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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서유럽(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영국)

[유럽기행 4] 제 4일 환상의 눈꽃여행

[유럽기행 4] 제 4일 환상의 눈꽃여행

 

1999년 12월 27일

 

이제는 스위스로 갈 시간. 우린 아침 일찍 기상하였다.

그러나 모닝콜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기사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예상보다 조금 늦은 8시 20분쯤 차에 올랐다. 다른 투어 팀들도 있었는데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서 눈이나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출발할 때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다른 팀들이 포기했다는 소문도 들렸지만 예정대로 '샤모니' 로 가기로 하고 긴 여정에 올랐다. 운전 기사로서는 대단한 모험이라고 가이드가 소개했지만, 상식적으로도 눈 오는 알프스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 걱정스러웠으나, 노련한 우리의 교포 기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는 즐거운 여행길을 맞았다.

 

 

한적한 농가와 늪지, 호수에 뜬 작은 배들을 보며 밀라노를 떠나는 길,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니 넓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지고, 구릉지 위에는 어김없이 집들이 서서 먼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호수 주변에 고풍스런 집들이 드문드문 서 있고, 그 집들은 어제까지 보던 집들 보다 모양과 색깔이 좀 짙어져서 산뜻한 느낌을 주었고, 갈색 지붕에 하얀 벽들이 많았다. 언덕 위에 지어진 성곽들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멀리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이 빙 둘러쳐 장엄한 모습을 자랑하니, 저 광활한 들이 있기에 산이 더 높게 보일 것이다.

 

 

한 송이 두 송이 날리던 눈은 어느 새 함박눈이 되어 쏟아졌다.

넓은 평야를 달려가는 길, 양옆에 늘어선 나무들엔 순식간에 환상의 눈꽃이 핀다. 하얀 꽃, 둥근 꽃, 늘어선 꽃, 매달린 꽃……. 그들의 축제에 탄성을 지르지 않는 사람이 없고, 고속도로는 한 차선으로 묶여서 차는 아픈 거북이 걸음이었지만 우린 마냥 신이 났다. 어린 아이들처럼 한 가지 소원이, 내려서 사진 찍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기사가 곤란하다고 했다. 길도 밀리고, 위험하기도 했으므로 …….

 

저 멀리 들판은 온통 하얀 눈 세상, 저 먼 언덕엔 동화의 나라가 펼쳐진 듯 나무들이 제각기 다른 꽃을 피우며 우리의 상상을 자극했다. 가도가도 계속되는 눈꽃 축제, 우리의 눈은 바깥을 향해 어쩔 줄을 모르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도 어쩌면 인간이 부리는 객기에 지나지 않겠지. 환상의 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오랜 시간 꿈꾸었던 눈 속의 여행길은 마냥 행복했다. 그러나 붕 뜨는 듯한 기분은 아픈 배를 움켜지게 하였다. 어제부터 안 좋던 속이 뜨끔뜨끔 쓰려서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걸 참기에도 충분한 설국! '러브스토리'란 영화도 생각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첫눈 오면 만나자고 하던 말들도 생각나고……어느 날 보았던 한계령, 눈이 펄펄 내리던 날 한겨울의 한계령을 다시 밟아보는 것이 내 오랜 숙원이었는데 결국 15년 동안 이루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대리 만족을 이루는 것이다.

 

 

또 하나의 작은 소원도 드디어 이루어졌다. 간이 휴게소에서 눈을 밟을 기회가 온 것이다. 신나서 어린애들처럼 눈싸움도 하고, 눈꽃 따서 먹기도 하고, 그 냉랭한 기운에 정신이 맑아지고 배도 덜 아파졌다. 동심으로 돌아가 사진도 찍으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저 건너 보이는 호수 주변의 고풍스런 집들, 더욱 다가온 알프스, 언덕 위의 성곽은 동화 속 풍경처럼 우릴 굽어보았다.

 

차는 쉬지도 않고 달려 드디어 알프스 산지에 접어든 것이다.

다가갈수록 뚜렷해지는 알프스 산의 위용! 이태리령 알프스에 접어들자 산비탈, 비탈이라기 보다는 절벽에 가까운 곳에 계단식 포도밭이 촘촘히 박혀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앞쪽의 산은 눈이 조금 쌓였지만 뒤에 우뚝 솟은 산은 만년설을 이고 백발 노인처럼 근엄한 모습으로 자리를 턱 지키고 있었다. 협곡을 따라 난 도로를 달리는데 맑은 계곡 물이 옆에서 같이 졸졸 흘렀다.

