는 우리들에게 수속의 일부를 밟아주고 떠났다. 우리는 검색대를 통과하고 1시간 여 동안 아이쇼핑을 했다. 베트남 커피와 민속인형을 샀다. 다른 건 다 조잡하고, 별로 살만한 것이 없었지만 일명 ‘베트남 모자’라 불리는 ‘농’을 써보기도 하고, 이층에서 대기중인 비행기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탑승을 하고, 비행기는 이륙했다.

“하노이여, 하롱베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