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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서유럽(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영국)

[유럽기행 7] 6일째 밤 파리야경, 그리고 응급실

[유럽기행 7] 6일째 밤 파리야경, 그리고 응급실

1999년  12월 29일~30일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감동적인 시간을 아쉬워하며, 한두 시간 안에 본다는 자체가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은 한식, 한국에서 장사를 해도 손님이 끓을 만큼 반찬이 깔끔한 집이었다. 불고기 백반의 맛은 입에 짝짝 붙을 정도로 맛있었다. 연한 불고기의 고소한 맛과 나물들을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그런 맛으로 볼 수 있는 순간, 작은 행복이 세상을 지배할 만 했다. 한국인은 역시 이렇게 먹어야 기운이 나나 보다. 구수한 된장찌개의 맛은 또 어떻고? 이 식당은 프랑스의 교포들과 동양계 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는 집이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기도 힘들고, 30분 간격으로 손님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좋은 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가 시간에 그렇게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오늘은 1999년 12월 30일. 세계가 밀레니엄을 맞을 준비로 정신이 없다고 한다. 특히 파리는 세계 제일의 관광 도시인 만큼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예산을 들여 10개의 톱니바퀴를 샹제리제 거리에 설치하여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많은 이벤트를 준비하여 세계의 이목을 끌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저녁 야간투어는 파리의 명물인 에펠탑과 파리 시내 중심가를 돌면서 야경을 감상하고, 샹제리제 거리에서 자유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먼저 에펠탑으로 가는 길, 콩코드 광장에 붐비는 사람들을 보며 설명을 들었다. 콩코드 광장은 혁명의 광장으로 혁명군에 의해 1300여명이 처형된 곳인데, 3300년 전의 오벨리스크 조각이 멋있었는데, 이것은 진짜 이집트 유물로 람세스 2세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높이 23미터, 무게 230톤의 대형 조각으로 19세기 초 프랑스에 도착한 것으로, 상형문자로 신에 대한 기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샹제리제 거리는 16세기 마리 드 메디치스 왕비의 산책로였다고 하는데, 18세기초 '천국의 뜰', '낙원의 뜰' 이라는 뜻으로 명명되었으며 지금은 대표적인 프랑스 문화의 중심지이자 상업의 중심지이다. 얼마 전 50년 만에 불어닥친 폭우로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많이 철거하였고, 특히 나무에 하얀 천을 드리운 장식들이 아주 멋있었다고 하는데, 대기 오염으로 빛이 오염되어 밀레니엄 행사 전에 철거하였다고 한다. 샹제리제 거리를 지나자니 2000년을 장식하는 10개의 대형 바퀴들이 내일의 행사를 위해서 시험가동 중이었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waxweb?Redirect=Log&logNo=90146568477

파리 에펠탑 주변 야경~~

 

개선문은 전쟁에 승리한 나폴레옹과 관계 있는 조각으로, 이태리의 개선문을 그대로 옮겨서 크기만 크게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에뚜알 광장에 버티고 서 있었는데, 이 광장은 12거리로 차선이 없는 로타리로서 방사선 모양으로 조성된 거리라 눈치껏 끼여들어야 진입할 수 있고, 사고가 나면 무조건 쌍방과실로 처리하기 때문에 과감한 사람이 빨리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정확한 독일 사람이 들어오면 사고가 잘 난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도 이태리인들처럼 자유분방한 사고가 특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디어 에펠탑에 도착하였다.

처음에 이 에펠탑은 건립 반대 운동이 심각했다고 한다. 지식인들은 고전미 넘치는 파리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고, 주변의 귀족들은 지반이 약해서 붕괴의 위험이 있다고 반대를 많이 해서 전시 후 철거하겠다는 약속 후 건립이 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고전과 현대미를 잘 조화시킨 파리의 명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으로 세계인의 선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은 321미터의 높이로 건립 당시는 세계에서 최고 높은 건물이었고,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었는데 연말이라 줄을 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중간에 갈아타는 곳이 있고, 꼭대기에는 1889년 에디슨의 무선 통신 실험을 재현하는 밀랍인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에펠탑 꼭대기엔 정확한 방향 표시와 더불어 각국의 유명한 도시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고, 사방에서 파리 시내가 한 눈에 보여서 여기저기 불꽃들을 수놓은 듯한 도시 파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이드와 파리 생활에 대한 얘기도 더러 나누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여유를 부렸는데 문제가 화장실이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일정에 차질이 생길 정도였다. 31일날 불꽃놀이 시설 설치 관계로 어젯밤에는 개방을 안 했다고 하니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내일도 올라오지는 못한다고 한다. 밑에서 불꽃놀이 감상만 해야한다고 하니 말이다.