 

 

나무들은 힘겨운 듯 눈을 이고 반기고, 곳곳에 목조로 된 2~3층의 집들이 장난감처럼 웃으며, 발코니에 걸린 리본 모양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자랑하기도 했다. 산과 똑같은 색으로 지어진 집들은 산과 어우러져 집인지, 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새하얀 눈을 이고 있어서 더욱 그러하리라. 아직 이태리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집들은 며칠 동안 보아왔던 것들과는 조금씩 달라서 정통 유럽 냄새를 풍겨주었다.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스키장들이 하얀 길을 내고 있는 곳에서는 번화한 숙박시설들이 더욱 그러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차는 고산지대로 접어들었는데, 눈은 이제 그쳤다.

산굽이 돌 때마다 눈 쌓인 산과 나무들의 아름다움이 황홀경을 연출하였고, 환상과 경이로움 속에 이태리령 샤머니에 들어섰다. 원래 그 유명한 몽블랑 터널을 지나는 것이 상례지만 지금은 공사중이라 '베르나르도' 터널로 돌아간다고 했다. 가파른 산길은 2차선이어서 정말 아슬아슬하였고, 지그재그로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풍경들이 환성을 지르게 하였다. 저 멀리 보이는 눈부신 태양이 백설들을 더욱 눈부시게 하였고, 길 바로 아래 보이는 지붕에는 50센티미터도 넘는 눈이 쌓여 무너질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터널 진입로는 정말 특이한 길이었다. 골짜기에 교각을 쌓아 길을 만들었고 길 위에 지붕을 만들어 눈이 많이 왔을 때를 대비해 놓았다고 한다. 그 지붕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 우린 이 길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제설 작업이 신속한 곳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벌써 30년 전에 닦은 도로인데 긴 안목으로 미리미리 준비한 것이 정말 부러웠다. 터널은 6km라고 하는데 한 쪽으론 벽이 막혀 있고, 다른 한 쪽으론 벽을 완전히 메우지 않고 기둥을 세워서 바깥 경치를 다 볼 수가 있었다. 기둥 사이사이로 보이는 푸른 잎들과 하얀 눈꽃의 조화로움! 깎아지른 바위가 만들어낸 하얀 꽃동산! 절벽 사이사이로 드러난 골짜기마다 앙상한 가지에 핀 눈꽃 잔치! 어디서 이런 걸 볼 수가 있으랴?

 

 

한참 지나니 검문소 같은 것이 나타났다. 양쪽을 유리벽으로 만든 곳이었는데 거기가 바로 국경이었다. 스위스로 진입한 것이다. 잠깐 동안 절차를 밟고 우리는 볼일도 볼 겸 경치도 감상하였다. 깊은 산중, 그것도 터널 속의 국경,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나타난 풍경은 멀리 커다란 도시가 보이고 왼 쪽엔 아담한 호수가 모습을 드러내고, 앞의 협곡엔 집들이 몇 채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방향을 틀어 우린 다시 고산지대로 접어들었다.

 

 

날씨는 너무나 청명하였다. 제일 높은 산봉우리가 너무나 멋있게 다가왔고 역시 지그재그로 돌아드는 산길엔 아슬아슬한 고비가 있었고, 말로만 듣던 '눈층'도 보았다. 산길 가장자리의 시멘트 위에 시루떡 층처럼 4층의 눈이 쌓여있었는데 고산지대라 눈이 쌓이면서 얼기 때문에 전날 내린 눈이 층을 형성한 위에 다음날 내린 눈이 또 쌓이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처럼 눈이 바로 녹아버리는 경우엔 거의 보기 드문 현상이다. 샤머니로 가는 길은 정말 환상의 세계, 그 자체였다. 깎아지른 산봉우리, 골짜기마다 돌아들면 새로운 풍경이 우릴 맞았고, 빽빽이 들어선 숲들이 탄성을 지르게 하였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우린 '샤모니(Shamonix)'에 도착하였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우린 특이한 점심을 먹었다. 바로 퐁듀였다.

고기를 올리브유에 직접 익혀서 먹는 거였는데, 정말 맛있었다. 육질 좋은 고기를 끓는 올리브유에 이지창으로 찍어서 익힌 다음 식성대로 대여섯 가지 소스에 찍어 먹는 거였는데, 치즈 퐁듀도 있다고 한다. 신선한 야채와 찐 감자, 튀긴 감자를 곁들여 먹는데 정말 기막힌 맛이었다. 시장이 반찬이어서가 아니었다.

