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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서유럽(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영국)

[유럽기행 2] 제2일 로마제국과 바티칸시국을 찾아서

1999년 12월 25일

 

[유럽기행 2] 제 2 일 로마제국과 바티칸시국을 찾아서

 

"바스락 바스락……"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눈이 뜨였다. 5시 40분, 룸메이트인 큰언니가 버얼써 잠이 깨셔서 내가 깰까봐 뒤척이시는 소리였다. 시차 적응이 어려운 일임엔 틀림없나 보다. 한국 시간은 오후 1시 40분이니……

 

 

6시. 드디어 모닝콜이 울리고 부랴부랴 아침 활동을 개시했다. 모처럼 식구들 걱정 안 하고 화장하고 세수만 하니 시간이 오히려 남았다. 7시에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발걸음도 가볍게 콧노래도 부르며 담소를 나누는 우리들. 여기 호텔은 0층이 바로 로비이다. 우리의 2층은 1층이고, 우린 205호실서 묵었으니 우리 식으론 3층에 잔 것이다. 지하는 -1층, 유럽은 다 그렇다고 한다. 식사는 딱딱한 빵 하나와 카스텔라 하나, 우유 그리고 커피나 오렌지 주스가 전부였다.

'매일 이렇게 먹는다니 어떻게 살지?'

 

드디어 시내관광이 시작되었다.

시내를 돌아보면서 그 고색 창연함에 저절로 감탄사가 우러나왔다.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유적지처럼 보이고, 어떤 건물이라도 정성이 깃들여 있었다.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첫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와! 저게 바로 콜로세움? 저것을 정말 그 옛날에 지었단 말인가?"

거대한 원형으로 우뚝 솟아 커다란 문 뒤에 위용을 자랑하는 콜로세움!

상큼한 소나무가 길 양쪽을 호위하는 큰길을 지나 우린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성악을 공부한다는 후리후리한 남자였는데 그 길이 바로 영화에 나오던 그 길이며, 입구에 세워진 개선문으로 옛날 로마 병사들이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던 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그 소나무는 우리 나라 소나무와는 전혀 달랐다. 나무 줄기는 꽤 굵은데 키가 무척 커서 건물보다 높이 솟아올라 맑은 초록으로 건물을 굽어보고 있었다. 꼭대기만 동글동글한 모습으로 썰렁하게 서있는 그 소나무가 그 병사들을 맞던 소나무였다니! 나무 한 그루도 역사적인 것이라니 감격스러웠다. 눈을 감으니 말발굽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우렁찬 함성,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의 박수 소리도……

 

 

웅장한 개선문을 바라보는 광장 왼쪽으로 언덕이 보였는데 예전의 원로원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왼쪽은 좀더 멀리 보이는 언덕이 있는데 그건 바로 노예들이 머물던 언덕이란다. 저 콜로세움을 세운 노예들의 숙소였다는 것이다. AD 70년경 솔로몬 신전을 파괴하고 원형경기장을 건설한 것이 이 콜로세움이라니 유태인에게는 피눈물 나는 역사의 현장일 것이다.

 

 

콜로세움의 규모는 정말 대단하다. 원형으로 둘러싸인 그 구조미가 아니라도 이미 2천년 전에 높이 50M, 수용인원 5만, 넓이가 188M × 156M, 땅을 팽이 모양으로 파서 지하에 짐승들의 우리와 노예들의 숙소를 만들고 층층 계단으로 이루어진 관중석이 있었고, 로마 대수로의 물을 이용하여 2층까지 수돗물을 공급했다고 한다. 건물은 내벽과 외벽이 있는 이중 구조인데 기둥은 대리석으로 층마다 각각 도리스 양식, 이오니아 양식, 코린트 양식을 이용한 최초의 복합양식을 썼다. 그 때는 아치 중간 중간마다 병사들의 전리품을 장식하였다니 얼마나 화려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벽은 그 시절에 벌써 철근과 아교를 사용한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었다니 로마제국의 건축기술이 어땠을지 가히 짐작이 갔다. 또 햇볕이 강할 때는 베라리오(Velario)라는 큰 천막을 미세노 제국 함대 선원들에게 펴게 했다고 한다. 또 넓은 검투장에서 내부 벽인 나무를 떼어내고 물을 끌여들어 모의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니 다양하게 이용한 것이 놀라웠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건축물은 참 인간적이진 못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맹수의 사투를 즐기던 로마인들! 그리고 이 원형극장의 건립 배경도 싸움이 적어진 로마 병사들의 야수성을 유지시키고 정치적으로 병사들과 시민들 무마용으로 건설되었다니 시대를 초월한 정치세계의 잔인함이 느껴져서 기분이 씁쓸해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정치가들은 자기들의 야심을 드러내지 않게 하려고 어떤 일을 꾸미고 있을까?

