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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서유럽(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영국)

[유럽기행 9] 제 9 일, 낯선 곳에서 하룻밤

[유럽기행 9] 제 9 일, 낯선 곳에서 하룻밤

 

1999년 12월 31일,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시끄러운 날이다.

 

 

20세기를 마감하는 날, 각 나라마다 오늘을 위해서 많은 이벤트를 준비하여 서로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날이다. 특히 파리는 많은 예산을 들여 기획을 하였다는 날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떠나기는 너무 아깝다고 밀레니엄을 그냥 유럽에서 보내자고 농담으로 우리끼리 말했었는데, 나는 진짜 머물게 된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더니…….

 

 

새벽에 잠이 깼다.

조용히 다가온 아침은 남자 간호사의 영어로 시작되었다. 대․소변 검사와 혈액 검사를 5시쯤 할거라고 말했다. 아마 아침 식사 전에 하려고 그런가 보다. 세 개의 플라스틱 병을 두고 갔다. 하나는 소독액이었나 보고, 둘은 검사물을 받기 위해서였다. 5시쯤 혈액을 채취하는데 잘 되지 않아서 두 군데나 실패를 했다. 내 혈관은 잘 보이는 편인데 오늘은 이상했다. 엄청난 양의 피가 빠져나가는데, 이것도 혈액순환에는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수지침 배울 때, 몸의 어디가 안 좋으면 기본이 사혈인데, 피를 내 주는 것이다. 한방에서도 안 좋은 부위의 응혈된 피를 부황으로 빼내는 것이므로, 아무튼 조금 다르긴 해도 오염된 내 피가 빠져나가서 시원한 것 같았다. 감정이입이라는 게 묘한 곳에서도 발동하는 모양이다. 작은 일에도 작은 의미라도 부여하는 나의 나약함에 소스라쳐 놀라며 내 피가 빠져나간 자리를 물로 채우려는 듯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검사물도 다 준비되었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아서 조용히 해 뜨기만을 기다렸다. 동쪽으로 난 창 밖의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비록 건물들만 보이는 곳이었지만 멀리 새들의 기지개 펴는 모습도 보이고, 동이 훤히 터 오는 모습은 마음을 여유롭게 했다. 가까운 병원 마당에 나무들이 서서히 아침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분주히 들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울한 마음에 생기를 더해 주었다. 어제 가이드가 호텔에서 가져다 준 내 여행가방을 잘 정리하면서 묵은 찌꺼기들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새 아침을 맞았다.

 

 

아침은 여전히 간단한 빵과 우유, 잼 등이 나왔다. 10시쯤 가이드가 찾아와서 오후에는 퇴원을 해도 좋다는 의사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했다. 밤에 별달리 나쁜 증상을 보이지 않았고, 부기도 많이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퇴원을 하고 호텔에서 하룻밤 묵은 뒤에 내일 밤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프랑스는 병원비가 비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보험처리가 될지 어떨지 모르므로 숙소에서 쉬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비행기표를 사러 가고, 나는 점심을 먹고 퇴원 준비를 했다. 병원에 누워 있으니 잠이 더 쏟아지고 없던 병이 더 생길지도 모를 정도로 몸이 나른해졌다. 얼른 빠져나가고만 싶어서 서둘렀지만 약속한 3시는 느리게 다가왔다.

드디어 오후 3시.

카운터에 들러서 계산을 하였다. 그런데 병원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계산서를 보면서 나는 312프랑인 줄 알았더니, 3120프랑이었다. 1박 2일에 60만원 가까이 나온 것이다.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쩌랴? 카드로 계산을 하고 벌레 씹은 표정으로 병원을 나섰다.

 

 

가이드의 차를 타고 나오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 보았지만, 한국 식당이 딸린 호텔은 거의 방이 없었다. 오늘이 1999년 마지막날이었으므로, 시내에서 맞이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가 보았다. 나중에 민박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는데, 가이드는 자기 선배님 댁에 방이 하나 있으니 거기서 자는 게 어떠냐고 했다. 마침 파리의 가정집도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노라고 하면서 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 분은 미술을 공부하러 오신 분이라고 했다. 온 가족이 오셨는데 여기에 온지 4년이 되었다고 한다.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아파트, 고풍스러우면서도 작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편리함이 어느 정도 보장된 그런 아파트였다. 키가 자그마하고 깡마른 남자 분이 그의 선배님이셨고, 50쯤 되어 보이는 어떤 여자 분이 계셨다. 같이 공부하는 분인가 보았다.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고, 부인은 한국에 다니러 갔다고 했다. 숙박료와 세 끼 식사로 400프랑을 계약하고 있기로 합의를 하였다.

 

 

30평정도 됨직한 파리의 아파트는 구조가 우리 나라와는 틀렸다. 주방이 한쪽으로 빠져 있었고, 통로가 좀 좁았다. 세탁실과 욕조가 붙어 있고, 화장실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림 그리는 아틀리에는 나라에서 화가들에게 싼값으로 빌려주어, 거기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였다. 이 분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대학 입시 생들을 지도하는 미술 학원을 경영하였는데, 개인적인 작품활동을 할 수 없어서 다 정리하고 온 가족이 파리로 들어와서 산다고 하였다. 그래서 가끔 민박도 치면서 생활비를 보태기도 한다고 하였다. 처음엔 언어가 안 되어 고생도 많았는데 이젠 정착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주었는데 약을 사오지 않아서 약을 사러 갔다. 약은 네 종류였는데 아침에 먹는 약, 점심에 먹는 약, 저녁에 먹는 약이 달랐고, 3일 후부터 먹어야 될 것도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오렌지를 좀 사 가지고 와서 같이 먹으면서 저녁을 맞았다.

