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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서유럽(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영국)

[유럽기행 5] 제 5일 축복의 땅 프랑스 가는 길

[유럽기행 5] 제 5일 축복의 땅 프랑스 가는 길

1999년 12월 28일

 

제네바의 아침은 얼음 땅을 밟으며 시작되었다.

오늘 프랑스로 가야하므로 아침 일찍 쇼핑을 하려고 갔더니, 정문에서 아직 시간이 안 되었다고 출입거부를 했다. 가이드는 담당자와 약속을 했다는데 연락을 못 받았다는 것이다. 규정을 어길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담당자가 잘못이긴 하지만 원칙에 철저한 스위스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우리 나라 같았으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프랑스 디죵으로 가는 길엔 또다시 눈꽃축제였다. 폭설 속에 긴 여정은 계속되고, 어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하얀 지붕을 인 오두막들을 바라보며 이국적 정취에 흠뻑 젖어 들었다.

 

 

http://blog.naver.com/jisoo2360?Redirect=Log&logNo=110051151560

**내가 보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사진....그러나 광활한 레만호....

 

산지를 벗어나자 날씨는 바뀌어 갔다. 내리던 눈은 어느 새 비로 바뀌었다.

리옹 지방을 지날 때에는 커다란 호수에 요트가 떠 있었고, 넓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졌다. 군데군데 집들이 파릇파릇한 언덕 위의 풀밭을 앞에 두고 그림처럼 서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에 흐드러지게 넘쳐흐르는 물, 넓은 평야와 군데군데 보이는 늪지, 그건 비가 많이 와서 생긴 거라고 한다. 리옹 상파뉴 지방을 지날 때에는 지붕의 붉은 색이 더 다양해지고 아이보리 색 벽은 더욱 밝아졌다. 서쪽으로 갈수록 초록 잔디밭은 더욱 색이 짙어지고, 집들도 조금씩 다양해졌다.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의 선선함이 봄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 나라 봄 들녘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앗, 무지개다!"

그 한 마디에 눈이 커진 우리들. 고속도로를 감싸듯이 아치를 이룬 무지개였다.

어느 새 비는 그쳐 있었고, 뒤로 햇살이 눈부신 가운데 저 멀리 보이는 일곱 빛깔 무지개! 달려가면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무지개, 그 사이로 달리는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그런데 드디어 그 끝이 보였다. 바로 옆의 들에서 올라간 무지개의 기둥이랄지, 뿌리랄지, 그런 것이 보인 것이다. 워즈워드는 무지개를 잡을 수 없는 것이라 했지만 바로 앞에서 무지개를 보다니 정말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는 이번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운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가는 길마다 모든 걸 다 볼 수 있게 해 주니 말이다.

 

 

넓은 들판, 구릉지 위 풀밭에서 노니는 가축들, 장난감처럼 앙증맞은 집들, 평화롭게 서 있는 나무들, 곳곳에 삐죽삐죽 솟아오른 유서 깊은 성들,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개울과 도로 가의 깔끔한 풍경들이 프랑스의 풍요로움을 마음껏 느끼게 해 주었다. 앞서 본 스위스의 척박한 환경에 비하면 대단한 축복의 땅인 것이다. 프랑스는…….

 

 

날씨는 시시각각 바뀌었다. 비가 오는가 하면 또 햇살이 쏟아지고……. 어느 순간, 창 밖 오른 쪽을 보니 무지개가 떠 있었는데 왼쪽을 보니 또 무지개가 보였다.

"이런, 바로 쌍무지개잖아!"

말로만 듣던 쌍무지개를 다 보다니! 들판에 물이 많아서 비 온 뒤에 무지개가 잘 생기는 것 같았다. 양쪽으로 쌍무지개의 인도를 받으며 달리는 길을 어디서 다시 만나랴? 정말 대단한 여행이다.