 

 

내려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버스가 말썽을 부렸다. 기사가 좀 모자라는 사람인지 약속 장소에서 시간을 못 지킨 것이다. 밤 공기는 차고, 강풍이 불어서 우린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쪼그리고 앉아서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그것도 한 시간이나 더 말이다. 더더구나 나는 저녁때부터 점점 가려워 오던 몸이 더 심하게 가려웠다. 아무래도 낮에 먹은 달팽이 요리가 문제였던 것 같다. 가려움증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괴로움을 모를 것이다. 함부로 긁을 수도 없고, 사람 정말 짜증나고 괴로운 일인 것이다. 게다가 춥고 힘드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손목도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가려움증이 심하니 손목만 긁어대어서 그런 것인지, 괴로운 밤이 시작된 것이다.

 

 

같은 회사 기사에게 수소문하여 기사를 찾아서 차에 오른 것은 1시간 반이나 지난 10시 반경이었다. 사람들은 지쳐서 가이드에게 이젠 야경 투어고 자유 시간이고 다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가자고 언성을 높였다. 추운 곳에서 떨다가 따뜻한 버스로 들어오니 긴장이 풀어져서 잠에 곯아떨어진 사람이 많았고, 몇몇은 깨어서 썰렁한 분위기에서 시내 관광이 계속 되었다. 버스는 로얄거리도 지나고, 생또노레 라는 패션가도 지나고, 방동 광장, 오페라 거리도 지났는데 1875년 건립된 국립오페라 하우스가 특이한 모양의 위용을 자랑하였고, 백화점 쇼윈도우에는 크리스마스 때부터 되어 있었다는 어린이를 위한 자동 인형들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낮보다 분위기가 좋아진 샹제리제 거리의 불빛은 더욱 현란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거리를 거닐어볼 수는 없게 되었다. 넓은 도로를 다 막고 양쪽 1차선씩만 차가 다니느라 완전히 커다란 거북이 탄 것처럼, 우리는 10개의 수레바퀴 앞을 통과하였다. 내일 1999년 12월 31일을 보내고 새로운 2000년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마련된 바퀴들을 시험 가동하는 날인 것이다.

 

 

크고 작은 수레바퀴는 똑같은 모양이 아니다. 아주 크고, 놀이 동산의 탈것처럼 생겨서 사람이 타고 공연을 하는 것도 있고, 대형 스크린을 칸마다 장식하여 텔레비전 쇼 화면이 분야별로 나오기도 하고, 우주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수레 축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있고, 바퀴 앞에서 즉흥무 공연을 하기도 하고…….

 

 

길 양쪽 인도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 앉아서 그 모습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거리의 나무에 장식된 불빛마저 끈 채 이벤트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한바탕 축제를 이루었다. 천천히 지나면서 열심히 기념 촬영을 하고, 새 천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떤 계기로든지 새로움을 맞는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이 늘 새로워지지 못 하기 때문에 지루해 하고, 서로에게 안 좋은 말도 하는 것이므로, 모든 일에는 새로운 국면이 필요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손님맞이 준비가 철저한 파리의 모습에도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샹제리제 거리의 건물들은 초호화 궁궐처럼 아름다웠다. 낮에 지나칠 때는 고전미가 우아하다 여겼는데, 불빛과 조화를 이룬 풍경은 아주 화려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역시 에펠탑처럼 고전미와 현대미의 조화가 맞아 떨어져서 자칭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거리 '샹제리제'라 할만 하다고 여겨졌다. 그 거리를 빠져 나와서 개선문과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21세기 개선문도 보였다. 건물 하나하나 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조화미를 살린 파리 야경, 시간만 늦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은 11시 30분을 넘어 있었고, 지친 사람들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드디어 호텔에 돌아왔지만 본 것은 많은데, 추위에 떨어서 그리 유쾌한 기분이 못되었다. 대표로 뽑히신 아저씨께서 야간투어 비용을 환불받아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셨다. 우리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 사람들 생각도 해야하니까 일부만 돌려 받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방에 돌아온 우리는 그냥 쓰러졌다. 피로에 못 이겨서 말이다.