 

 

늘 가족처럼 가까이 지낸다는 여자 분은 나이는 쉰이지만 처녀라고 했다. 파리 생활이 10년이 넘었는데, 혼자 사는 게 익숙하다고 하였다. 그림 그리며 지내는 생활이 외롭기는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니 후회는 없다고 한다. 예술과 생활이 양립되기 힘든 여자들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 분이 잘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 파리는 독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불편함이 전혀 없다고 한다. 희생할 가족이 없으니 곱고 단아하게 늙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이드와 여자 분은 가시고, 저녁을 먹었다. 남자 분이 끓여주는 된장찌개 맛이 참 좋았다. 부인이 다 준비해 놓고 갔기 때문에 간단히 끓이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평소에 많이 해본 솜씨였다. 깻잎 장아찌와 김치, 김, 그리고 멸치 볶음이 다였지만, 고기 먹기가 꺼려지는 나에겐 아주 좋은 메뉴였다. 5학년 짜리 딸은 아주 귀여웠다. 프랑스 아이가 놀러와서 저녁 늦게까지 있다가 갔는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예쁘고 키가 큰 아이였다. 프랑스는 초등이 5년제라고 한다. 그래서 졸업반이고, 중등도 학교는 같은 곳에 있고 명칭만 달라진다고 했다. 처음엔 적응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즐겁게 지낸다고 한다. 아들은 2학년 정도인데 개구쟁이다웠고, 아빠 곁을 잘 떠나지 않았다.

 

 

거실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밀레니엄 행사들을 많이 소개해주었고, 특히 CNN-TV가 볼 만 하였다. 만약 병원에 있었더라면 TV도 못 보아서 무척 심심하였을텐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도 마시고, 귤도 먹으며 남매의 재롱을 보는 것도 아주 뜻깊은 일이었다. 학교 생활과 친구들에 대해서도 물으면 잘 얘기해 주어서 좋았다. 엄마가 없으니 아들 녀석은 괜히 아빠를 조르고 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주인장은 인터넷으로 메일을 보내어 연하장을 대신 하느라고 바빴다. 나도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영어 자판과 프랑스어 자판이 조금 다른데, 쓰기 편리하게 영어 자판을 많이 쓰신다고 하였는데, 내가 하니까 자꾸 에러가 생겨서 나중에는 간단하게 인사만으로 메일을 보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날 짜 1999/12/31:22:05

발신인

제 목 밀레니엄의 수레 바퀴를 보면서

안녕?

21세기를 프랑스 빠리에서 보내는 마음은 묘하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전기가 필요하다는데

아마 내게도 그 시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언젠가 그리워할 그 날을 생각하며

우리는 잠시 생각의 강에 빠져 허우적대며

불꽃 놀이로 깊어가는 빠리의 밤을 맞는다.

낮과 밤의 가치, 그리고 시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네 인간들

밤은 신의 영역이고

더우기 한 밤은 더욱 신성한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어쩌면 너무나 황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도 하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얻은 교훈이랄까?

 

깊어가는 빠리의 밤

밀레니엄의 바퀴는 찬란한 불꽃과 함께 돌아가고

소리만 요란한 불꽃은

빠리 외곽

어느 한국인 집에 머물러

낯선 얼굴로 밤을 밝히고

외로움을 더욱 깊게 하는데

그 깊이 만큼 생각의 깊이도 커져가서

늪 속에 빠질 것만 같다.

아, 내 사랑의 깊이처럼 깊어만 가는

빠리의 20세기 마지막날밤!!!!

 

Hqppy new year, and hqppy new millennium.

I am very stranger.

31/12 1999

 

 

몇 번을 실패한 끝에 이 내용을 성공해서 보낸 것이다. 집에 와서 메일을 확인해 보니 이렇게 살아있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11시 쯤 되자, 그 집 식구들은 교회에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다고 나갔다. 나보고 신경 쓰지 말고 자라고 했다. 그러나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낯선 도시, 낯선 집에서 지금 이 순간,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는 것이다.

 

 

11시부터는 세계 곳곳의 카운트 다운 상황을 보여주느라 난리다. 이미 다른 곳에서는 2000년을 맞은 곳도 있지만,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해당되는 순간이가장 중요한 법이다. 특히 독일, 영국, 프랑스의 취재 경쟁도 무척 치열하였다. 드디어 자정이 가까워지자, 건물에 가려 꼭대기쯤만 보이는 에펠탑에선 불꽃이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도 보였지만, 실제로 여기저기서 터지는 불꽃놀이는 정말 장관이었다. 이렇게 시끄럽게 새천년이 다가오는 것이다. 건물 꼭대기 층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서서 불꽃놀이를 지켜보며 함성을 질렀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어떤 교회에서는 찬송가 소리가 더 크게 울리고 있었다. 경건하게, 혹은 떠들썩하게, 혹은 조용히 침잠 하는 가운데 드디어 새천년이 시작된 것이다.

 

 

한 시가 되자 영국의 모습이 자세히 방영되었다. 영국은 그리니치 천문대에특별한 장치를 해놓고 밀레니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왕을 비롯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화려하게 말이다. 여기 저기 채널을 돌려보니 볼 것이 너무 많았다. 지난 화면을 보여주는데 제일 먼저 밀레니엄을 맞이했다는 뉴질랜드 해변의 축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나라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여기보다 8시간 일찍 맞이했으리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출처 http://www.cyworld.com/flyno8/9504464

파리의 어느 골목...내가 갔던 곳과는 거리가 멀지만.....