 

오후 2시쯤 디죵에 도착하였다. 이 곳은 포도주와 달팽이 요리가 유명하다고 한다.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전날보다는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 괜찮았다. 늦은 식사라 게걸스럽게들 먹었다. 일행이 가져온 고추장까지 얻어서 곁들여서 쓱쓱 비벼 먹는 맛은 일품이었지만, 나는 조심스러워서 야채 종류와 밥만 많이 먹었다. 맛있는 거 앞에 두고 맘대로 못 먹는 것처럼 슬픈 일이 있을까? 내가 갑자기 불쌍한 신세가 되다니,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 맛있다는 포도주도 못 마시고 말이다.

 

 

그 다음, 미셸 성당을 보았다. 소박하고 엄숙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15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 보니 이태리에서 본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고, 우리 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성당 같아서 친숙한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스테인드 글래스가 무척 아름다웠다. 경건한 마음으로 촛불을 켠 사람도 있고, 기념 촬영도 많이 했다. 브르노규 궁정도 보았는데 지금은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슴 아픈 일이 또 생겼다.

내가 그리 소상히 적어놓은 메모수첩을 잃어버린 것이다. 내 혼의 일부가 다 빠져나가는 그 허전함이란, 표현할 말이 정말 없다. 이미 많이 빠져 나온 상태라, 지갑도 아니고 여권도 아니니 돌아가자고 할 수도 없고, 그 뼈아픈 마음을 누가 알까? 사진 찍느라 성당 의자에 잠시 둔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남들 다 차에 두고 내렸는데 그래도 더 적어 보겠다고 들고 갔더니, 카메라맨 하는 바람에 분신을 잃어버렸으니, 쯧쯧…….

 

 

눈물을 머금고 차에 앉은 내 심정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글도 많이 끄적여 놓았는데, 흑……. 기사 분은 진작 얘기하지 그랬냐고 안타까워 하셨다. 그 수첩이 있었다면 이 글도 아마 더 매끄럽게 잘 쓰여졌을 것이고, 감상도 더 욱 실감이 났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디죵에서 파리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풍요로운 프랑스 들녘은 끝없이 계속되고, 넓은 들판을 다 관리할 사람이 있을까 의문을 가질 정도였는데, 놀려 두는 땅은 없다고 한다. 농업이 거의 기계화되어서 오후에는 거의 일을 안하고, 한여름에도 선선한 아침저녁으로만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루한 이동이 하루 종일 계속 되었으므로 가이드는 여러 가지 얘기를 많이 해 주었다. 전날 눈 내리는 길을 달릴 때는 첫사랑의 아픈 사연 얘길 해주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더니,

‘사실 입담은 별로라서 재미는 없었지만, 진실이 배여 있었으므로……’

 

 

오늘은 노인대학 어르신들 모시고 일본 여행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배가 안 떠서 더 체류한 이야기와 사후처리 등을 재미있게 얘기해주었다. 또 여행에서 겪은 일들, 여행에 필요한 상식들을 소상히 알려 주었다. 앞으로 여행을 많이 다닐 사람들에겐 소중한 얘기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 팀은 31명이 같이 다녔는데 우리처럼 외국여행이 처음인 사람들이 많은 일행은 드물었다. 우리 여섯 중 셋은 외국을 다녀왔고, 셋은 처음인데, 부부끼리 온 사람들은 여러 나라를 여행한 사람들이 많았고, 가족끼리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경우는 부부는 여러 번 다녔지만, 아이들은 처음 데리고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더니 여행도 한 번 해 본 사람이 자꾸 하나 보다. 실제로 느낀 것이 너무 많은 여행이었기 때문에 나도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보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자 보험은 여행사에서 들었다고 한다. 만약에 사고가 나면 보상의 범위 같은 것을 일러주었다. 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더 들어 놓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험금 탈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지만 항공기 사고가 빈번하므로. 우리가 유럽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에 또 대한항공 화물기가 추락하여 피해를 본 것도 있어서 항공기 이용객석이 많이 비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을 때는 나와 아무 상관없을 줄 알았더니, 내가 보험혜택을 받게 될 것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사람의 미래는 누구도 미리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엔 한국인 버스 기사에 관한 이야기다.

