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모시고 아파트에 살다 보면 애로사항이 많다.
바깥 출입을 잘 하기 싫어하시는 어머님과는 반대로, 시아버님은 늘 가만히 있질
못 하신다. 그래서 수시로 현관문을 열어 놓고 들락날락 하시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잡상인들이 어느 새 현관까지 와 있고, 한밤중에도 문이 열려 있는 경우도
가끔 있어서, 기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번호키나 카드키로 바꾸자는 의견이 몇 년 전부터 있었지만, 시어머니의
시력도 안 좋고, 기억력도 안 좋으시기때문에 그냥 살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딸이 혼자 있는데 화장실에 샤워하다 나오던 딸이 세탁소
아저씨와 맞딱뜨린 것이다. 세탁소 아저씨가 집안까지 불쑥 들어서는 바람에 우
리 큰 딸이 깜짝 놀라서 나에게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 왜 키 안 바꾸느냐고! 집
안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슬그머니 나가시면서 문을 열어놓고 나간 틈에, 그 아
저씨가 들어선 것이다.
작은 딸이 열쇄를 잃어버려 요즘 늦게 들어와서 문 열어 달라는 일도 잦아서 나도
짜증이 나 있던 터라, 다음 날 당장 가서 번호키를 주문하고 왔다. 시어머님이 제
일 자신 있는 생신으로 번호를 맞추어 놓고는 있으나, 아직도 그 번호로는 잘 못
여신다. 우리가 있을 때 자꾸 연습을 시켜드리지만, 버튼을 엉뚱하게 누르시곤 한
다. 다행히 칩으로 그냥 대기만 하는 것을 두 분께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어머님
도 번호키도 자꾸 연습하겠노라 하시지만....
암튼 다른 식구들은 덕분에 편안해졌다. 나가면 문이 자동으로 잠기니까....주로
잘 드나시는 분은 아버님이시니, 아버님이야 연세가 83세셔도 아직 정정하시고,
기억력도 아주 좋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키꾸러미도 가벼워져서 다행이다.
울 어머님은 집안고수파. 올해 79세시다.
그저 집안에 계시기만 좋아하신다. 그래서 운동부족으로 당뇨, 혈압 등 여러 가지
어눌한 몸놀림이셔서 조금만 움직이면 힘들어 하신다. 낮에 동네 좀 돌아다니시
라고 온 식구가 난리를 쳐도 안되고, 식사 시간 외에는 거의 누워서 티비 보시는
게 일이시다. 얼마 전에는 걷다가 넘어지셔서, 요즘은 동네 도는 것도 힘들어 하
시는 지경이다. 병원에 다녀 오신 며칠 동안은 동네 한 바퀴라도 억지로 도시는데
식구들이 채근을 하지 않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그냥 집에 계시고 만다.
우리 집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시아버님은 어머님과는 정반대, 공사다망하시다.
성격이 활달하셔서, 아파트 노인정에서도 일이 많으시고, 친구분들, 교회분들까지
평일에도 가급적이면 낮에는 밖으로 나다니신다. 어머님과 아침 청소만 마치고는
전국 안 다니시는 곳이 없으시다. 그러니 아주 건강하신 편이시다. 그런데 재작년
부터 관절이 좀 안 좋아지셔서 다리가 가끔 불편하시다고 하신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산행도 가끔 하신다. 아버님이 건강하시니 얼마나 다행이신가?
어른들과 살면 불편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말에 집에 있어도 편안한 옷을 못 입는다. 더운 여름에도 소매없는 티셔츠로
가볍게 지낼 수 없는 것이 가장 불편하다. 우리 집에서 제일 불편한 사람은 나와
시아버님이시다. 어머니와 남편은 그래도 편히 입고 생활하시니...
또한 안방에서 편히 입고 있다가는 물을 먹으러 나가도 옷을 걸쳐야 한다.
또한 밤늦게 티비를 보려고 하면 눈치가 보인다. 요즘은 무시하고 그냥 봐 버리
지만, 전에는 정말 신경이 많이 쓰이곤 했다. 나는 안방까지 티비를 들여놓고 싶
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 불편하면 티비를 들여놓자고 말하는 남편이지만, 나는
반대이다. 두 분은 방에서 따로 보시니까 서로 같이 볼 때는 괜찮은데, 우리 부부
와 아이들은 밤늦게 볼 경우가 많으니까 불편할 때가 많다. 두 분은 초저녁잠이
많으신데 가끔 방해를 받으시는 듯 하다. 그러면 또 아버님은 현관을 들락거리시
곤 하신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세대차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대학 다니는 아이들이 공사다망하지만, 조금만 늦으면 안절부절 못 하신다.
애들이 안 들어오면 일부러 더 들락날락거리신다. 전화도 없었냐고 역정을
내시곤 한다. 남편과 나에게도 마찬가지시다. 아침에 내가 늦는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저녁 때 다시 전화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머님이 잊어버리시
기 때문이긴 하지만....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해야할 때는 짜증이 나지 않
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의 어쩔수 없는 걱정이시겠지만, 아이들은
제발 쓸데없는 걱정 좀 하시지 말라고 사정을 한다.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은 끔찍하게 하는데도 말이다.
이해를 하면서도 고등학교 다닐 때는 아이들이 속이 많이 상해했었다. 그런
모든 것들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들이니, 요즘은 서로 이해하
려고 노력하지만, 완전히 해소될 수는 없나 보다.
정말 직장이나 아이들 학교가 아니면, 정원이 있는 넓은 집, 조용한 데서 편히 지
내고 싶기도 하다. 도시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자신이 없긴 하지만....울 남편은 전
원주택에서 지내고 싶어한다. 한 동안 땅을 물색하고 다니곤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곳에서 살 자신이 아직은 없다. 가끔 가는 것은 좋지만, 직장다니면서 집
관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호숫가의 이런 집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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