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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서유럽(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영국)

[유럽기행 3] 제3일 환상의 피렌체, 경제의 중심지 밀라노

1999년 12월 26일

 

[유럽기행 3] 제3일 환상의 피렌체, 경제의 중심지 밀라노

 

"따르르릉~"

어김없이 모닝콜은 울리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새로운 버스 기사를 만났다. 가이드가 어제 그 기사와 버스가 마음에 안 든다더니 프랑스 버스로 바꾸어서 기사는 한국인 기사를 만나게 되었다. 유럽에서 유일한 한국인 기사라고 한다. 새로운 버스를 타고 새로운 마음으로 드디어 긴 버스 여행에 올랐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로마를 여행하고 이제 서서히 현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넓은 들이 나오고 야트막한 언덕도 나오고,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가면서 수없이 바뀌는 자연의 신비로움, 겨울이라 푸르름은 덜 해도 그리 춥지 않은 지중해식 기후를 느끼며 서북으로 자꾸 달리는 버스에 우리는 몸을 맡기고 생각에 잠겼다.

 

 

현지 가이드는 심심지 않게 많은 얘기들을 들려준다. 우선 포도주 얘기부터 하자면, 포도주 하면 프랑스를 떠올리지만 이태리의 '끼얀띠, 몬떼불차노' 등도 아주 맛이 좋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엊저녁에 먹은 것이 바로 '기얀띠' 였다고 한다. 진한 맛이 아주 입에 붙더니 그래서 유명한가 보다. 백포도주는 시칠리산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 다음 유명한 이태리의 3대 문화는, '만자레(먹다), 깐따레(노래), 아모레(사랑)'라고 하는데, 기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남을 배려하면서 자기 책임 하에 솔직하고 진실한 국민성을 갖고 있고, 그래서 도시가 깔끔하지는 않다고 한다. 맘대로 하는 성향 때문에 낭만이 있고 정신적 문화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관심 있는 교육에 관한 걸 물어보니, 장점은 장애자나 정신지체아, 자폐아들에 대한 교육 제도가 아주 잘 되어 있다고 한다. 교사가 전담이 붙어서 관리를 한다니 정말 좋을 것이다. 우리 나라도 빨리 그런 제도가 정착되어야 될텐데. 반면에 교사에 대한 대우는 그리 좋지는 않고 일찍부터 진로 교육이 잘 되어 적성에 따라 전문적인 교육이 일찍 이루어져 우리 나라 고등학교 정도의 그런 과정을 거치면 일선에서 활동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학습 방법도 주입식이나 단편적인 지식을 판단하지 않고, 조사학습을 하더라도 동기를 중요시하며, 개별적인 질문을 많이 하여 혼자만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개인의 선택에 대해 언제나 "왜?" 라는 질문을 하여 논리적으로 답할 수 있게 하고 학습의 성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언제 한 번 직접 교육 현장을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일정이 바쁘지 않고 다음에 온다면 꼭 세계 여러 나라 교육 제도의 장점을 두루 알아보고 취사 선택하여 교육에 접목시켜보고 싶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유롭고 한가롭다.

유럽 농촌 마을의 특징은 집들이 거의 다 언덕 위에 있다는 것이다. 알프스 같은 산지를 제외하고 평야가 넓은 유럽대평원은 끝없는 평야를 지나가면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고 그 언덕 위에 집들이 장난감처럼 서 있고 그 앞엔 한겨울에도 푸른 잔디밭이 보인다. 한국의 겨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집 뒤엔 어김없이 나무들이 서 있고, 제일 높은 언덕이나 산꼭대기에는 꼭 거대한 성이나 교회 등이 있다. 중세 유럽 때 지은 성들도 있다고 한다. 보기에도 오래된 건물들이 삐죽삐죽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평야는 보기 좋게 잘 정비되어 있고,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들이 풍요로움을 맘껏 느끼게 해 준다. 아펜니노 산맥을 넘을 땐 멋있는 성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어젯밤 늦게 논 탓인지 잠도 자면서 경치도 보면서 어느 새 도착한 피렌체.