이 분은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하셨을 때마다 가이드를 할 정도로 파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는 유능한 가이드였다고 한다. 콧수염을 멋있게 기른 분으로 눈빛이 매우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분이 사업을 했으니 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밑천 다 떨어먹고 지금은 유럽에서 유일한 한국인 버스 기사인데, 나름대로 보람이 크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는 법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저녁 7시 30분쯤 파리에 도착했다.

첫 느낌은 한 마디로 화려한 파리였다. 멀리 에펠탑의 불빛이 보이고, 세느 강을 배경으로 고색 창연한 건물들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버스 기사와의 이별이었다. 우리 일행은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 9일 동안이나 출장을 다녀왔기 때문에 내일은 집에서 쉬어야 한다고 하였다. 유럽은 버스나 기사가 쉬어야 할 시간을 지키지 않고 운행을 하면 벌금이 굉장히 비싸다고 한다. 하루에 9시간인가는 꼭 쉬어야 한다고 한다. 버스나 기사가 피로하면 사고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전에 철저한 그들의 의식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모두 덕분에 위험한 알프스 여행을 무사히 잘 치른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저녁 식사는 한국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불고기 백반은 꿀맛이었다. 한국인은 역시 이걸 먹어야 기운이 나나 보다. 몸도 많이 좋아져서 우린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세계 최고의 도시 파리에서 밤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지.

우린 가이드와 파리를 많이 다녀본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한 다음 대학가인 생 미셸 가를 방문하였다. 로마에서부터 저녁 스케줄에 동행했던 부부 팀과 같이 택시 세 대를 불러서 갔다. 8명이 택시 3대를 부른 웃기는 이유는 이러하다. 파리에서는 운전석 옆자리는 '개자리'란다. 애완견 말이다. 사람은 그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걸 좋게 해석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 난감한 일이었다. 개 팔자 상팔자라더니……. 그들이 우리 나라를 개고기 먹는 나라라고 야만적이라고 하는 정서가 피부에 와 닿았다.

 

 

파리의 야경은 정말 눈부셨다. 오래된 도시답게 고전미가 살아있으면서도 현대적인 미가 가미되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파리, 세느 강은 유유히 흐르고, 오래된 건물에서 나오는 은은한 불빛과 에펠탑과 샹제리제 거리에 반짝이는 트리들의 눈부심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황홀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밤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기분은 괜찮았다. 집에서야 이 시간에 어떻게 돌아다니랴? 회식 같은 거 해서 저녁 먹고 노래방이라도 들렀다 10시만 넘으면 우리 남편은 날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 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들은 다 이상하대나? 그리고 자주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은 늦게 다니는 게 본인 스스로도 이상하니까 말이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넘어 있었다. 우린 도시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껴보기로 하고 생음악이 있는 집으로 갔다. 큰언니는 항상 젊게 사시지만 너무 시끄러운 집은 좀 꺼려하셨는데, 오늘은 봐 달라고 하면서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는 호프집으로 갔다. 나이는 들었지만 록큰롤을 열심히 연주하는 금발의 남자가수, 그 관록만큼이나 목소리도 무르익어 있어서 아주 좋은 노래를 들려주었다.

 

 

무대 바로 코밑에 앉았다가 너무 낯간지러워서 조금 옮겨 앉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먹는 생맥주 맛은 그저 그만이었다. 20대의 대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말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 우리들의 진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그 동안 우린 많은 생각을 하고 젊음을 한껏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의 암울했던 사건들 때문에 캠퍼스를 밟을 수 없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 시간도 침잠과 사색과 여행으로 보낼 수 있었던 시절! 아, 다시 가고 싶은 그 시절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담배 연기 때문에 공기는 탁하였지만 곳곳에 자리한 젊은이들의 대화에 우리는 마냥 신나서 웃고 떠들었다. 다시는 맛보지 못할 그 시간들처럼, 이 시간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