그러나 역사를 들추어내면 다 그런 면이 있을 터, 이런 유적을 남겨 2천년 후에도 감상할 수 있게 한 로마인에게 경의를 표하긴 해야겠지.

 

 

콜로세움에서 시내로 걸어 들어가면서 건물들을 보았다. 시저의 공화당을 지나면서 시저 상을 보고 사진 촬영도 하고, 로마시절에 황제와 귀족들만 다닐 수 있었다는 길을 활보하니 신분이 상승된 듯 우쭐해졌다. 현대인은 내가 다 황제요 귀족인 것을……. 하긴 돈이 황제요 귀족인 세상이 현대이긴 하지만 말이다. 돈이 없으면 이 좋은 유적도 못 보는 세상인 걸.

걸어서 로마공회장(포로 로마노; Foro Romano)이 잘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로마 원로원이 있던 자리로서 기원전 7세기 때 건축된 것으로 여러 차례 보수되기도 하였고, 쎄띠미오 쎄베로 개선문, 에밀리아 회당, 안토니우스와 화우스티나 신전, 베스타 신전 등이 몰려 있고 지금은 기둥과 주춧돌들만 남아 로마제국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유적은 로마의 초기에 형성된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기원전에 이 정도의 자취였다니, 역시 대단한 로마였다.

 

 

 

출처   http://blog.naver.com/viva1143?Redirect=Log&logNo=100112745529

 

다음은 대경마장(Circo Massimo).

영화 '벤허'에 나오는 전차 경기장으로 25만 명을 유치했던 어느 시대를 통해서도 거대했던 경기장이다. 초기엔 목조 계단이었으나 그 후 석조 계단으로 바뀌었고 길이 600m, 폭 200m의 경기장은 '스피나' 라고 부르는 중앙대를 일곱 번 도는 것으로 경기를 끝냈다고 한다. 지금은 잔디를 심어서 보존하고 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다시 시가지를 지나는데 거리마다 맞은 편 건물들끼리 이은 추리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고, 특히 리본 모양으로 장식한 것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래서 성당에서 미사 집전 광경을 보기로 하고 우리는 요한 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앞 광장에선 무대 장치가 한창이었다. 거대한 규모여서 물어보았더니 교황 님이 오늘 저녁에 오신다고 했다. 이 성당에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식탁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규모가 아주 크고 화려하였다. 11시 30분쯤에 들어서니 마침 미사가 한 차례 끝나서 사제들의 행렬이 나오고 있었다. 기다란 주단이 깔린 성당 중앙 길을 나오는 행렬은 너무나 엄숙하고 경건했다. 주교님인지 관을 쓰신 분이 나오시면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셨다. 손을 흔드시며……. 난 특별한 종교를 믿는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카톨릭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좋다. 중학교 때 그런 학교를 다녀서 신부님이 교장 선생님, 담임선생님이 수녀님이신 적도 있었기 때문인지 수녀원의 노랫소리와 성모당 마리아 상의 아름다운 모습이 늘 잔잔한 추억으로 떠오르기에, 그 미소는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 욕심에 찌들은 그런 얼굴이 아니어서일까? 신자가 아니니 마음으로 경건함만 가지고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정성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종교적인 건물은 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기 때문인가?

대부분 일방통행인 이탈리아의 도로 때문에 관광을 하는 동안 버스들은 도로를 빙빙 돈다고 하는데 버스를 기다리면서 '계단성당'을 아주 잠시 들렀다. 그 성당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이라고 한다. 아무 때나 문을 여는 게 아닌데 크리스마스여서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무릎으로 참회하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교인들은 매우 감격스러워하였다. 내게도 가슴 찡한 감동이 왔다.

 

 

오후에는 드디어 기대가 많았던 바티칸시국으로 향했다.

관광객과 신자들이 넘치는 바티칸 주변, 차를 대지 못해 한 바퀴 돌다가 드디어 드넓은 광장으로 들어섰다. 고색 창연한 건물들이 우리를 맞았고,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예수님의 탄생모습을 재연한 오두막집이 큰 광장 가운데 자리잡고 교황청 건물이 위엄스런 모습으로 우릴 지켜보았다.