나는 샤워를 하면 가려운 것도 좀 가라앉을 것 같아서 물을 좀 차갑게 해서 샤워를 했다. 그런데 온몸이 말이 아니었다. 이건 무슨 짐승의 몸처럼 불긋불긋한 반점이 솟아올라 난리였다. 긁은 곳은 더욱 심했고, 옷의 재봉 선이 닿은 곳은 더더욱 심했고, 팔과 손은 퉁퉁 부어 시계가 툭 끌러지고 반지가 빠지질 않았다. 억지로 샤워를 마쳤으나 심상치가 않았다. 정신이 아찔하더니 "앗!" 하면서 바닥에 휘청 쓰러지고 말았다. 룸메이트가 달려왔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속이 메슥거리고 금방 토할 것만 같았다. 결국 변기 통을 부여잡고 한참을 토해내었다. 입으로 아래로 마구 토하면서 정신은 조금 돌아온 듯 했으나, 호흡이 가빠오고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나른했다. 그래서

"나, 죽을 것 같애. 병원에 가야겠어."

하고 말을 했다.

옆방에서 일행 중 두 명이 오고, 응급실을 알아보려고 가이드를 부르고, 한 사람은 몸을 만지고 난리를 폈다. 가이드는 마침 외출했다가 들어서면서 상황을 보고 심각하다는 판단을 하고 병원에 연락을 했다. 나는 찬물을 마시고 아까보다는 정신이 들었으나 온몸에 맥이 빠지고 숨이 가빠서 누워서 의사를 기다렸다. 병원에서 의사를 보낸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 의사는 나타나지 않고, 갑갑해서 가이드의 후배가 마침 와 있어서 그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한참 헤맨 끝에 찾아간 병원은 아주 크고 깨끗하였다.

 

 

어휴, 옷을 다 벗고 진찰을 하다니……. 부끄럽긴 했지만 어쩌랴? 가운을 입고 당직의사의 진찰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호흡곤란이 계속되어 산소마스크까지 끼고서 말이다. 병원에서 산소마스크 낀 일은 난생 처음이다. 응급실 간 것도 처음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슴은 답답하고 온몸이 가려워 견디기 정말 힘들었다. 이 먼 타국에서 이게 뭔 고생인가 싶어서 눈물이 막 났다. 같이 간 룸메이트는 병원에 남아서 간호하겠다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별러서 온 외국 여행인데 나 때문에 나머지 일정을 망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걱정 말고 예정대로 나머지 일정을 마치라고 말했다. 의사나 가이드도 옆에 있어도 실제적인 도움은 줄 수 없으므로 따로 가이드를 구해준다고 하였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돌아갔다.

 

 

나 때문에 놀랐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새벽 일찍 또 영국으로 출발해야 하므로, 나는 오늘 병원에서 지내고 저녁에 파리를 경유하니까 다시 합류하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병원은 다 그런지 몰라도 남자 간호사가 여자 간호사 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았다. 응급실 근무자는 밤에도 그랬는데 아침에 샤워하라고 나를 도와준 여자 간호사 두 사람만 빼고, 다 남자 간호사 같았기 때문이다. 밤에 나를 보아준 의사는 아주 젊은 여의사였고, 그 때 주변에 남자 간호사도 많았기 때문에 참 신기하였다. 약 기운에 두어 시간 잠을 잤는데, 일어나니 비닐 팩에 든 것을 주면서 두 여 간호사가 뭐라고 계속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프랑스 말은 하나도 모르니 말이다. 영어로 말해달라고 했더니 자기들은 영어 잘 못한다는 표정이다. 겨우 간단한 단어로 의사 소통을 하였다. 샤워실로 데려가서 샤워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주사액을 꽂고 하래서 걱정스러워했더니 "No problum!" 이란다. 그건 정확한 영어, 그런데 바늘을 꽂고 하니 이건 샤워가 아니다. 그냥 물만 묻히는 거라고 봐야 한다. 땀이 배여서 머리도 감아야 하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다 싶게 불편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어떻게 사나 싶어 숙연해 지기도 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그 세계를 모른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린스를 써야 하는데 샴푸만 했더니 결이 좋지 않았고, 긴 머리라 빗는 것도 문제였다. 행동이 불편하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여자 간호사가 붙어서 잘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