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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배흘림 등잔 / 손옥자

배흘림 등잔

손옥자

한때는 빛이었을 배흘림 모양의 등잔

오늘은 알뜰시장 한 귀퉁이에 헐값으로

몸을 내어 놓았다

그 옛날 다 태우지 못한 불이 아직 몸속에 끓고 있는데

지나가는 누구라도 좋다

몸의 유연한 선과 그윽한 백자빛에 혹한 자

아니면 남은 정열을 읽어내는 사람이라면

값이 문제랴

등잔은 목을 길게 뽑고 사람을 부른다

따가운 시선이 몸을 핥고 지나간다

손거울 머리핀 짝없는 찻잔까지 다 팔리고 덜렁

혼자남았다

-심지는 필요없어 불 켤 일 없으니까-

누가 목줄기를 잡아 뜯는다

어둠속에 버려진 자존심이 불을 켜고 잃어선다

파란 불곷이 바늘끝처럼 날카롭다

등잔은 원추모양의 뚜껑을 어둠속으로 쑤욱 밀어올린다

모가지

꼿꼿하게 세우고

시집 <배흘림 등잔> 2004년 문학아카데미


이미지 출처

http://phrd.empas.com/r/im_pa/u=photo.empas.com/empasncd76/empasncd76_2/photo_incview2.tsp?psn=1789&pre=photo_view2.html?psn=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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