 

 

밀리고 밀리며 베드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25년만에 열린다는 '천국의 문'이 전날 밤에 열려서 우린 성탄절에 그 문을 통과하는 영광을 얻었다. 사람들에게 밟힐 듯 하면서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 그 문을 들어서니 정말 놀라웠다. 그 웅장한 규모, 화려하면서도 위엄 있는 모든 것들이 입을 다물어지지 않게 하였다. 오른 쪽 천국의 문을 들어서니 오른 벽에 바로 거장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상(성모자상)'이 우릴 맞았다. 내가 간직한 모조품 장식이 있어서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카톨릭 부설 중학교 졸업식 때 상으로 받은 조각품이 아직도 우리 집 피아노 위를 장식하고 있으므로……

 

 

정면엔 고백의 제단이 있고 그 아래 베드로의 유해가 있다고 하며, 직경 42미터의 돔을 둘러싼 기둥마다 조각들이 되어 있고 천장에도 조각들이 많았다. 하나하나가 모두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론지니, 헬레나, 베로니카, 안드레아의 기적을 나타낸 것들과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의 복음서 기록자들을 상징하였기에 신자들에겐 더없는 영광스런 볼거리를 제공하는 듯 하였다. 예술적인 미도 더할 나위 없는 것들이었다. 베드로 성당 천장과 벽 곳곳에 장식된 모자이크들은 모두 순금으로 된 것이었고, 스테인드 글래스의 아름다움, 제단 옆에 만들어진 예수 탄생의 밀랍인형들의 정교함, 신자들이 밝힐 수 있게 해둔 촛대들의 아름다움, 벽 곳곳에 장식된 갖가지 성서의 내용들이 최고의 솜씨와 최고의 재질들로 만들어져서 그 웅장함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정성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며 시간에 쫓겨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광장의 수많은 인파를 뚫고 기념품을 샀다. 달력과 로마의 유적이 담긴 책자를 고른 다음 우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이젠 고대를 떠나 현대 로마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시내로 나갔다.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가 바로 그 곳이었다.

트레비 분수는 조각들이 아름답게 장식된 건물 앞에 분수대를 설치한 곳인데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왔기 때문에 유명해진 장소로서 동전을 던지면 꼭 다시 로마에 온다고 해서 다들 한 개씩 던져 넣고 인파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돌아가면 다시 한 번 그 영화나 봐야겠다는 얘기들을 하면서 오드리 햅번을 떠올렸다.

 

 

스페인 광장도 그 영화 때문에 유명해진 것은 마찬가지, 주인공이 앉았던 계단에도 한 번 앉아 보고 그 앞에 죽 늘어선 패션 일번가도 둘러보았다. 아쉽게도 크리스마스 휴가라 쇼윈도우만 바라보게 되었지만 그 멋은 충분히 느껴졌고, 가이드와 에스페레소 커피를 마시며 까페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 일행이 하도 질문이 많아서 귀찮기도 했겠지만 역사에 대한 것을 잘 들어주어서 그런지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소주잔 정도의 잔에 따라주는 에스페레소 커피는 일종의 커피 원액을 뽑은 셈이라고 하는데 그 맛은 정말 진하고 깔끔하였다.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맛이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을 어떻게 보낼 지 의논을 한 결과, 역시 이태리에서 피자를 안 먹고 갈 수 있냐고 결론 짓고 가이드 일행과 유명하다는 피자 집으로 향했다. 피자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했다. 곁들인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의 맛은 또 어떻고…….

 

 

자리가 무르익으니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잘 가는 2차 얘기가 나왔다. 딱 한군데 '가라오케'가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에 구경하자고 갔더니 쉬는 날이란다. 할 수 없이 저녁 식사한 '고려장' 한식집으로 갔다. 거기는 한국 음식과 중국 음식을 겸해서 파는 곳인데 로마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래서 심야에는 찾는 이들을 위해서 '노래방 기기'를 설치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 팀이 벌써 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 나라와 일본에만 성한 것이 바로 노래방 문화인가 보다. 우리 나라 노래방만큼 재미는 없었다. 왜냐하면 기계 한 대로 일본인들과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리가 무르익으니 그들은 우리 나라 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러서 우리 팀에서도 웅장한 가창력을 지닌 둘째 언니가 마이크를 잡고 합창을 하여 순식간에 '한․일 친선의 자리'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 다른 나라 사람과도 눈 깜짝할 사이에 친해질 수 있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와 음식이 다른 서양에서 동양인끼리 느끼는 동류의식도 좀 느껴지고…….

 

그렇게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