"우와! 정말 멋있다! "

모두들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 로마와 비할 바가 못 된다. 주황색 지붕에 미색 벽들이 한두 가지 색으로 통일된 집들, 바로 한 폭의 그림이었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은 또 얼마나 깨끗하고 푸른지…….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에 전성기를 이룬 도시로서 이태리의 대표적인 상업도시이다.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던 르네상스 운동의 자취가 가장 많이 스며든 곳이다. 이 도시는 메디치 가문이 중심이 된 곳으로 처음엔 고리대금업으로 일어섰으나 약품 산업을 중심으로 점차 부를 이루어 수많은 예술가를 지원하여 세계적인 거장을 배출한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즐거운 점심시간, 시간은 이미 두 시 반을 지나 있었다. '델타호텔' 에서 이태리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인 스파게티 정식을 먹었다. 스파게티만 나오는 줄 알고 열심히 실컷 먹었더니 고기도 나오고 빵도 나오고, 무엇보다 로마에서 부족하게 느껴졌던 야채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포도주로 건배도 하고, 아무튼 주린 배를 채우는 것 보다 행복한 순간도 아마 드물 것이다. 로마에서 입으로 배운 에스페레소를 마시러 커피 숍까지 가서 한 잔 씩 하고, 우린 면세점으로 향했다. 바로 옆에 있는 면세점으로 가서 간단히 쇼핑을 했다. 피렌체는 패션의 도시, 가죽의 도시이기도 하므로 가죽 제품과 유명한 미쏘니 매장이 있었는데 할인해서 판다는 미쏘니 제품이 내 심장으론 살 수 없을 만큼 비쌌다. 이태리 들녘의 자연 색상을 본떴다는 미소니 특유의 은은한 나뭇잎 문양은 아주 멋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의 이번 여행에서 구입 1호인 썬그라스를 샀다. 베르사체가 좋다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아르메니로 남편 것이랑 하나씩 샀다. 그거 고르느라 시간이 무척 걸렸다. 내 건 내마음대로지만 까다로운 우리 신랑 것을 고르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고 가이드와 다른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한 다음 비교적 저렴한 것으로 장만하고, 우리 예쁜 딸들을 위한 작은 손가방 하나씩, 그리고 잡지꽂이 몇 개, 피노키오 같은 민속인형 두 개를 샀다. 배부르지, 사랑하는 사람들 물건 샀지,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고 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내로 한참 들어가니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적인 성당이 보였다. 연분홍, 연한 풀빛, 흰색, 미색 등의 파스텔 조가 어우러진 성당, 바로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 이었다. 르네상스 건축의 백미라더니 그 화려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최근에 한참 유행하던 아이보리색 장식으로 수놓은 가구들의 색상과 문양을 여기서 딴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성당은 본당, 세례당, 종탑으로 이루어졌는데 세례당 문에 금색으로 조각된 내용은 창세기의 내용을 나타낸 것으로, 천지창조, 카인과 아벨,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 야곱의 축복, 요셉의 탄생, 모세 10계, 예리고성, 다윗과 골리앗, 솔로몬과 시바 등이었다. 성당 안쪽의 화려함도 대단하였고, 로마에서 본 성당들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시대별 변화를 실감나게 해주었다.

 

 

시뇨리아 광장으로 갔다. 베기오 궁전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종탑 망루를 석탑처럼 편편하게 건설하여 가장 피렌체적인 건물이라는데 그 앞에는 르네상스 대표 조각이라 할 수 있는 데이빗상이 당당히 서 있고, 오른쪽에는 포세이돈 상이 분수대에서 해마를 타고 서 있었다. 궁전 안 쪽에는 황금사자상이 서 있고 꼭대기에도 황금사자상이 반짝이고 있었다.

 

 

도시를 돌아나오면서 '미켈란젤로 언덕'을 들렀다.