 

 

원래 케이블카를 타고 작은 산 정상에 오를 계획이었으나, 폭설로 운행을 하지 않아 톱니바퀴 열차를 타기로 했다. 3시에 출발하는 협궤열차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골짜기 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숲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멀리 샤모니 시의 많은 집들을 바라보면서, 여기저기 고개 내민 봉우리들을 감상하기에 우리는 정신이 없었다.

 

 

드디어 몬테버 산에 올랐다. 사방의 산들이 모두 서로 다른 얼굴로, 우뚝 솟은 바위산,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 아담하고 봉긋한 봉우리 하나로 다가왔다. 저 멀리 산 아래 보이는 골짜기 아래 흐르는 작은 강물, 그리고 도시의 집들, 모든 것이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하였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 산들. 알파인 목장에서 박제된 동물들을 구경하고, 얼어붙어 수정처럼 빛나는 골짜기, 석회 동굴에서 등반인들의 사진과 이 산 속에서 채취한 수정들의 아름다움도 맛보고, 키만큼 쌓인 눈 속에서 사진을 찍고 장난을 하며 마냥 즐거웠다.

 

 

이 샤모니는 프랑스령이라고 한다. 아까는 스위스를 지났지만 몽블랑은 이태리, 스위스, 프랑스 3국을 접하고 있기에 들쑥날쑥 한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이태리, 점심을 프랑스, 저녁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먹게 되므로 하루만에 3국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톱니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는 사람 구경을 더 많이 했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룬 열차, 우리 옆자리에는 인형처럼 예쁜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앙증맞음에 모두 반해 장난을 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바로 '인꽃' 이란 말이 실감이 났다. 신의 피조물 중 가장 공들인 것이 인간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얼굴이란 것을…….

 

스키의 고장에서 그냥 가야만 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어두운 샤머니를 뒤로하고 스위스 제네바로 향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어서, 하루를 조용히 정리하며 7시쯤 레만 호에 도착했다.

 

'레만 호에 지다' 라는 영화 제목이 내내 입에 뱅뱅 돌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레만호'의 야경은 그림처럼 다가와 가슴이 뭉클하게 하였다. 점점이 떠 있는 배들, 호수 주변에 들어선 건물들의 산뜻함이 국제적인 면모로서 과연 손색이 없었다. 낯익은 '로렉스' 등의 간판들이 시계의 고장임을 은연중 알려주었다. 호숫가에 버스를 대고 우리는 비 내리는 레만 호수를 바라보았다. 억세게 불어오는 바람이 우산을 꺾을 정도로 불어와서 오래 보지는 못하였지만, 호수의 정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레만 호는 아주 거대한 호수로 유럽 최대의 호수라고 한다.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는데 생활하수가 호수로 유입되지 않도록 164개의 정화장치로 정화된 물이 4개의 커다란 하수관을 통해 강을 타고 바다로 직접 흐르게 한다고 한다. 국제 도시 제네바는 산업스파이가 많으며, 독어, 이태리어, 프랑스어, 로망세어의 4개 국어를 국어로 쓴다고 한다. 지금은 국민소득이 4만 5천불 정도로 아주 선진국이지만, 주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산악이 95%인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스위스 사람들은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한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고, 비탈진 자투리땅도 최대한 이용하며 기술 개발에 힘써 오늘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지상 건물의 1/3이 지하에 있을 정도로 국토개발을 이룩한 나라라고 한다. 후손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한 스위스 사람들이 대단함이 존경스러웠다.

 

 

저녁 식사를 하고 우리는 숙소에 다다랐다. 시설이 깨끗했고 몸이 피곤해서 일찍 쉬고 싶었다. 팀에서 일부는 쇼핑과 저녁 문화를 보러 가자고 했지만, 이것저것 의견이 맞지 않아서 장시간 언성을 좀 높이며 회의를 하고, 큰언니가 나가서 사온 포도주로 건배를 하며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서 잠을 청했다. 10년을 친하게 지내온 사람들도 막상 같이 오래 지내다 보니 의견의 차이가 분명하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 방편이라는 생각도 하며 잠을 청했다.

'이렇게 부대끼며 비 온 뒤의 땅이 더욱 굳어지듯이 우리도 더 친해지겠지?'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448

***내가 본 곳과는 차이가 있지만, 일단 샤모니 사진을 퍼다 올려봅니다.

그 때 찍은 사진들은 스캔을 해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