도착한 순간 “아!” 하는 탄성을 지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르노강을 사이에 두고 야트막한 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는 바로 '꿈'과 ‘환상’의 화신이었다. 거장의 작품이 나올 만한 그런 도시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에메랄드빛 강물 너머 잘 다듬어진 단아하고 귀티 나는 그 모습, 요새와 같은 궁전, 석양에 물든 시가지 가운데 자리잡고 길게 늘어선 도시 저 건너편에 아름다운 산이 둘러싸인 그 모습, 정말 피렌체는

"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악가 현지 가이드와도 석양을 배경으로 이별한 채, 밤 여행을 하였다.

 

 

밀라노까지 가야했기에 지친 몸을 쉬면서 비몽사몽간을 헤매었다. 9시 30분쯤 드디어 엄청나게 큰 도시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밀라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빌딩들, 크리스마스 장식의 화려함, 건물 전체를 불 밝혀 'BUON NATALE(MERRY CHRISTMAS)'라는 글자를 새긴 빌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밀라노는 실제적인 이태리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경제의 중심지이므로……. 정말 로마가 '역사의 도시', 피렌체가 '상업의 도시' 라면, 밀라노는 명실상부한 이태리 '경제의 도시' 로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가장 부유한 도시가 바로 밀라노다. 이태리는 남부의 '나폴리' 같은 곳은 국민 소득이 몇천 달러지만 밀라노는 4만 불이 넘는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북부 공업도시들이 남부를 먹여 살린다고 해서 서로 알력이 심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지역 감정쯤은 '세 발의 피' 라고 한다. 서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

배가 너무 고파 일단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집 찾느라 기사와 가이드가 무척 헤매기도 하였지만 늦게 먹는 저녁은 꿀맛이었다. 우리 나라에 있는 중국 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과, 포도주도 한 잔씩 곁들여 건배까지 하는 기쁨에 우린 포만감에 젖어 행복했다.

그러나, 나의 불행의 씨앗은 이 시간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다.

"웬 눈물의 여행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이제 눈물이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얘긴 차차 하기로 하자.

 

 

밀라노의 밤 공기는 차가웠고 안개도 많이 끼었지만 내일 일정이 바쁘기 때문에 두오모 성당을 밤에 관광하였다. 이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는 세계 최고의 건물이라고 하는데, 하늘을 찌를 듯 삐죽삐죽 솟아오른 지붕이 섬뜩한 칼날처럼, 그러나 애틋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하느님과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사고와 솟아오른 알프스의 영향에서 만들어졌다는 고딕 양식의 첨탑이 이처럼 많이 있는 곳도 없을 거라고 한다. 내부에는 거의 흰 대리석으로 이루어졌고 성당 전면에 조명을 잘 갖춘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당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다음은 스칼라좌 극장을 곁에서 바라보았는데 3000명을 수용하는 큰 극장으로 세계 최초의 오페라 하우스라고 한다. 오늘도 이 극장에 서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성악 공부를 하고 있고 외국사람들도 이태리로 와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보통의 성악가들은 이 무대에 한 번 서 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고 하며 이태리가 나은 세계적인 오페라가수 루치아노 파발로티 등을 배출한 극장이기도 하였다.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또리오 엠마뉴엘 2세가 세웠다는 궁전 근처에 세계 최초의 쇼핑몰이 있는데 천장과 바닥의 꾸밈이 하나도 정성이 들어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시청 앞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성이 없고 빈치는 출신지를 뜻한다고 하는데 이태리가 자랑하는 미술가 다 빈치는 피렌체에서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고, 밀라노에서 해부학 공부를 하였으며, 그 후에 파리로 가서 모나리자를 그렸다고 한다. 역사적인 인물의 동상을 보니 감개무량하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 경제의 도시답게 화려함과 편리함으로 짜여진 도시였다.

 

 

그런데, 난 저녁을 먹은 후로 속이 좋지 않았다. 체해서 영 기분이 좋지 않아서 약을 먹었다. 그리고 몸도 가렵고 이상했다. 저녁에 먹은 제육볶음이 온통 기름 투성이더니 아마 안 좋았나 보다. 그리고 서로 룸메이트를 바꾸어서 자기로 하고 제일 막내랑 잠자리에 들었다. 총무를 맡은 막내의 계산도 도와주고 이런 저런 가정 얘기도 하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얘기도 하면서, 우린 하루의 피로를 잊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